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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Feb 05. 2022

엄마에게 중국 당면, 넷플릭스를 알려주다

이번 명절에는 큰집에 가지 않고, 간단히 엄마만 보러 평택을 가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상담을 마치고 쌀쌀한 바람에 코 끝을 시리며 서울역에 도착한 난, 짐이 한가득이었다. 커다란 쇼핑백 안에 든 건 엄마에게 줄 옷 몇 벌과 저녁식사를 만들어줄 요리 재료들이었다. '엄마가 이걸 잘 먹을 수 있을까.' 중국어가 커다랗게 쓰인 당면 봉투를 들고선 엄마가 과연 요즘 애들이나 먹는 커다란 중국 당면을 잘 먹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평소엔 요리를 곧잘 하면서도 엄마 집에만 가면 떼쟁이가 됐다. 하다 못해 변변찮은 식사도 엄마에게 대접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엄마에게 요리도 해주고 철 지난 신문물(?)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중에 하나가 중국 당면면과 로제 닭갈비.  입 짧고 까다로운 엄마 식성을 맞출 수 있을지 고민이었지만, 그래도 밀키트가 요즘은 워낙 잘 나오니 볶기만 잘하면 될듯했다.


커다란 짐때문에 기차 안에서 쪼그려 앉느라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날이 맑아 다행이다.

엄마가 차로 마중 나와 함께 역에서 집으로 향하면서도 내내 뭐 얼마나 멋진 요리를 해준다고 온종일 으스대기 바빴다.


"엄마 이게 중국 당면이라는 건데, 그냥 일반 당면이랑은 완전히 달라. 내가 맛있게 해 줄 테니깐 이번에 한번 먹어봐. 닭갈비랑 같이 섞어서 해줄게."


남이 생색내는 걸 보는 건 싫으면서도, 정작 엄마 앞에서만 서면 한껏 우쭐거리는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무수히 처음 봤던 것들을 새로 알려주면서도 한 번도, 생색내지 않았는데. 하늘에 별, 달, 구름같이 아름다운 게 있다는 것도 모두 다 우리 엄마가 알려준 건데.


요리가 완성되자 나는 냉큼 푹 익힌 중국 당면부터 엄마 접시 위에 덜어주었다. 자기 접시 위에 담긴 중국 당면을 보고 신기해하는 엄마를 보자 꼭 아이 같다고 느껴졌다. 의외로 질기다며 더 이상 안 먹을 줄 알았던 엄마가 곧잘 중국 당면과 로제 닭갈비를 먹으니 새삼, 어른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좋아할 수 있고, 이젠 엄마보다 내가 더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는 사실이 느껴지자 감회가 새로웠다.


식사를 하면서 동생이 아빠한테 넷플릭스를 설치해줬다는 게 생각나 엄마 핸드폰에도 설치해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줬다. 별로 관심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어쩐 일로 흥미가 동했는지 밥을 다 먹고 침대에 누워 한참 넷플릭스에 있는 콘텐츠 목록들을 뒤져봤다. 그러다 뭔가를 하나 찾아보기 시작한다. 원래도 밥 먹을 때 말고 각자 할 일을 하던 우리라, 이번에도 따로 휴대폰을 보면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잠에 들려고 했다.


내 계정과 엄마 계정. 넷플릭스를 새벽까지 시청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리고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순간. 옆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꽤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넷플릭스를 진지한 표정으로 보며 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처음 알게 되면서 새벽을 지새웠던 것처럼 엄마에게도 중독이라는 시작이 찾아온 것이었다.


'넷플릭스 그게 뭐라고. 좀만 더 일찍 알려줄걸.'


내가 자연스럽게 알고 있으니, 당연히 어른들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 우리들의 소위 '밈'으로 여기는 문화들을 그들은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아이러니한 믿음. 내 편협했던 생각들이 깨지자 난 엄마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그동안 내가 간단하게 누렸던 문화들을 엄마는 이제 '나'의 도움을 통해서만 알게 되고 경험할 수 있었던 건데 그걸 난 넷플릭스랑 중국당면이 나온 지 한참이 돼서야 알려주었다.


가슴이 잠시 저릿했다. 그러다 잠시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려주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머리에 자리 잡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나중엔  알려줄까. 유튜브 프리미엄? 쿠팡 로켓배송? 아니면 웹소설? 뭐부터 시작해야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되는 몽글몽글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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