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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Feb 11. 2022

28, 첫 타투를 새기다

겁쟁이가 처음으로 타투를 새기는 과정

난 소위 말하는 겁쟁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던 쌍꺼풀 수술도, 단발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도, 더 높은 곳으로 이력서를 내는 일마저도 결과물이 안 좋을까 봐 망설이다 하지 못했다. 이유는 아플까 봐? 떨려서? 아니, 그런 하찮은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실행하다 망칠까 봐 무서워서였다. 고통쯤이야 잠깐 참고 말면 되지만, 시도한 결과는 한참을 행복하게 하기도 불행하게 하기도 하기 때문에 난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 봐 매 순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번 첫 문신은 내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도전이었다. 한번 새기면 사라지지 않는 그림을 몸에 새긴다는 건 내게 실패해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28년을 살면서 내 오랜 가치관과 두려움을 맞닥드리는 일이었다. 올해, 난 많은 것을 도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내 안에 있는 두려움 하나를 깨고 싶었다.


몸에 영원히 새겨질 한 뼘의 그림. 몇 개월 전부터 지켜보았던 타투이스트 인스타그램 계정을 들어가 예약 날짜를 잡고 새길 위치는 왼쪽 어깻죽지 쪽으로 정했다. 내 왼쪽 팔뚝 윗부분에는 어릴 때 생겼던 모공각화증이 잔털과 함께 흉으로 자리 잡아 피부가 착색되어 칙칙하고 어두웠다. 그곳이 난 늘 콤플렉스였고, 누가 왼쪽 팔을 볼까 싶으면 옷자락을 길게 쭉 늘어트려 보지 못하게 했다. 그 덕분에 민소매도 잘 입지 못했는데 이제는 예쁜 그림을 새겨 내 콤플렉스를 더 이상 흉이 아니게, 아름다운 신체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싶었다.


타투이스트님이 디자인해주신 타투 도안.  꽃 색감은 보랏빛과 파란빛이 도는 색깔로 할지, 아니면 하얗게 할지 고민이었다.

음력 1월 1일, 양력으로는 2월 1일로 새해 의미를 다지고자 가장 빨리 되는 날로 날짜 예약을 잡았다. 하지만 예약 날짜가 다가 오기 이틀 전, 변수가 생겼다. 역시나 내겐 기대하는 일에는 꼭 실망이 생긴다고 이번에도 그랬다. 전전날 받았던 예약자 중 한 분이 코로나 확진에 걸려 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려움과 설렘을 갖고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리면서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연기가 된다는 말은 보통 좀만 더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겠지만, 내게는 용기를 끝까지 지속할 날짜가 더 연장되는 것이었다. 한숨 한 번과 함께 난 취소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날로 다시 잡아달라고 말했다. 변수를 감당하는 것 또한 도전의 한 부분이었으니깐.



타투 작업하기 전 위치와 틀을 잡는 과정. 디자인을 미리 정했어도 구도와 색감을 정하는 부분이 대략 한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가장 빠른 날짜로 했던 나는 일주일 조금 걸려 스튜디오에 방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자마자 담담한 표정과 분위기 있어 보이는 타투이스트님이 반겨주며 작업 준비를 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공간 안은 아직 냉랭했으나, 가슴은 두근두근 쉴 새 없이 뛰어 추위가 느껴질 틈이 없었다.


타투이스트님은 내 왼쪽 팔에 도안을 여러 번 덧대어 보고 위치도 꼼꼼하게 봐주셨다. 타투가 처음이었던 난 어색하게 서 있는 상태로 타투이스트님의 말에 모든지 '네, 좋아요.'라고 밖에 안 했다. 그러다 문득, 남한테 모든 걸 맡기다가 결과물이 나왔을 때 다른 아쉬움이 들기 싫어 거의 다 위치를 잡아 놨을 때 쯔음 조금만 더 뒤로 모양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다시 말씀을 드리는 게 죄송스러웠지만,  지금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의 영원을 책임질 것 같아 난 조심스럽게 부탁드렸다. 다행스럽게도 타투이스트님은 자기 생각에도 좀 더 뒤로 모양을 잡는 것이 예쁠 것 같다면서 내 말을 흔쾌히 들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완성된 타투. 꽃 이름은 델피늄 종류로 푸른빛과 보랏빛이 은은하게 나 약간 빈티지스럽게 완성되었다.

아픔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역시 몸에 무언가를 새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늘이 처음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 담배빵을 지져 본 적은 없지만, 만약 지진다면 이런 느낌 일까.' 싶을 정도였다. 내가 엄살이 많고, 또 사람의 살성마다 통증의 정도가 달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늘이 들어가는 통증도 아팠지만, 같은 자세로 쭉 엎드려 있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힘든 일이었다. 한쪽 팔을 계속 아래로 뻗고 있어야 하는 탓에 피가 쏠리고 얼굴 방향을 좌우로 틀고 있어야 해서 턱이 아팠다. 그렇게 장작 2시간이 지나고 (중간에 한 번씩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자, 내 왼쪽 팔에 보랏빛과 푸른빛의 미묘한 잔꽃이 새겨졌다.


과정은 고되고 힘들었으나, 막상 결과가 완성되니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의 고민도, 통증도 다 부질없고 왜 괜한 걱정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가벼웠다. 아마, 그건 타투가 내 마음에 들었다는 성공적인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 계단을 올라서고 나니, 계단을 밟고 오르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었고 또 한 계단 올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게 되었다.


작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주변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다. 최소 2주 동안에는 바셀린이나 비판텐을 꾸준히 발라주어야 한다고 한다. 회사로 출근을 하는 내가 하루에 5-6번씩 연고를 바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관리를 해보려고 한다.


신년을 맞아 새롭게 시도한 도전, 28살에 처음 타투를 새겨보았다. 타투를 새겼다는 결과보다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을 했다는 행동력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목표를 하나씩 이룬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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