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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Jan 30. 2022

엔딩을 봤던 게 언제였더라

언제부터인가 시작은 쉽고, 끝을 보는 게 어려워졌다

짧은 숏츠 영상이나, SNS로 간략하게 줄여놓은 소설 줄거리, 10분짜리 영화 리뷰 영상을 즐겨보던 내게 커다란(?) 문제점이 생겨버렸다. 바로 책, 영화, 드라마 등 한번 시작한 읽기, 보기를 끝맺음하지 못하고 잠깐이나마 지루함이 생기면 바로 놓아버린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최근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것 빼고는 끝까지 본 영화나 소설이 거의 없을 정도다. 영화관도 극장 안에서 나가지 못하는 제약이 있어서 그렇지,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살짝 확인하거나 딴생각에 빠지기 일수였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됐지?" 시간을 거슬러 보자. 20대 초중반 대학생 때만 해도 프랑스 영화의 퇴폐적 분위기를 사랑하여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장을 내기 바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몽상가들, 동성애를 다룬 따뜻한 색 블루, 딸기 시럽처럼 사랑스러운 아멜리에 등. 봤던 것을 또 보고, 비슷한 장르를 또 찾아 발견하기도 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또한 꽂혀 '신'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영화들. 이 중에 하나를 손꼽자면 몽상가들이 가장 베스트. 그 다음은 아멜리에다.

그땐, 그랬었는데 이젠 내 취향을 찾아볼 겨를도 없이 20분이 넘어가는 영상과 2장이 넘어가는 글을 읽기가 어려워졌다. 그 이상을 봤다면 아마, 19금 딱지가 붙여진 자극적 소재이거나 생각 없이 보는 예능 프로그램 정도? 그야말로 멍청하고 문외한 단순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나를 무지하게 만들고, 지루함을 1초도 참을 수 없게 만든 원인은 첫 줄에 나왔다시피 유튜브와 SNS의 트렌드 때문일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짧은 단편 영상들, 단순 '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외 스토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재미를 찾는 것보다는 이미 재미가 보장되어 있는 과거 추억팔이 영상들을 보는 게 더 편했고, 조회수가 많이 찍힌 영상들이 알고리즘으로 나와 찾을 필요도 없이 쉽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즐비하기에 있어 각자의 취향을 찾을 시간도 없어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왜, 갑자기 엔딩을 끝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는가 하면 연휴 동안 심심했던 내가 최근 넷플릭스 계정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는 계정 주인이 과거에 보았던  '**님의 시청 중인 콘텐츠'라는 목록이 있는데, 내가 보았던 수많은 콘텐츠 중에 반 이상을 본 콘텐츠가 하나도 없었고, 그중에서도 같은 것만 되돌려 보는 게 70% 이상을 차지했다. 심지어 신규로 찾아본 콘텐츠는 10분 이상 보지도 않고 재미없다고 단정 지으며 원래 예전에 보던 것들로 다시 돌아갔다.


순서대로 디스인챈트,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릭 앤 모티.  최근 무한도전 다음으로 많이 봤던 애니들이다. 취향이 어쩐지 과거보다 더 유아틱 해졌다.

벤자민의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처럼 내 교양 수준이나 문학적 취향은 점점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재미로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위의 작품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점차 나만의 분위기와 더 깊은 취향을 나 스스로가 찾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과거처럼 차라리 프랑스 영화를 즐겨 보는 '나'의 심취해 캐릭터를 잡고 빠져들고 싶어도 이젠 그럴 체력조차 바닥이 났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8시가 넘었고, 주말에는 못 만나는 친구들을 만나기 바쁘다가 어쩌다 여가시간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유튜브로 직행하는 손가락 때문에 하루 일과를 다 써버렸다.


사실  모순된 핑계일  있지만, 현재  상황은 이렇다. 시작은 쉽지만, 끝을 맺는건 어려운. 넓게 보자면 그게 콘텐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업무적 상황과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같아 씁쓸하다. 어떻게 하면 시작이 쉬운 것처럼 끝을 맺는 것도 쉬워질  있을까. 오늘 알아챈 나에게는 당장에 풀지 못한 숙제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 차렸다는 것부터가 나쁜 습관을 고치는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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