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어렸을 때부터 내려왔던 징크스가 있다. 바로 생일날 꼭 눈물 한 번은 쏟게 된다는 '눈물의 생일 징크스'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예쁘게 그려놓고 생일월이 다가온 순간부터 하루하루를 기다렸던 나에게, 항상 탄생일은 실망감과 불편함, 행복하지 않은 일들에 연속이 많았다. 그래서 어른이 된 순간부터 나는 내 생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최대한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더 담담하고 아무 날도 아닌 듯이 굴어야 불행한 일들이 생기지 않았다.
내일은 내 인생에 꽤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을 법했던 날이었다. 바로 처음으로 왼쪽 흉이져 있는 어깻죽지 쪽에 첫 타투를 새기려 예약을 잡아놓았다. 설날 연휴 내내 그날만 다가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안을 슬쩍슬쩍 보여주며 자랑도 하고, 몸에 무언가를 처음 새긴다는 생각에 설레 한동안 계속 텅 빈 어깻죽지만 바라봤다.
그런데, 방금 커다랗게 부푼 기대의 풍선을 바늘로 콕 찌르는 듯한 연락이 왔다. 이틀 전, 손님으로 왔던 분 중에 코로나 확진자 분이 있어 예약을 미루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작가님께서는 음성이셨지만 안전을 위해 일주일 동안은 작업을 하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나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고 날짜를 미뤘을 뿐이지 달라진 건 잔뜩 김샌 내 기분 말고는 없었다.
왜 항상 기대를 하던 일이나 약속은 실망하는 일이 생기는거지?
내 삶에서 대부분 기대는 실망을 불러왔던 것 같다. 기대만큼 기쁨이 찾아온 것보다 실망과 허탈함이 대체로 찾아왔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기대를 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고, 미심쩍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안 그러면 꼭 뒤통수를 맞는 탓에 최대한 기뻐하지 않으려고 시답지 않은 노력을 하는데 가끔 그걸 깜빡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기대란 뭘까? 그리고 난 어느 정도 충족받고 싶은 걸까? 단순히 어떤 일이 이뤄지길 원하는 거? 내겐 기대란 언제부터인가 어떤 일이 이뤄지길 원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약속이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기대를 하는 순간 충족되어야 한다는 집착이 생기고, 곧 이것은 실망감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그렇다면 난 앞으로도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기대가 갖고 있는 기쁘고 희망찬 감정을 버린다는 게 내 전체적인 삶에 있어 큰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난 '기대'를 하지 않는 방법보다는 '실망' 하지 않는 방법부터 배워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기대라는 기쁘고 희망찬 감정을 버리는 것보다는 실망이라는 서운하고 미운 감정을 버리는 게 나에게 더 긍정적인 방향이 될 것 같았다. 지금은 우선 실망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으니 천천히 줄여가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기대'를 마음껏 해도 상처받지 않은 나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내 생일날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도 온전히 기쁨과 희망으로 고대하는 나 자신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