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워서 올리는 리뷰 - 서올리
“난 웃기는 걸 좋아한다. 전작 ‘유전’과 ‘미드소마’도 블랙코미디다. 이번 영화는 특히 유머가 많다.” 감독이 나서서 자신의 영화를 코미디라고 주장하지만 곧이듣기 어렵다. 누군가의 머리가 터지고 사탄주의적인 상징이 쓰이며 불쾌한 이미지가 나오는 영화를 만드는 차세대 공포 거장의 말이기 때문.
미쳐도 단단히 미쳤을 것 같은 이 감독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을까. 아리 애스터 감독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7월 5일 개봉)는 감독의 머릿속을 엿볼 수 있는 실마리 같은 영화다.
지난 28일 광진구 카페에서 만난 애스터 감독은 신작에 대해 “평소 내가 두려워하는 것, 흥미로워하는 것들을 잔뜩 넣은 ‘보’의 세상에 애착이 크다”며 “영화는 ‘나’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영화는 쉰을 앞둔 나이에도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성장이 멈춘 주인공 ‘보’(호아킨 피닉스)가 엄마(패티 루폰) 집으로 가는 여정을 그렸다. 이 여정은 환각제를 털어넣은 듯 실재와 환상, 기억이 뒤섞인 카프카적 부조리가 가득한 악몽이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서 출발한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빗나간 모성과 그런 엄마에 대한 아들의 죄책감을 바탕으로 공포를 만들어 나간다. 전편처럼 가족이란 주인공에게 끊어낼 수 없는 굴레다. 애스터 감독은 “아무리 건전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기대와 실망, 스트레스가 뒤섞여 있다. 모든 가족 관계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에선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가장 편안한 공간이어야 하는 집은 공포의 장소로 변한다. 일상을 낯설게 함으로써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 영화에서 머리를 자꾸 훼손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까. “재미있잖아요. 그런 장면을 넣으면 만족스러워요.”
부조리는 경우에 따라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가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하는 이유다. 애스터 감독은 “가장 영향받은 예술가를 꼽으라면 카프카”라며 “삭막한 세상에서도 시적인 것을 발견한 그는 정말 웃기다”고 말했다. 한시바삐 엄마에게 가야 하는 보의 출발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지연되고 그럴 때마다 힘없이 수긍하는 ‘보’의 모습은 카프카 소설 ‘소송’과 ‘성’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이 과정에서 보는 따스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유사 엄마·아빠의 양자 노릇을 하고, 연극을 보며 ‘가지 않은 세계’에 대한 환상에 빠진다. 그는 갈림길 앞에 놓인다.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회귀할 것인가.’ 하지만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처럼 그의 기대는 허무하게 좌절된다. 영화는 보의 오디세이라 할 정도로 신화적이다. 감독에 따르면 성경의 구약과 그리스 비극, 테너시 윌리엄스 희곡의 멜로드라마적 측면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
애스터 감독은 한국 영화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그는 고전 영화 ‘오발탄’부터 박찬욱·봉준호·이창동·홍상수 감독을 일일이 거론하며 “영화의 구조나 형태를 자유롭게 갖고 노는 한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