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워서 올리는 리뷰 - 서올리
“이 영화는 제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영화들과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현장에서 배우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쏟아부은 영화예요. 제 온갖 것들을 가져온 거죠.”(18일 시사회에서 류승완 감독)
26일 개봉하는 영화 ‘밀수’는 류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의 재미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총망라됐다. 경쾌한 리듬의 연출과 찰진 대사, 역동적인 액션까지. 그리고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충분히 채운다. 다만 정교한 플롯을 가진 매끈한 범죄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적 순간에 집중한 거친 활극에 가깝다. ‘베테랑’ ‘모가디슈’ 등 류 감독의 최근작 보다는 ‘피도 눈물도 없이’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 등 초기작이 연상된다.
1970년대 어촌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해녀 진숙(염정아)과 춘자(김혜수)는 자매와 다를 바 없는 사이지만, 춘자가 추진한 무리한 밀수로 진숙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죽으면서 한순간에 멀어진다. 춘자와 진숙은 ‘밀수왕’인 권 상사(조인성)와 진숙 아버지의 배를 넘겨받은 장도리(박정민), 세관 계장 장춘(김종수)과 얽히고설키며 해묵은 감정을 털고 마지막 ‘한탕’에 나서야 한다.
영화는 한국 상업 영화 사상 유례없이 통쾌한 여성 서사를 취했다. 춘자와 진숙, 다방 마담 옥분(고민시) 등 영화 속 여성들은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반면, 남성들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남성 대 이에 저항하는 여성이란 선악의 구도는 명확하지만, 남성을 무조건 무능력하거나 악랄하게 그리고 있진 않다. 춘자와 진숙이 한 명은 위로, 한 명은 아래로 움직이며 물속에서 하이파이브하는 장면은 그들의 깊은 연대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장면은 깊이 6m 수조에서 촬영됐다. 염정아는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고, 김혜수는 공황장애에 촬영 막판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까지 당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장면을 직접 해내는 열정을 발휘했다.
후반부 해녀들과 장도리 일당의 바닷속 결투는 ‘충무로 액션 장인’ 류승완이 처음 시도하는 회심의 역작이다. 타격감 대신 유연함이 강조된 이 수중 액션 신은 새로운 리듬감을 준다. 류 감독은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수중에서의 액션 때문”이라며 “지상에선 중력의 한계가 있지만 물 안이라면 수평과 수직, 상하좌우 동선을 크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 남성과 여성이 육박전을 하게 되면 처절하게 흐를 수밖에 없는데, 해녀가 물속에서 남성과 싸운다면 훨씬 경쾌하고 새로운 액션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 등 신구의 조화가 환상적인 출연진은 여름 한국 영화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김혜수는 매번 피치를 올리며 극을 이끈다. 다만 춘자가 팜파탈적인 캐릭터이다 보니 ‘타짜’의 정 마담이 연상되는 측면이 있다. 염정아는 안정적으로 극을 뒷받침한다. 조인성은 분량은 다소 적지만, 본인의 매력이 극대화된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를 남겼다. 비열한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게끔 연기한 박정민과 통통 튀며 영화에 발랄함을 입힌 고민시는 발군이다.
영화는 바다가 배경이지만 서부극의 향기가 난다. ‘이방인’ 춘자가 마을로 돌아와 진숙 등 기존 주민들과 합심해 복수하는 이야기의 구조나 결투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방식, 춘자와 진숙의 얼굴을 바다·하늘 배경에 클로즈업으로 담는 연출 방식에서 기인한다. 반복해서 나오는 바닷가 절벽 풍경은 존 포드 영화의 모뉴먼트 밸리가 연상된다. 남성 카우보이 대신 해녀들이 활보하는 서부극인 셈이다.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의 분위기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으로 극대화됐다. 최헌 ‘앵두’부터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김추자 ‘무인도’까지 그 시절 노래들이 영화에 착착 감긴다. 류 감독은 “영화의 배경인 70년대의 세계로 가장 빨리 인도해준 게 음악이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