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한복판에서 고통스러웠던 '아들의 봄'을 소환합니다.
창에 서린 차가운 성에를 닦아내자, 묻어두었던 그해 봄의 통증이 선로를 타고 밀려온다.
새벽 4시 50분, 열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한다. 기차는 졸린 눈을 비비듯 부드럽게 선로를 타고 흐른다. 손바닥으로 슬쩍 닦아낸 창밖 풍경이 물 위에 번진 수묵화처럼 스며든다. 지금은 메마른 겨울 들판이지만, 눈을 감으면 물이 차올라 은빛 윤기가 반짝이던 그해 봄의 논들이 선명하다. 모심기를 준비하듯 가지런하고 정갈하던 논. 사람 손길이 지나간 흔적은 마치 빗살무늬 같았다.
아들도 그랬다. 자기가 원하던 공학 공부에 정성을 들였다. 무언가를 만들 땐 꼭 다듬고 또 다듬었다. 마음을 쏟은 자리엔 반짝이는 윤기가 감돌았다. 반듯한 논처럼, 정성이 밴 결과물이었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시절, 아들이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업은 적이 있다.
“왜?”
“그냥요.”
아들의 눈가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어렸다. 논둑을 스치는 바람처럼, 말없이 웃고 지나간 장난이었다. 그땐 몰랐다. 그 등이 그렇게 멀어질 줄은.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프로그래밍 팀에서 일했다. 그러다 인공지능을 접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올 것 같아요. 사람을 알고 싶어요.”
몸과 마음을 공부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주춤했다. 열정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길. 말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듯, 6개월의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아들의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허락했다.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매일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등은 장마 속 태풍에 쓰러진 벼 이삭 같았다. 앙상해진 얼굴, 빠져가는 체중.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파도로 밀려왔다.
'하고 싶은 공부니까 후회는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암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돼요.”
아들은 젖은 벼 이삭처럼,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말은 비수처럼 가슴을 스쳤다. 외우지 못한다는 건 곧 무너진다는 뜻. 흔들리는 외줄 위를 걷는 듯한 아들의 마음. 그 위태로운 외줄 위에, 나의 심장도 함께 타들어 갔다.
그럼에도 아들은 멈추지 않았다. 도표를 그리고, 흐름을 따라 길을 냈다. 마치 동맥을 따라 피가 흐르듯, 공부의 경로를 따라갔다. 암기 대신 이해를 택하고, 이해 위에 반복을 더했다. 공부량은 벽돌처럼 쌓여갔지만, 희망은 여전히 멀었다. 그 벽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짚으며,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갔다. 노트를 만들고, 반복하며 익혀 나갔다. 쓰러진 벼를 묶듯, 나의 등도 함께 묶었다. 무너질 듯 위태롭던 하루가, 버텨낸 시간 위에 조용히 쌓여 일상이 되었다.
내가 프로젝트 과제를 정리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아들이 다가왔다.
“목록과 금액만 넣으면 계산이 자동으로 돼요.”
그러더니 노트북을 열고,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했다.
“휴대폰으로 수정도 가능하고요. 필요하실 때 다시 열 수 있게 저장도 해둘게요.”
끙끙거리며 과제하던 엄마의 ‘석기시대’ 방식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들의 얼굴엔 여유가 묻어났다. 이제는 더 이상 멈춰 서 있지 않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향으로,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노트북 앞에 앉은 아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등이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 시골에서 보던 논두렁을 닮아 있다. 굽이굽이 휘어진 그 길. 비에 패고, 태풍에 움푹 꺼졌지만, 묵묵히 이어지던 길. 반듯하진 않아도, 끝끝내 자신의 방향에 닿아 있는 길.
아침 7시 30분, 이번 정차역은 동대구역입니다. 기차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선로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내 마음도 논두렁을 따라, 아들의 등 뒤를 토닥이며 조용히 따라간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빌어본다. 우리가 함께 겪은 이 아픔이, 다시 피어날 봄의 가장 깊은 거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