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해진 껍질 속의 당도

피천득의 <봄>에 부치는 나의 뒤늦은 답장

by 달빛

지나간 이름 앞에서


어느 날 문득 책장을 넘기다, 잃어버린 젊음과 마주했습니다. 피천득 작가는 〈봄〉을 통해 젊음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 문장의 끝에서 저만의 답장을 써 내려가고 싶어 졌습니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 재킷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 피천득, 〈봄〉


이 문장을 덮으며, 나의 계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젊음은 어느 날 문득, 돌아갈 수 없는 이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름 앞에서 나는 잃어버린 나의 젊은 날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잃어버린 젊음의 현실을 마주하며, 저 또한 내 젊은 날을 가만히 그리워해 봅니다.


"그것은 미련일까요, 그리움일까요. 어쩌면 그 시절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했다는 조용한 아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쉬움 너머로, 중년의 멋짐이 깃들기를 소망해 봅니다. 풋사과의 푸릇함이 싱그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잘 익은 사과의 맛이 사각사각 꿀이 떨어지는 맛이라면 또 얼마나 근사할까요.


청춘이 껍질째 씹어 먹던 풋사과의 아릿한 싱그러움이라면, 중년은 긴 여름의 뙤약볕을 견뎌 내고 안으로 당도를 채운 ‘꿀사과’의 계절입니다. 겉모습은 조금 투박해졌을지라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삶의 진정한 단맛이 사각거리며 터져 나옵니다.


그 단맛을 입안에 굴리며, 이제는 지나온 젊은 날을 향해 미소 지어 봅니다.


피천득 작가가 그리워했던 젊음의 아름다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투박해진 껍질 속에 감춰진 저만의 ‘당도’를 사랑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계절은 지금, 어떤 맛으로 익어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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