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의 현, 곡선의 손길

: 9할의 직선과 1할의 곡선

by 달빛

예스러운 책장이 천장 높이까지 촘촘히 서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공간의 9할은 아이의 전집과 남편의 전공 서적들로 채워져 있었고, 내 책은 구석진 칸에 몇 권 남짓 꽂혀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남편이 ‘헌신적인 아내’가 되길 바라며 권해준 수양록이나 요리책들이었다.


내가 모처럼 시집 한 권을 펼치면, 그는 슬그머니 다가와 '살림하는 여자가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에 빠지면 못쓴다'며 간섭을 시작하곤 했다. 나만의 사색을 즐기려 방문을 닫아도, 문틈 사이로 그의 ‘현모양처론’이 엄격한 잣대가 되어 밀고 들어왔다.


남편의 가부장적 권위는 숨 막히는 직선 같았다. 아버님이 경제를 책임지고 어머님이 안살림을 도맡으셨던 옛 풍경만이 가정의 유일한 정답이라 믿는 듯했다. 그는 마치 군대 지휘관처럼, 직선 위에 모두를 일렬로 세워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나에게 그 직선은 늘 숨 막히는 족쇄였다. 내 곡선 같은 마음은 바람의 결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고 싶었으나, 그의 단단한 벽에 번번이 부딪혀 멍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기사 속에서 진정한 품위와 권위를 지닌 명인을 만났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었다. 그는 삼대독자라는 무게와 전쟁통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도 가야금을 지켜내기 위해 부모님이 원하는 법대에 진학하는 치열함을 보였다. 그러나 나를 가장 전율케 한 것은 그의 예술적 성취가 아니라, 아내와의 ‘거리’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1층은 아내의 영토이고, 2층은 나의 영토입니다.”

명인은 담담히 소개했다. 그 집의 계단은 단순한 층간 통로가 아니었다. 서로의 고유한 세계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자, 서로를 존중하는 지극한 거리였다. 거실에는 가야금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고, 여든을 앞둔 명인의 눈동자는 여전히 총명하고 배우기를 갈망하는 학생처럼 빛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권위는 반드시 직선처럼 상대의 공간을 침범하고 강제해야만 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곡선처럼 부드럽게 흐르면서도 나만의 단단한 경계를 지킬 때, 비로소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래도록 애틋하게 갈망하던 자유로움을 가졌기에, 지나온 고단한 시간조차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스며든다. 은은한 달빛 아래, 이제는 오롯이 확보한 나만의 서재에 들어와 찻잔을 놓는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라는 수식어를 지우고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시간. 이 유연한 곡선의 호흡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 삶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깊은 밤, 벗이 찾아오면 우리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감성적인 벗의 글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부드럽다. 반면 나의 글은 나무토막처럼 덤덤하고 투박하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하지만 투박한 나무토막도 한겨울 찬 바람 부는 마음 한편에서 묵직하게 타올라 끝내 훈훈한 온기를 남기는 장작이 된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소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직선의 현에서 비롯되나, 깊고 묵직한 떨림을 빚어내는 것은 결국 곡선의 유연한 손길이다. 날 선 긴장마저 춤추게 하는 것이 농현이듯 말이다.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조우’처럼, 멍들었던 나의 굴곡진 마음도 마침내 은은한 삶의 무늬로 피어날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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