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를 받아들이다

by 낮별

긴 시간 책을 읽기가 힘들어지고, 컴퓨터 작업을 조금만 해도 눈이 피곤해지기가 일쑤라 안과를 찾았던 날이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시력 변화는 없다고 했고 다만 안구건조증이 있다며 안약 처방을 내려주었다. 쉰이 가까워질 때부터 하나둘씩 생겨나는 몸의 이상증세들을 설명하는 각종 질병명에 더해 안구건조증이라는 다소 가볍고 노화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그러니까 젊은 애들도 흔히들 달고 다니는 질병명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의사는 예고도 없이 내 눈꺼풀 아래위를 면봉으로 마구 헤집더니 눈꺼풀 아래위에 수직으로 분포하고 있는 이름도 참 예쁜 마이봄샘의 기능이 떨어졌다고 한다. 넓게 펼쳐진 창을 향해 놓여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증강현실 안경같이 생긴 기구를 끼고 눈 마사지를 받았다. 사방에서 눈을 눌러댄다. 계속되다 보니 내 눈알을 뽑으려는 셈인가 싶어 그만두고 싶어질 때쯤 작동이 끝난다. 원리는 간단하다. 손으로도 이런 마사지는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다. 눈알이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눌러대면 그만이다. 안과에 갈 때마다 저 창이 넓은 방,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은 뭘 하는 사람들인가 궁금했었는데 내가 드디어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뭐 대단한 일 같아 보여도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 대다수다. 창이 그리 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눈알이 뽑힐 것 같은 마사지를 받고 기구를 벗으면 눈앞에 핑핑 돌아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책 보는 불편함을 없애고자 병원을 찾은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눈알만 뽑힐 뻔했다.


비틀대며 병원을 빠져나와 처방받은 안약만 찾아가려다 길 건너 안경점을 찾았다. “책 보기가 힘들어요, 컴퓨터 작업을 못 하겠어요”라고 안과 의사 앞에서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내 말에 안경사는 안경 처방전과 내 안경을 점검해보더니 “돋보기 맞추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순간 내 표정이 썩어졌었나? 안경사는 나를 보더니 “그 마음 이해 가요. 처음 돋보기 맞출 때 우는 분들도 있어요.” 아, 참으로 대견하게 나는 울지 않았다. 다소 충격을 받아 얼굴이 일그러졌을 뿐이다. 마침내, 돋보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돋보기라는 무기를 얻었으니 이제 책도 실컷 읽고, 글도 실컷 쓸 수 있을까? 그것을 시험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글자가 조금 커 보이기는 하지만 돋보기를 처음 써서인지 초점이 흔들려 아직은 좀 어지러워서 역시 오래 쓰고 있기는 불편하다. 적응하면서 차차 괜찮아질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 일단, 돋보기안경 덕에 글자 포인트 10으로도 이만큼 작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사실, 돋보기안경이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고 바른 표현은 ‘근용 안경’이라고 한다. 가까운 거리를 잘 보기 위한 안경이라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찾아오고 가까운 것들이 흐려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순리이다. 이제 그만큼 나이가 들었으면 대충 흐리게 보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결점은 넘기고, 책도 그만 보고 먼 곳을 바라보라는 명령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맞춘 ‘근용 안경’은 섭리를 거스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 또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근용 안경의 시작을 노년의 입문으로 보는 편보다 섭리를 거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보는 편이 낫겠다 싶다. 그래, 나는 욕심꾸러기다.


남들도 때가 되면 다 맞추는 돋보기안경 하나 맞추고서 유난스럽다고 면박 주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알려준다. 나는 적어도 울지는 않았다. 조금 우울해질 뻔하기도 했지만, 이 글을 쓰고 나니 우울감도 사라졌다. 역시, 글쓰기는 치유다. 돋보기안경 맞추기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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