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수업 교재로 선정된 책 중에 절판이 된 책이 있다. 시립도서관에 검색해 보니 딱 한 곳에 있길래 상호대차를 신청해 놓았었다. 책이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어제 해가 지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서관 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이사 와서 처음 사귄 아이의 친구 엄마였는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두 녀석이 가까이 지낼 때는 그 엄마와도 종종 만났는데 둘 사이가 멀어지니 엄마들도 저절로 소원해졌다. 엄마들의 우정이란 것이 이렇게 허약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무척 반가웠다. 잠깐 길에 서서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다가 이야기가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다시 도서관으로 함께 갔다. 시원한 도서관 휴게실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하면서 두 아이가 멀어지게 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 녀석은 성향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 집 아이는 한 동안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더니 어느 날은 빡빡 밀기도 했다. 요즘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며 연기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뽑는 크고 작은 임원 선거는 모조리 출마했다고 들었다. 이렇게 존재감을 뽐내고 싶어 하는 아이인 것이다. 반면, 우리 집 녀석은 튀는 행동은 일절 하기 싫어한다. 학교 공개수업 때 가 보니 팔을 겨드랑이에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손 한번 들지 않았다. 제 형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부모 닮아 그런 거지. 나도 남편도 그런 학생이었다. 두 아이가 멀어지게 된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은 불변의 법칙이다. 우리 아이는 그 친구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 친구는 우리 아이가 지루했을 것이다.
나는 그 집 아이의 적극성과 확고한 자기 정체감이 부러웠다. 아이가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몇 년 몰두했던 시기를 지나고 그 꿈이 좌절된 후 아무런 꿈을 찾지 못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분명히 알고,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남의 집 아이가 예쁘고 신기했다. 지난주 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꿈이 없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다른 꿈이 없는 상태라고, 그러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걱정보다는 안타까움에 가깝다. 땡볕에서도 땀을 뽈뽈 흘리며 장시간 힘들게 훈련받으면서도 즐거워했던 그 아이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출받은 책을 가지고 복사와 제본을 맡기고 돌아오느라 제법 걸었더니 땀에 흠뻑 젖었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야외에 펼쳐놓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니 맥주 생각이 간절해졌다. 수요일마다 아파트 입구에 닭꼬치 트럭이 와있다. 맥주와 닭꼬치를 사가지고 들어가 남편과 함께 한 캔씩 나눴다. 벌써 야구 정규시즌 시합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엘지 경기는 없는 날이었다. 남의 팀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보는 둥 마는 둥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으로 사촌오빠와 통화를 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웬 일로 전화를 다했대?" 오빠의 반응도 첫 반응도 딱 그랬다. "무슨 일이냐? 뭐 안 좋은 일 있냐?" 그냥 안부전화라는 말에 요즘은 오랜만에 걸려오는 전화가 두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일로 사촌오빠와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도 뉴스에서 봐서 너무 잘 알고 있는, 게다가 우리 동네에서 벌어진 사고였기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일이었다. 장례식 마친 친지들끼리 하는 식사 자리에 돌진해 온 자동차, 그 사고로 인해 80대 여자분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세상에나, 뭐 이런 끔찍한 일이 있지? 앞으로 1층 식당 창가자리에는 앉지 말아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흘려듣고 만 뉴스였다. 사촌오빠는 그 사고로 가까운 분을 잃었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주니 남편도 큰 눈이 더 커다래졌다. 남편 회사 근처 식당이라 잘 알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을 떠올렸다. 누군가 죽어도, 죽었다는 것을 모르면, 그 사람에게 누군가는 살아있는 것. 그럴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안부전화했더니 오랜만의 전화를 긴장하며 받아야 했다는,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이 돼 버린 느낌에 씁쓸하기도 했다. 집안에 큰일이 없으면 볼 일도 없고, 연락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 된 것일까?
사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오빠가 지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나서 몹시 실망했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오빠가, 아니 우러러보던 잘난 오빠가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나 싶었다. 그 뒤로 서로 연락이 없었고 오빠가 지지했던 그자가 불법계엄을 선포하고 탄핵되고 구치소에 수감되고 나서야 나는 오빠에게 안부를 물어보고 싶어졌다. 오빠의 결정에 후회가 없는지, 이 지경이 된 것에 소회가 어떠한지도 궁금했다. 오빠가 서둘러 전화를 끊어야 했어서 그런 얘기는 하나도 못했다. 혹여 한가해서 그런 대화로 이어졌고, 오빠의 신념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우, 현기증 난다. 오빠가 바빠서 전화를 끊기를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모르는 채로 사는 편이 낫다.
살던 대로 무심한 듯 다정하게 살아야겠다.
모두의 삶은 거미줄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물방울처럼 아름답고 연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