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전하는 안부
내 휴대폰 플레이리스트에는 올드팝, 요즘팝, 올드가요, 요즘가요, 클래식, 명상음악 리스트가 있다. 명상음악은 아침에 남편과 보이차를 즐길 때 주로 틀어놓고, 가요와 팝은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돌아가며 듣는다. 클래식은 아주 가끔 찾아 듣게 되는데 요 며칠 클래식 음악만 플레이시키고 있다. 가사가 있는 노래가 다 소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해서다. 음악도 음식처럼 마음이 당기는 대로 향한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버스가 셔틀처럼 이어지고 버스를 타면 5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줄지어 오는 버스를 외면하고 나는 걷기로 했다. 왼편에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벗하여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걸었다. 그토록 뜨겁던 여름날은 가고 걷기에 참 좋은 날이다. 저녁 바람이 선선하여 강아지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걷기 좋은 쾌적한 기온,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두 개의 달빛, 집까지 오는 20여분 들끓던 마음은 잠잠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때 큰 아이의 전화가 왔다. "엄마, 뭐 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힘이 났다. 아이는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가려고 나왔다며,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아이는 무뚝뚝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이럴 때 보면 더없이 다정한 아들이다. 저녁을 잘 챙겨 먹었고, 방학중 치른 기사 자격시험 준비가 새 학기 수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서 나는 안도했다. 잘 지내고 있구나.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으며 안심시키고 안심했다.
불현듯 생각났다. 나도 엄마의 안부를 그렇게 물었었다. "엄마, 뭐 해?" 혹은 "엄마, 어디야?"
진짜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다정한 마음이었는데, 질문은 그렇게 정 없이 무덤덤하게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이렇게 묻는다. 전화해서 대뜸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물을 수 있는 사이가 정말 편하고 가까운 사이인 것이다. 하긴, 요즘은 별 용건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용건 없이 전화하고, 대뜸 어디서 뭘 하는지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덜 외로울 것 같다. 목소리로 전하는 안부가 귀해졌다.
엄마가 떠난 가을 정취가 시작되어서일까? 아들의 "엄마, 뭐 해?"에 설레서일까?
나도 오늘 아침엔 문득 "엄마, 뭐 해?"하고 전화하고 싶다. 6년째 못 하고 있는 그 말.
"엄마,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