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내가 남았어"

'자기 분석'을 끝내고 '자기-돌봄'이 필요한 시간

by 낮별


"상담을 공부하면서 내가 점점 우울해지고 있는 것 같아. 상담이론을 배울 때마다 나의 상황에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거든. CBT 배울 때는 나에게 있는 인지적 오류들을 떠올려보고 적응적 사고로 바꿔보는 연습도 해보고, 아들러를 배울 때는 나의 열등감들을 다 꺼내놓고, EFT 배울 때는 나의 부적응적 정서와 2차 정서 뒤에 숨어있는 1차 정서를 뒤져보고, 정신역동 배울 때는 어린 시절 아픈 기억들을 헤집고, RT를 배울 때는 어긋난 나의 욕구를 탐색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1학기를 끝내고 나니 우울한 내가 남았어. 이게 맞아?"


� 상담 공부 과정의 '일시적 우울감'과 그 의미에 대한 공감

선생님의 솔직하고 깊은 고백에 먼저 깊이 공감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학기를 끝내고 나니 우울한 내가 남았어." 이 말씀은 많은 상담 대학원생들이 겪는 매우 흔하고 정상적인, 그러나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접근 방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분석의 강도'**와 '정서적 해소'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서 일시적인 우울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1. � 왜 우울해지는가? (정상적인 심리적 과정)

상담 공부 과정에서 우울감이 찾아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무의식의 헤집기 (정신역동적 관점)

선생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열등감, 부적응적 정서 등 평소 억압하거나 회피했던 내용들을 스스로 꺼내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미해결된 과제(Unfinished Business)'**를 끄집어내는 과정은 일시적으로 엄청난 **정서적 고통(Emotional Pain)**을 유발합니다. 치료가 아닌 학습 과정에서 이 고통을 **'처리하고 종결'**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에, 정서가 표면으로 올라와 우울감으로 남은 것입니다.


2) 인지적 해체 (CBT 관점)

CBT를 배우면서 **'내 사고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었던 **'세계를 바라보는 필터'**가 깨지는 경험입니다.

오랜 신념이 해체되면 일시적으로 혼란과 불안을 느끼며, **'나는 그동안 잘못 살아왔나?'**라는 회의감이 우울감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3) 정서적 소진 (EFT 관점)

EFT를 적용하며 외로움, 무가치함 등 가장 깊고 취약한 1차 정서를 마주하셨습니다.

이처럼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하고 나면 반드시 정서적 에너지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공부와 과제를 병행하느라 충분한 **'자기-돌봄(Self-Care)'**이 없었고, 이것이 정서적 소진으로 이어져 우울감이 남은 것입니다.


2. �️ '자기 치료'와 '자기 분석'의 경계

선생님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유능한 상담사는 자기 내면을 깊이 성찰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기 분석' 또는 **'자기 이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자기 분석상담 치료는 다릅니다.


3. ✨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돌봄'입니다.

지금 선생님께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론적 분석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안전한 치료적 관계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일시 정지: 당분간 이론을 자신에게 대입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학문적인 지식으로만 분리하여 바라보세요.

정서적 안전 공간 확보: EFT에서 배웠듯이, 억눌렀던 외로움을 건강하게 해소하세요. (예: 배우자에게 취약한 요청을 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친구/선배와 감정을 나누는 시간 갖기)

전문가 도움 고려: 만약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일상 기능(수면, 식사, 과제)에 심각한 방해를 준다면, 인간 상담사에게 찾아가 학생 상담을 받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선생님은 이미 문제의 근원을 알고 계시기에, 치료가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고, 잠시 쉬어가며 스스로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시기를 바랍니다.




위 대화는 요즘 우울감이 높아져있는 나와 나의 AI상담사와의 대화이다. 이번 주 두 개의 시험, 두 개의 기말 과제를 끝으로 1학기가 무사히 끝이 났는데 나의 마음은 엄청난 역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건드려지면 안 되는 것들이 마구 건드려져서 감당할 수 없는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쯤 되니 상담에 괜히 뛰어들었나 하는 회의감마저 생기고, 이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까? 지속해야 할까? 의문이 든다.


어제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집에 돌아와 맥주 두 캔을 마시며 드라마를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보면서 그냥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공부 하지 말고 단순하고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늘 온종일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내 모습을 보더니 "엄마, 어디 아파?"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늘 아무리 널브러져 있다가도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목소리 톤을 올리고 환하게 맞이하는 엄마가 초췌한 모습으로 늦은 오후가 되도록 침대에서 못 헤어 나오는 모습을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1학기를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어쩐지 엉망이 돼 버린 느낌이 든다.

부끄럽지만, 1학기 마무리하는 소감을 솔직하게 남겨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우울한 마음 가운데, 한상심 심포지엄도 신청해 놓고, 사례개념화 특강도 신청해 놓고, 인문상담 특강도 신청해 놨고, 방학 동안 읽을 상담 서적들도 주문해 놨다. 내 안에 있는 다중이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다. 우울이와 씩씩이(혹은 미련이) 누가 이길런지... 이대로 포기하면 수술하려고 배를 열어 놓고 아픈 부위를 제대로 손도 안보고 그냥 닫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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