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찾아 나선 의욕 (feat. 심리검사, Corey, 종강파티)
지난주 종강과 함께 몸과 마음이 탈진 상태에 빠져 며칠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잠 못 이루던 새벽, 지역 카페에 잠깐 들어갔다가 심리 검사받아 보실 분을 모집한다는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글을 올린 사람은 상담대학원생이라고 했고, 상담수련 과정에서 필요한 작업이라 저렴한 가격에 MMPI, TCI, SCT 세 가지의 검사와 한 시간의 결과 해석까지 제공해 준다고 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심리검사를 받아 본 적이 없으니 고민 끝에 신청했다. 나는 신청서에 상담대학원 1학기를 마친 사람이라는 것과 1학기 수업 끝에 마음이 많이 심란해져서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검사지가 카톡으로 전송되어 왔고 검사를 받았다. 검사 시간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되어서 눈이 피곤하고 힘들어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됐다. 특히 SCT(문장완성검사)의 질문지는 상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내용들을 완성하게 되어 있어서 이런 걸로 도대체 무슨 검사를 하겠다는 건지 의아했다. 가령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잊고 싶은 것은_______", "어렸을 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______",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_____", "남들은 모르는 나의 야망은_____", "나의 가장 큰 약점은_____", "나의 성생활은______" 이런 식의 문장들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해보는 테스트이니 비교적 성실하게 답변에 임했다. 겨우겨우 검사를 마치고 이틀 후 구글미트를 통해 결과 해석 시간을 가졌다.
구글미트에 접속하니 화면 속 선생님이 카메라를 켜달라고 했다. 줌만 사용하다가 구글미트를 처음 사용해서 카메라를 켜느라 허둥대다 카메라를 켰는데 나의 모습을 본 선생님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줄 알았어요. 어쩐지... 저 모르시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화면 속의 얼굴을 보았지만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5초쯤 어리둥절해하며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그제야 화면 속 얼굴이 낯익어 보이기 시작했다. 하아.... 목요일 수업을 함께 들었던 선배 선생님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수업에서 한 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분명했다. 그 선생님은 상담대학원 1학 차, 내 출생연도, 사는 지역을 보며 혹시나 혹시나 했다고 한다. 나를 잘 알고 있는 그 선생님 동기 선생님이 얘기를 듣더니 혹시나 나일지 모르겠다고 얘기해서 그때부터 혹시나 했다는데... 그러면서도 수도권에만 해도 상담대학원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우리 학교 재학생은 아닐 거라고 완전히 믿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둘 다 난감해졌다.
나는 갑자기 내가 SCT에 써넣었던 문장들을 급하게 떠올려보면서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지만 나보다 더 난감해하는 쪽은 그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심리검사를 배워서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심리검사 해석은 뒤로 두고 상담대학원 공부의 어려움, 그것과 관련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그 길을 먼저 지나가본 사람으로서 정말 귀한 경험들을 나눠주었다. 실제로 도움 되는 유용한 정보들도 마구 쏟아내 주었다. 선생님과 두 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고,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의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심리검사 결과보다 더 도움이 된 것은 그 선생님과의 대화였고, 추후에 슈퍼비전을 위해 카톡으로 이어진 질문에 답변하면서였다.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이런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었다. 자신감이 뚝 떨어져 무기력으로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짜잔 하고 내 앞에 나타난 귀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심리검사 결과는, 그 선생님 왈, 특이 사항이 없어서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어떤 결과가 해석하기 재미있는 걸까? ㅎㅎ
종강 전 마지막 상담심리학 수업은 줌으로 진행되었다. 코리 부부의 <좋은 상담자 되기>로 진행될 거라고 하여 나는 그 책을 사서 몇 챕터 미리 읽어보았다. 첫 챕터를 읽고 위로를 얻었다. 그 대단한 상담의 대가인 코리 부부조차도 초심 상담자일 때 헤매고 흔들리고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통해 상담의 매력을 다시금 느꼈다.
"기억하기로 발전은 매우 더디었고 나에게는 즉시적이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무한정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문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외부의 인정이 없더라도 인내하며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도 얻었다."
"나는 여러분이 자기 회의를 경험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을 붙잡아두는 게 무엇이든 도전해 보길 바란다. 가끔은 상담 전문가로서의 자기 미래에 대해 들뜰 것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낙담하며 대체 이런 노력을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계속해서 자신의 개인적 삶을 탐험하려고 한다면, 타인이 자기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 애쓰고 있을 때, 훨씬 잘 도울 수 있는 자리로 점점 가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밀접하여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많은 혜택과 선물을 가져다줄 수 있다. 자신의 삶의 특성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많이 주는 다른 일의 종류는 많지 않다. 타인을 돕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 만족감을 주기도 하고, 그 자체로 삶의 의미를 향상시킨다."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도 교수님이 걸어온 길에서 경험했던 좌절과 불안을 말씀하셨다. 나에게 심리검사를 해준 그 선배, 교수님, 코리 부부 이렇듯 이 길을 먼저 지나간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현재의 불안과 우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가 봐야 할 의미는 분명 있을 것이다.
우울도와 내향성이 높지만,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에서 힘을 얻는다는 나는 용기를 내어 금요일 종강파티에 참석했다. 학교 강당에서 갖가지 이벤트와 함께 맛있는 점심 식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동기 선생님들과 이어진 2차에서 밤늦도록 놀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이 얼마만의 나이트라이프인지... 몹시 즐거웠고, 몹시 시끄러웠다. 긍정적인 피드백과 격려가 무한정 필요한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것들을 나눠주었다. 자려고 눈을 감고 누웠는데 포차의 그 엄청났던 소음이 귓전에 계속 맴돌아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내향적이라고? 나 분명 MBTI검사 결과로는 ESFJ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