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 국민의 선택
지난주 상담대학원 면접이 있었다. 날씨는 무지 화창하고 그래서 발걸음도 가볍고 기분도 상쾌했는데, 면접장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해 대서 면접관의 질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덜덜덜 떠는 목소리로 어버버 대답했다. 이런 평가를 받아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면접관이었던 두 분의 교수님은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볼 때는 안경을 통해, 그리고 면접자들을 바라볼 때는 안경을 코 쪽으로 밀어내리고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응시해서 그 눈빛에서 다소 위압감이 느껴졌다. 눈빛이 마주칠 때마다 내가 말을 무슨 말을 잘못했나 싶어 움찔했다. 어투는 상냥한데 눈빛이 왜 매섭게 느껴진 걸까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마도 교수님들은 돋보기를 끼고 계셨던 것 같다. 함께 면접장에 들어간 분들이 한 분은 젊고 당차서, 한 분은 엄청난 연륜이 느껴져서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불합격이라고 해도 납득할만하다 싶었다.
그리고 어제 결과 발표가 났다. 놀랍게도 최종합격이었다. 당장 다음 주까지 등록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이다. 설명회, 서류전형, 면접 이 모든 순간에도 마음은 굳건하지 않았다. 해? 말아? 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을 때, 큰 아이의 명쾌한 조언으로 여기까지 왔다. "엄마, 합격하고 나서 고민해. 뭘 벌써부터 고민해?" 이 말인즉슨, 이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일찌감치 사전투표 이틀째 되던 날 아침 투표를 마쳤었다. 어제 대선 날, 남편은 골프 치러 나가고 아이는 친구와 농구하러 간다며 나가버려서 혼자 집에 있었다. 고향 친구가 김밥을 말다가 친구들이 보고 싶어 전화했다며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로 소집시켰다. 오피스 빌딩 가운데 있어서 대선 휴일에 손님이 적은 카페에서 친구가 말아온 김밥을 맛있게 먹고, 태국보다 맛있는 땡모반을 마시고, 수다를 질펀하게 떨고 왔다. 혼자 무료하게 집에 있던 휴일에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언제 만나도 편하다. 사실, 그들과 만나면 서로가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고, 하고 있는 일도 완전히 다른 분야라서 대체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 하고 또 해서 신물 나는 옛날이야기 재탕하면서 시시덕거리는 게 다 인데도 짱구 안 굴리고 떠들어대니 머리는 가벼워지고, 하도 웃어대서 눈가 주름살은 늘어서 온다. 분기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니 적정거리가 유지되어 언제 만나도 반갑기만 하다. 오리지널 TK출신인 우리들은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 노답이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거리낌 없이 대선 이야기도 나누었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만나자고 유쾌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빨간 나라, 파란 나라로 정확하게 동서로 쪼개진 형국이었다. 크게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혐오와 분열을 버리고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이길 바란다. (그게 가능하다고 봐?) TK출신으로 TK를 변명해 보자면 그래도 내 고향 어르신들은 직접 만나보면 엄청 정이 많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차마 배신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건 확실하다. 이렇게라도 이해해 보지 않으면 고향가기도 싫어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바람이 있다면, 저 빨간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일해 빨간나라 사람들을 우롱하지 않고, 더는 뉴스를 보며 일개 국민일 뿐인 내가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원해 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