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한 사랑

불안정 애착을 안정 애착으로

by 낮별

"엄마들은 자식을 두고 가지 않아. 원래 그렇게 못 해."


갈색 치마를 입고, 악어가죽 힐을 신고, 파란 여행 가방을 들고 카야의 엄마는 하얀 스카프 자락을 휘날리며 집에서 멀어져 갔다. 이 장면은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도입부이다.


몇 년 전, 이 책을 읽다가 도입부에서 책장을 덮어버렸었다. 나중에 다시 펼쳐 완독을 마치긴 했지만 이 책을 생각하면 도입부에서 멈춰 섰던 나의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애써 덮어두고 살았던 내 어린 시절 어느 때가 마법처럼 생생하게 펼쳐졌고, 나는 그 일을 글로 쓰며 펑펑 울어버렸다.




새로 시작한 책을 펴자마자 책을 덮었다.

억지로 봉인해 놨던 어떤 기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려서 나는 참 순한 아이였는데 이상하게 악을 쓰며 운 기억이 몇 번 있다. 엄마가 시내에 가는 날이면 나는 삽작거리까지 따라나가 나도 데려가라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었다. 시내 나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촌동네였기에 다리 건너 버스정거장까지 제시간에 가느라 치맛자락에 매달린 나를 휘이휘이 떨어트려놓곤 했다. "얼른 집에 가, 집에 가있으면 엄마 장에 갔다 금방 올게."

악을 쓰며 울고 매달리면 데려갈 법도 한데, 매정하게 나를 떼놓고 가는 엄마, 그땐 그렇게 서러웠다.


데려가지 못한 이유를 좀 더 커서야 알아차렸다.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가는 엄마 손에는 늘 뭔가가 한 보따리씩 들려있었다. 농사 지어 수확한 콩, 깨, 팥 같은 것들... 엄마는 그것들을 시장 한 귀퉁이에 깔아놓고 팔아서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도 사고, 양말도 사고, 옷도 사가지고 돌아왔다.

해지기 전에 엄마는 늘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오면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되었다. 어린 마음으로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가 눈물 나게 반가웠던 건 그래서였다. 엄마는 집에서 나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걸,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자식새끼들 때문이라는 걸 나는 어렸을 때 알아버렸다.


늘 돌아왔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건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무렵이었다. 엄마가 완전히 사라졌다. 엄마가 사라진 집에는 서울에서 할머니가 내려와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과는 정 반대의 할머니였다. 못 배운 며느리가 항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잘 난 아들이 이렇게밖에 못 사는 게 며느리 탓이라 여겼던 사람인지라 집 나간 엄마를 계속해서 욕을 해댔다. 엄마를 잃은 손녀에 대한 연민도 없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넓은 한옥집을 안팎으로 쓸고 닦아야 했다. 콩쥐와 신데렐라를 완전히 이해했다. 새엄마도 아닌데, 무슨 친할머니가 저러나 싶었다. 내 현실은 동화보다 잔혹했다.


그러다 나는 많이 아팠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바깥 마당에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마당에 누워있는 나를 본 당숙 아지메가 "아이고, 쟈가 왜 저러노?"하며 뛰어나오는 걸 어렴풋이 들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그때 누워서 바라본 천장의 무늬가 지금도 생각난다. 하얀 직각 사각형 패널에 구멍이 마구 나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 구멍의 무늬는 마구 나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규칙이 있었다. 규칙을 찾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원인 불명의 고열이 계속되었다. 시내 병원에서 의사는 뇌수막염이라고 진단 내렸다. 내 바로 위에 딸 하나를 생후 6개월 만에 뇌수막염으로 잃은 아버지는 나의 병명에 아연실색했다.


몇 달 만에 엄마가 병실에 나타났다. 나는 그 순간의 엄마가 지금도 또렷하다. 내가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참 예뻤다. 엄마는 몸에 살짝 달라붙는 검은색 시폰 원피스를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굵은 웨이브를 준 머리를 틀어 올렸고, 얼굴은 아주 하얬다. 병실로 들어선 예쁜 엄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나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부산에 있는 이모집에 지내면서 운동화 공장에 취직을 한 엄마에게 아버지가 연락을 했다. 애가 다 죽게 생겼으니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엄마는 뇌수막염이라는 말만 듣고 집을 왜 나오게 된 건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올라왔다.


엄마가 돌아오자 원인 불명의 고열이 사라졌다. 뇌수막염이라 진단했던 것이 오진인 것 같다며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엄마는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죽일 죄인입니다.. 를 반복했다.


퇴원하던 날, 아버지와 엄마와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택시 안에서 나는 마냥 좋았다. 조금씩 달라진 엄마와 아버지였는데 엄마는 예뻐졌고, 아버지는 다정해졌다. 두 분에게 내가 소중한 사람이구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덜컹대는 버스가 아니라 안락한 택시 안이라 더 좋았다. 승용차를 타 본 일이 거의 없는 시골 아이에게 택시를 탄 그날은 거의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큰소리 내지 않고 지냈다. 우리 집에 가장 긴 평화가 흘렀던 날들이다.


그러나 다시 악몽이 재개되었고... 엄마는 또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엄마에게 뭔가 크게 잘못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 보따리 보따리 들고나가 앉아 있던 엄마는 겨우 삼십 대였다. 집 나갔다 돌아온 엄마는 겨우 마흔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였다.


엄마가 아플 때 나는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었다. "엄마, 나는 엄마가 그때 돌아와서 너무 좋았는데... 엄마는 그 뒤로도 너무 힘들었지? 내가 진짜 불효녀야, 그렇지?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자식들 보며 사는 게 복이지. 그때 안 돌아왔으면 자식들 못 보고 살 뻔했지. 불효녀는 무슨... 효녀다 효녀."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날 병실에서 몇 달 만에 만났던 예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면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엄마의 인생을 내가 망쳐놓은 것 같은 그런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던 엄마를 잃어버렸던 경험, 사랑은 했겠지만 어쩐지 그 표현방식이 불안하기만 했던 아빠를 가졌던 나는 자존감이 낮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거부당할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애착관계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거에 내가 가졌던 불안이 무엇으로 기인한 것인지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전형적인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혼 전 연애를 할 때, 내 삶의 어느 순간보다 행복감에 차 있던 순간에도 나는 언젠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연인과의 이별을 상상하면서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곤 했다. 연인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에도 나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거부 민감성이 극도로 커져 있었던 것이다. 결혼을 해서도 그런 경향성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뾰족해진 감정이 트리거가 되어 참 많이 싸우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랜 세월 무던하게 나를 받아주고 인내해 준 남편덕에 오늘날까지 결혼 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불안, 나의 뾰족함을 버거워하지 않고 참고 살아줘서 고맙다. 애착 유형은 고착화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고, 나에게는 남편의 무던한 사랑이 나를 변화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아들의 연애를 곁에서 바라보면서도 애착 유형을 떠올렸다. 아들은 3년을 만난 첫사랑과 열렬히 사랑하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헤어졌다. 오랜 시간 예쁘게 만났던 아이들이라 헤어지고 나서 몹시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이별 타격이 그다지 없어 보였다. 몇 달 지나서 여자애가 먼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도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떻게 이렇게 쿨하게 헤어질 수 있으며, 미련 따위가 1도 없을 수 있는지.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실컷 사랑했으니 미련도 없지."


제 나름대로 힘든 시간도 보냈을 테고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거짓이겠지만, 잘 만났고 잘 헤어졌고 새로운 만남을 잘 이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랑도, 이별도 이상적으로 잘 해낸 아들이 부러웠다.

내심 너는 '안정 애착 유형'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그렇게 키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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