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을 날려 보낼 결심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소아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였다. 강남 8 학군에서 소아청소년들의 심각한 정신건강 수준을 고발하며 이렇게 된 이면에는 부모의 지나친 욕망과 잘못된 사랑이 있음을 지적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고자 7살까지 기저귀를 채우는 엄마가 있다고도 하고, 중고등학생이 되도록 잠자리 분리를 못 시키고 엄마가 데리고 자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두 돌이 되기 전에 기저귀를 다 뗐지, 그래도 중학생이 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잠자리 독립을 시켰지 하며 안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고등학생인데도 '우리 애기'라고 부르는 부모도 있어요."
중학생에게 '우리 애기'라고 부르는 사람, 바로 나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부모가 부르는 호칭이 아이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애기'라고 불리면 아이는 '애기'에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부르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하면서 큰 아이에겐 그랬던 기억이 없는데 왜 작은 아이에겐 '우리 애기'라는 호칭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걸까 생각해 봤다.
두 아이의 터울은 자그마치 열한 살이 난다. 아슬아슬하게 띠동갑을 면한 셈이다. 큰 아이를 다 키워놓고 뒤늦게 둘째를 만났을 때 나의 마음은 아이를 만나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두 번째) 초보엄마의 마음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뭘 해도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할머니의 마음도 컸다. 온 집이 떠나가라 앙앙대고 우는 것도 예뻐죽겠고, 싱크대 양념칸을 헤집어 간장을 다 쏟아놓고 그 위에 앉아 노는 걸 봐도 아이의 별스러운 호기심이 신기했고, 열이 나고 아파도 '음, 또 크려고 아프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다. 처음 학교에서 치른 시험에서 제 형은 한 번도 못 받아본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받아 와도 마냥 우스웠다. 그저 다음엔 좀 더 잘하자라고 했을 뿐이다.
한 마디로 큰 아이를 키우던 시절보다 훨씬 느긋해졌다. 대신 아이가 너무 빨리 자란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기발한 말과 행동으로 자주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랬던 순간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기록해 두지 않은 순간들은 망각 속으로 흩어져버렸음이 아쉽기만 하다. 몇 가지 생각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자면...
세 살 무렵이었다. "그래그래, 엄마가 믿어줄게"라고 하는 내 말 끝에 "빨리 미더 줘. 미더 달라고. 미더 내놔"라고 울기 시작했다. 미더가 무슨 먹는 건 줄 알았나 보다. 믿음이라는 말을 가르치느라 진땀 뺐다.
조금 더 커서 아이는 나중에 커서 '야구자'가 될 거라고 했다. 그게 뭐야?라고 물었더니 "나는 과학자 말고 '야구자'가 될 거라고"라고 했다. 직업에 따라붙는 다양한 접미사를 알아가느라 혼돈에 빠진 상태였다.
"엄마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형아도 안녕히 주머." 아이는 존댓말과 반말의 원리를 익혀가는 중이었다. 제 나름대로 응용이란 걸 시도해 봤지만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
차 타고 지나가다가 아이는 어떤 아파트를 가리키면서 "엄마, 저기 '내 아파트' 있잖아?"라고 물었다. '내 아파트라니? 너한테 무슨 아파트가 있니?'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그건 LH 아파트였다. 모두가 내 집 한 채의 꿈을 갖고 사니 '내 아파트'란 작명도 상당히 직관적이고 그럴듯해 보인다.
차만 타면 끝말잇기 놀이에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아이가 '비'자로 끝나는 단어를 말했고, 나는 '비'자로 시작하는 말을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지나치는 건물에 '비뇨기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나는 '비뇨기과'라고 말했고, 아이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에이, 사자성어 말하기 없기!" 운전하던 남편과 숨 넘어가게 웃었다.
탄천을 산책하다 청둥오리 한쌍이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아이가 물었다. "엄마, 쟤네들 왜 저러고 있게?" "먹이 잡느라 그런 거겠지?" "아니야, 누가 누가 물속에서 숨 더 오래 참나 내기하는 거야."
아이다움으로 무장하여 나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니 더 이상 이런 사랑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아는 것은 많아지고 말수는 줄어드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아이는 어려서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하던데, 아이 덕에 웃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이는 자꾸 자라는데, 나는 아이를 여전히 예전처럼 '애기'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인이 된 형에 비하면 아직 마냥 어리게만 보인다. '우리 애기' 왔어요? 하면 아이는 정색하며 대답한다. "저, 애기 아닌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넌 평생 엄마한테는 애기야"라고 말했었다.
유튜브 소아정신과 의사의 얘기를 듣고 혼자 얼굴이 벌게지고 나서야 다짐했다. 이제 절대로 '애기'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작은 아이에 비하면 큰 아이는 초등 5학년, 동생이 생기자마자 이미 다 커버린 아이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큰 아이 스스로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작은 생명체의 탄생과 육아의 현장에 함께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체감했을 것이다. 저절로 큰 아이는 '우리 애기'에서 벗어났고,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작은 아이를 '우리 애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인식과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주친 칼릴 지브란의 시 구절이 와닿았다.
"당신은 활이 되어
살아 있는 화살인 아이들을 미래로 날려 보내야 한다."
나는 활이 되어 화살을 날려 보낼 결심을 했다.
동네에서 길을 걸을 때 내 손을 꼭 잡고 다니던 아이가 어느 순간 슬쩍 손을 빼기 시작했다.
엄마 옆에서 자야 한다던 아이가 갑자기 자기 방으로 가버리더니 절대 돌아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우리 애기'와 헤어졌어야 하는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