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원망하죠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한 마음

by 낮별


시시각각 변덕스럽게 변하는 마음이 있다. 변덕일 수도 있지만, 이러기도 저러기도 한 것이 정답인 마음도 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기록하다 보니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 이러기도 저러기도 한 내 마음을 자주 목격한다. 가령 남편의 무던한 사랑 덕에 안정 애착을 회복했다는 고백뒤에, 남편의 무심함으로 외로웠던 날들의 고백이 이어졌던 며칠 전의 글을 보면서 나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나, 다중이인가?' 고맙다는 말과 원망하는 말이 단 몇 시간 만에 이어졌다. 변덕 같아 보이지만 변덕이 아니고, 모순 같아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전적으로 선한 사람도 전적으로 악한 사람도 드물듯,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 미워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미련을 거두지 못한다. 지극히 정상인 마음이다. 사랑과 미움이 차지하는 크기 또한 자꾸만 변화한다. 미움보다 사랑이 커지면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다. 선한 마음이 악한 마음보다 크면 대체로 괜찮은 사람이 듯 말이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빠를 이해해보고 싶어 애를 썼다.

이해하지 않고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떠난 아빠를 원망만 하고, 미워하고 살게 될 것 같았다. 아니, 아빠의 죽음을 다행이다 생각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부단히 애를 썼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애를 쓰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아빠로서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겠지,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스스로도 못마땅하고 괴로웠겠지. 아빠의 삶에 연민이 느껴지고, 그리고 놀랍게도 아빠가 그립기도 했다.


할아버지대부터 대를 이은 슬픈 가족사가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나는, 태어나자마자 빨갱이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아보지 않았던 나는, 연좌제의 고통 속에서 살아보지 않았던 나는, 하는 일마다 무력감을 느껴야 했을 삶을 살아보지 않았던 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던 아빠의 삶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어리기도 했고, 지켜보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아빠의 방종했던 삶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어찌 됐건 아빠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됐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돌보고 사랑하며 살았어야 하는데,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기도삽관을 한 상태에서 아무런 말을 못 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걸 기억한다. 그 눈빛을 보면서 시작된 것 같다. 아빠를 이해해 보려고 마음먹은 것이.


병상을 지키던 엄마에게 쪽지에 써서 남긴 마지막 말은 "집에 가고 싶어. 당신이 해 주는 밥 애들이랑 같이 먹고 싶어"였다. 마지막 순간, 아빠가 간절하게 원했던 건 집이었고, 엄마의 밥이었고, 우리 형제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빠에 대한 미움은 흐려지고 연민이 가득 차오른다. 그럴 거면서 뭐 그리 잘났다고 평생을 지독하게 굴었는지. 이 말 한마디에 엄마는 아빠를 향한 미움을 모두 거두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20년을 혼자 사시면서 지갑 깊숙이 아빠와 둘이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계셨다.


엄마의 용서와 함께 내게도 아빠에 대한 좋았던 기억들이 아픈 상처들 위에 덧대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사진이 기억하고 있는 아빠와 단둘이 했던 서울 여행을 시작으로 찾아보니 꽤 많은 순간이 있었다. 상처가 가려진다는 건 그건 정말이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상처를 헤집으며 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심리 공부를 하면서, 마음은 자꾸만 과거로 향한다. 과거의 상처받은 나를 만난다. 웅크리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본다. 상처를 헤집는 건 괴롭지만 대충 덮어둔 상처를 발견하여 잘 봉합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그 아이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용서했지만 미움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어제 용서했어도 오늘은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특권이다.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기로 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빠를 원망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아빠를 빌런으로 그리는 글도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그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나의 가장 큰 세계였던 부모님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6년 전 엄마의 장례식에서 아주 선명하게 뇌리에 박힌 장면이 있다. 막내이모는 엄마의 영정 앞에서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언니야, 거기 가서는 형부 만나지 마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모의 특권이다. 사랑하는 언니가 평생 그토록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걸 봤으니 말이다.


저 세상에 갔어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툭하면 욕먹고, 욕먹으면서 기억되는 것은 아빠가 살아생전 자처한 일이다. 욕 하다 보면 가끔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보다 아빠가 꿈속에 더 자주 등장한다. 드물게 보았던 온화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나를 겸연쩍게 만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26년이 지났다. 확실한 건 이제 미움보다는 그리움의 크기가 훨씬 더 커졌다. 그렇게 되기까지 부단히 애를 썼다. 아니, 어쩌면 내 노력과는 별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 대한 상반된 마음을 드러내는 글을 써놓고 스스로 납득하고 싶어 써 본 글이다. 멀리 저 세상까지 갈 것도 없다. 나 자신에게도 허구한 날 자기혐오와 자기애 사이에서 널뛰듯 오가는 마음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그렇다.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또 평소보다 조회수가 기이하게 높은 날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한 내 마음이다. 그러니 내가 써놓은 글에서 뭔가 앞뒤 맥락의 불일치가 있더라도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하고 원망하죠, 그대만을"

애즈원의 이런 노래가 있다.

정말이지 원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다중이라서가 아니다.

미움보다는 사랑이 커지도록 내 마음을 잘 컨트롤하고 싶다. 다행스러운 건, 결혼 생활이 햇수를 더해갈수록 미움보다는 사랑이 커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비록 연민과 동지애에 가까운 사랑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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