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관계의 기술

참을 수 없는 좀스러움

by 낮별

상담 대학원 면접 대기실에서 같은 조였던 분들과 스몰토크를 하며 긴장을 풀던 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먼저 웃으며 대화의 물꼬를 풀기 시작했는데 대뜸 나를 가리키며 "학부 전공이 뭐였어요?"하고 물었다. 나의 전공은 영문학이지만 문학도, 영어도 남들보다 빼어나게 잘 아는 혹은 잘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콤플렉스 비슷한 게 있어서 누굴 만나면 쉽게 전공 얘길 하지 않는 편이다. 나보다 열 살 이상은 훌쩍 많아 보이는 분이 나를 첫 타깃으로 하여 학부 전공을 물어봤을 때 속으로 '진짜 대답하기 싫은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영문학이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말함과 동시에 말 한 걸 후회했다. 그리고 다른 분들께 질문을 이어나갔다. "철학이요", "저도 영문학이요" 라며 순순히 전공 오픈을 하고 있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어떤 분에게 질문했을 때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다.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학부 전공 아무 의미 없어요."와, 나는 진심 그분의 대답에 감탄했다. 바로 저거였어! 난 왜 저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분 대답에 모두가 동의하면서 웃었고 더 이상 전공 얘기는 이어가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정색하지 않고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기술. 나도 갖고 싶은 사소한 관계의 기술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들 부부동반 번개 모임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날 시댁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번개를 주최한 친구는 얼마 전 시아버님 상을 치른 친구 부부였다. 조문을 와줘서 고맙다는 답례로 밥 한 끼를 대접하고자 모인 것이다. 당연하게 점심 식사는 그 친구가 결제했고, 2차 카페비용을 두고는 내적 갈등이 있었나 보다. 밥을 샀는데 커피까지 사야 하나? 이런 내적 갈등. 그런 갈등 끝에 다른 친구가 2차 비용을 결제했고, 모임이 끝난 후 단톡방에 카페 영수증이 올라왔다. 참석자들끼리 n분의 1을 하자고. 금액은 4만 원이 조금 넘은 것으로 소소했다. 역시 그날 번개 모임에 나처럼 참석 못한 모임 총무를 맡은 친구가 그냥 회비에서 쓰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은 그 번개에 다 참석했으니 참석하지 않은 나만 동의를 하면 되겠다며 나의 동의를 재촉했다. 기분이 묘하게 불쾌했지만 왜 내 기분이 불쾌한지 잘 모르는 상태로 "나도 찬성"이라고 톡을 남겼다.


그 순간 내 기분이 왜 묘하게 불쾌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인데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커피 한 잔 샀다고 쳐도 유쾌할 금액인데 왜 기분이 나쁜 건지. 톡방의 분위기가 나에게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나는 "나는 반대"라고 말할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을 만든 모임을 주최한 친구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식사에 참석을 못한 사람들 몫으로 카페 비용을 내고도 남았는데 굳이 상황을 이렇게 치사하게 만들어야 했나? 대뜸 모임 회비로 충당하자는 총무의 제안도 원칙이 없어 보였고. 이런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혼자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를 생각하다가 '나 너무 쪼잔한가?' 이런 자괴감에 괴롭기도 했다. 남편한테 이 얘길 했더니 "모임을 주최한 친구가 카페 비용까지 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치사하게 구니까 다른 사람들도 치사해지네. 에이, 그냥 잊어버려"라고 말했다. 그러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전화해서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거였다. 자기도 이 상황 너무 웃기고 이해가 안 간다고. 그 친구랑 얘기를 하고 나니 내가 기분이 불쾌했던 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가 들었다. 그 자리에서 참석했던 친구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니 차 한잔 못 얻어먹고 강요된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당연한 감정이다. 내 감정이 그럴만하다고 이해받으니까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 일로 얻은 교훈, 쏘려고 날 잡은 날엔 크게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라면 끝까지 쏘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상한 마음에는 작은 공감 하나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관계의 기술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어빈 얄롬의 회고록 <비커밍 마이셀프>를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한 사람의 성품은 그의 친구들의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고들 합니다.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그러면 나는 진실로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몹시 부끄러워졌다.

내가 이렇게 좀스러워서 내 친구들도 좀스러운 건가? 내 친구들이 좀스러워서 나도 좀스러워졌나? 유유상종은 진리임을 깨달았다. 나도 나중에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얄롬처럼 내 주위에 참 괜찮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떠올리고 싶다. 책 속에서 우연히 만난 문장덕에 나의 '참을 수 없는 좀스러움'이 보였다. 조금 남아있던 꼬깃꼬깃해진 마음이 펴졌다.


사소한 관계의 기술은 익히되 마음은 넓게 가질 것.

사소한 것은 사소하게,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길 것.

반백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족함이 많은 나에게 다시 한번 주지시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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