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나는 살아남았다

첫 브런치 북 <내 마음의 콩밭>을 마무리하며...

by 낮별

지난 5월, 오랫동안 폐점해 두었던 내 브런치를 다시 재개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글을 쓰지 않고도 대체로 잘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상담대학원에 등록하고 관련 책들을 읽는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최근 들어 나를 자꾸 돌아보고 있었다.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이나 글을 연재하겠다고 털썩 혼자 공언해 놓고 아무리 쥐어짜봐도 글감이 도저히 없을 때는 예전에 써뒀던 내 글을 표절하기도 했다. 어찌 됐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첫 브런치 북을 완성했다. 첫 글의 제목이 '생존을 기원하며'였으니, 나는 어쨌거나 살아남았다.


이 브런치 북에는 길게 혹은 깊게 머문 내 마음을 기록하고자 했다. 어떤 생각이 반복해서 내 마음에 찾아오거나 오래 머무를 때, 책을 읽다가 혹은 생활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주체할 수 없이 생겨났을 때, 내 속에 있던 건데 꺼내 놓지 않으니 미처 정리가 되지 않아 걸리적거릴 때마다 글을 썼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유 연상'을 떠올렸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기법으로 개발한 '자유연상'은 편안한 카우치에 누워 아무런 검열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 쓸 것이 생각나서 노트북을 펼쳐 한 문장을 쓰고 나면 거침없이 생각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자판을 정신없이 두드리다 보면 처음 쓰려고 했던 것과는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글쓰기가 심리 치료라고 보자면 '자유 연상'기법에 가까울 것이고, 작문 기법으로 보자면 '의식의 흐름 기법'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다 써놓고 나서 이리저리 문장을 빼고 옮기는 편집과정은 있었다. 모르는 이들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타인에게 공개되는 글이니까 최소한의 검열은 필요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브런치의 익명성 때문일 것이다. 깊게 깊게 파고 들어가 나의 바닥을 보여주더라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었다. 평소의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나의 불안, 나의 우울, 나의 통증, 나의 열등감, 나의 외로움을 고백하고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집에서 한껏 늘어져 있다가도 나는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기 전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나 내 꼴을 정비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목소리를 한 톤 올려 아이를 맞이한다. 그랬기에 나는 남들 보기에 늘 괜찮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분명 괜찮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글쓰기는 그런 마음을 꺼내놓고 하나씩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다.


아주 느린 속도지만 한 분 한 분 더해지는 귀한 구독과 자주 반짝이는 라이킷 표시는 나의 등을 두드려줬다. 계속해서 쓰라고. 내어놓기 부끄러운 마음도 내어놓고 아픈 상처도 꺼내놓았다. 그런 마음을 꺼내놓고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확실히 치유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좀 더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늘어져 있고 발딱 일어나 한 톤 올려 밝게 아이를 맞이해야겠다. 글을 쓰면서 강영숙 작가의 소설 <라이팅 클럽>에서 보았던 글귀가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한번 써 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곧 대학원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50이 넘어 시작하는 늦깎이 대학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설렘과 기쁨도 있겠지만 좌절과 고통도 있을 이야기가 될 것이다. 비전공자이면서 나이도 꽉 차 뒤늦게 공부하는 주제에 글 나부랭이를 쓸 여유가 생길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거진 '어제의 기억'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어제의 일상과 어제 머문 나의 마음은 비정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제의 기억'을 쓰면서 이렇게 기록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인생이 되겠구나, 일기를 이런 효용감으로 쓰는구나 생각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깡그리 잊힐 별일 없는 날들조차도 소중한 나의 인생이니까.


"그동안 어설픈 제 첫 브런치 북 <내 마음의 콩밭>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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