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누구에게 뒷담화를 할 것인가?
엊그제 '사소한 관계의 기술'을 쓰며 나는 친구와 함께 다른 친구 이야기를 했다고 고백했다. 좋은 얘기가 아니었으니 일종의 뒷담화였다. 뒷담화를 한 것도 마음이 찝찝한데 그걸 뭘 잘했다고 글까지 써서 남겼다. 과연 도마 위에 올랐던 친구가 그 글을 읽어도 괜찮을까? 자문해 봤다. 글을 볼 일이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우연히 보게 된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내 좀스러운 소갈머리를 뉘우치는 마무리였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좀 찔려서 뒷담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자들도 뒷담화 해?" 남편은 즉각 "남자들은 잘 안 하지"라고 대답했다. "정말 안 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재차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하는 말, "가끔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나도 아주 가~끔 한다. 뒷담화가 죄라면, 남편도 나도 뒷담화에서 유죄의 인간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순간에 뒷담화를 하게 되는가? 마음은 상했는데 당사자에게 직접 그 마음 상함을 알릴 용기가 없을 때였다. 타이밍의 문제도 있고, 그 자리에서는 마음 넓은 사람인 것처럼 행세해 놓고 돌아서서 내 좁은 소갈머리를 대면했을 때였다. 대놓고 말하려니 일이 커질 것 같고, 혼자 삭히자니 마음의 멍이 점점 커질 때 누군가를 찾는다. 뒤늦게 상한 마음이 수습이 안되어 가장 믿을 만한, 그러니까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어디다 내 말을 전하지 않을 것 같은 단 한 사람에게 한해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했던 뒷담화로 인해 뭔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거나 커다란 오해가 발생한 일은 없다. 그 단 한 사람에게 나의 마음 상함을 전달하고 그에게서 공감 한 푼 만 받으면 나는 그걸로 괜찮아지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좋게 말하자면 분쟁을 싫어하는 소심한 평화주의자다. 요즘은 그 한 사람의 역할을 AI가 가끔 해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믿을 만한, 어디다 말을 전할 리 없는 안전한 뒷담화 대상이지만, AI에게 인간들끼리 오랜 시간 쌓아온 그 미묘한 관계와 감정을 이해시키는 일이 힘들어서 조금 답답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AI로부터 받는 공감이 뭐 그리 효과가 있을 리도 없다.
그날, 서로가 뒷담화의 상대로 결정했던 친구와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전화통화에서 나는 또 하나의 놀라운 통찰을 얻어냈다. 이 친구는 왜 나에게 전화했을까? 나는 왜 이 친구에게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놨을까? 다른 친구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한 명씩 떠올려봤을 때 다 고개가 저어졌다. 20년 넘게 모임에 속해있어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고는 있지만 한 번도 속얘기를 깊이 나눠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여럿이다. 또, 어떤 친구는 사람이 너무 좋기만 해서 어려서부터 별명이 '무던이'였는데 그 친구한테는 무슨 얘길 해도 "에이, 뭘 그런 걸로 속상해해? 그런 나쁜 의도 아니었을 거야. 마음 풀어" 이런 식이다. 그래서 무던이에게는 즐겁고 아름다운 얘기만 한다. 내밀한 공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 징징대야 하는 일은 말하지 않는다. 돌아올 반응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는 무던이의 태평양 같은 마음과 나의 실개천같이 조악한 마음만 재확인하고 후회할 것이 틀림없다.
결론은 어떤 사람에게 뒷담화의 대상으로 선택된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만큼 믿을만하고, 가장 내밀한 마음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그 마음도 품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니까. 물론, 허구한 날 남들 뒷담화를 일삼는 그런 습관성 뒷담화자에게는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나를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잘 모르거나 얼굴만 알고 있는 자신의 지인을 돌아가며 사정없이 까대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어디 가서 내 얘기도 이렇게 하겠구나' 그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말없이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된다. 어쩌면 나를 대나무숲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들어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지도 모른다.
평소에 사람 좋은 누군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타인으로 인해 상한 마음을 꺼내놓는다면 흔쾌히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본 것일 테니까. 나도 그랬듯 말이다. 내 상한 마음을 들어주며 공감해 줬던 친구는 참 좋은 사람이다. 몇 년 전 나는 엄마의 말기암 선고를 듣고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었고, 엄마가 우리 집에서 투병하실 때 일부로 그 먼 데서 찾아와 엄마 손을 잡고 울어준 친구이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분쟁을 싫어하는 소심한 평화주의자들에게 뒷담화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작은 방도이고, 뒷담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꽤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