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타임캡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하해 Dec 25. 2023

'개같다' 단상

개같다 월

2021. 2. 1. 22:55


개같다 [개ː갇따]

(비속하게)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있다.

출처 네이버 사전


한 때 어색한 느낌의 글을 쓰고 싶었다. 읽다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든다던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왠지 삐딱함이 있는 것 같으면 나의 의도는 효과를 발하는 것이리라.

가끔 생각해 보면 내 글쓰기의 가장 큰 원동력은 사상이나 이미지의 전달보다는 비꼼을 통한 의미의 재구성 또는 재창조에 있는 것 같다.(어쩜 언어로 장난질하는 것 일 수도 있다).


 2006년 경 빛과 어둠이라는 블로그명으로 블로그를 개설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빛이 있기에 그늘도 있고 색깔이란 것도 있는 것, 물체 본연의 색은 없고 빛이 존재에 부딪쳐 부서졌을 때 가장 많이 튕겨져 나오는 파장이 빛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색깔이란 의미가 따로 없었다"라고 생각이 들어서일까? 

무언가 표현하고 싶었던 기분이 들었던 것 같은데... 무엇이었는지....


그 블로그의 존재를 잊은 채 2020년 말까지 그냥 그럭저럭 보냈다.

어느 날 뉴스에서 한 아이의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뉴스는 정말.. 기독교인 입양 가족이 그 작은 아기에게 한 짓은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가정 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들은 신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사람들...(믿는 자 맞을까?)


"이런 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부터 

“난 무엇을 해야 하지?”,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하다

 잊고 있던 블로그를 찾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쓴 글은 '낙인'이란 시였다.

피어나지 못한 아이와 우리가 죄인임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몸에 문신을 새기는 속죄의 심정을 적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글을 또 꾸준히 올리지는 못했다. 

난 게으른 사람이라 참 어떨 땐 나 자신이  스스로의 단죄의 대상이 되어 또다시 움추러들어....


사람들은 흔희 자기 인생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개같은 내 인생”이라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요새는 푸념보다는 개 보다 못 한 자기 삶을 보면서 절규를 하는 것 같다.


사회가 참 뭐 같아서.....


사람들이 인생 푸념으로 개 같다고 한다면 그럼 동물들은 무어라고 할까 생각하다 필시 

”사람 같은 내 인생”이라고 하지 않을까?.라고 언듯 떠올랐다. 시 '개절규'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반려동물의 방임, 학대, 유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동물들에 대한 처우와 동물의 생명에 대한 생각도 과거보다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잊히고 짓밟히고 버림받은 사람들 보다 반려동물들에 대한 염려가 더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개나 고양이의 반려동물의 먹이는 고급화 영양화로 일반 건강식품의 가격을 상위하고 있고 동물 보험이 나와 동물병원들도 종합병원화되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난 나와 아이가 먹는 생선 통조림 하나도 싼 것에 눈이 간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골뱅이 통조림도 싼 것을 파는 곳이 어디인가를 검색해서 그 통조림을 사게 된다. 편의점 땡처리에 눈이 가고 갖고 싶은 제품은 먼저 중고품 사이트에 들어가서 살펴보고 있다. 아이에게 입힐 옷은 먼저 백화점으로 달려가서 사주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가격과 디자인을 확인하고 다시 매장에 가서 확인하고 그러고는 인터넷에서 가장 싸게 팔고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옷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 아이의 나도 반려 동물 키우고 싶다는 소원은 참 소원하기 짝이 없다.


참 반려 동물의 권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 주인들의 권위를 나누어 갖는 것이겠지.. 하긴 외국 부호 중 자기 반려견이나 반려 동물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우가 없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개같다'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동물권익위원회(이런 단체가 있는지? 검색해 봤는데 없었다. 나중에 만들어질 것이다. 예산 편성하고 법률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힘을 쏟는다면)에서도 “개같다”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고 관련 법를 만들 것 같다.

아니면 요새 젊은 사람들은 개간지,개귀여움,개드립 등 개를 넣어 멋스럽고 좋은 표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개같은 검사","개같은 판사","개같은 국회위원",...... 이라고 듣는 다면 더욱 멋있게 대상을 표현해 주는 것이기에 당사자들은 더욱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개같다'라는 표현을 바로 쓰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개같은 내 인생”이라고 하지 말고 경멸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그 대상 같은 내 인생이라고 하자."개같다"에서 "개"를 다른 대상으로 바꾸자. 개는 이제 더 이상 경멸의 대상이 아니다.

경멸하는 대상이 사장이라면 “이런 사장 같은 내 인생”. 부장이라면 “부장 같은 내 인생”,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원 같은 내 인생”, 검사 거나 판사 거나 대통령 이라던가……….

단 한 가지, 쓰게 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도 그 대상을 경멸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 이제 그 대상 같은 내 인생이라고 말하면 된다.


아차,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을 다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결코"이런 사람 같은 내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말을 있는 존재는.........

짐승 밖에 없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운의 시작은 뭐든 시작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