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와 기업이 서로를 이해하는 법

파트너십인가, 페이퍼십인가

by 밀도

"협력(Cooperation)일까요, 협박(Coercion)일까요?"


NGO 실무자 시절,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와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누던 이야기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우리의 열정을 예산과 결과 보고라는 숫자로만 재단하는 기업이 야속했고 때로는 '돈을 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고압적인 태도에 상처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 재단으로 자리를 옮겨 반대편 책상에 앉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가 협력이라 믿었던 소통이 왜 누군가에게는 강요나 무의미한 소음으로 들렸는지 말이다. 기업은 단순히 좋은 일에 예산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사업에 자신들만의 고유한 지문(Fingerprint)을 남기고 싶어 한다.


명분의 언어를 전략적 지문으로 번역하기

NGO의 언어는 당위성에 뿌리를 둔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집중한다. 반면 기업의 언어는 효율성과 차별성이다. 기업은 소비자와 이해관계자들에게 "역시 이 사업은 우리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사회공헌이 기업을 식별하는 고유한 지문이 되어 다른 기업과 확연히 도드라지길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NGO는 "얼마나 선한가"를 넘어, 이 사업이 기업의 ESG 전략이나 업(業)의 본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략적 언어로 번역해 전달해야 한다. 그것은 진심을 깎아 먹는 계산이 아니라 파트너를 설득하기 위한 전문성이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영수증보다 브랜드 임팩트다

많은 NGO 실무자가 기업의 까다로운 증빙 요구를 현장을 모르는 갑질로 느끼곤 한다. 하지만 중간지원조직이 예산 편성의 꼼꼼함이나 최저가 구매 같은 공적 관리에 방점을 둔다면 기업의 시선은 조금 더 사회적 가치와 홍보 효과를 향해 있다. 기업 담당자에게 결과 보고서는 내부 이해관계자로부터 예산의 정당성을 보호받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단순히 돈을 아껴 쓴 영수증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도드라졌는지, 어떤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하다. 보고서를 행정 숙제가 아닌 브랜드 신뢰의 단위로 인식할 때 소통의 격차는 줄어든다.


수직적 갑을이 아닌 전문성의 결합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십은 서로를 돈 주는 곳과 일 해주는 곳으로 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기업은 자원과 시스템의 전문가이고, NGO는 현장과 문제 해결의 전문가다. 나도 안다. NGO가 제안하는 모든 사업은 기본적으로 훌륭하다는 것을. 하지만 기업은 본인들의 가치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 줄 파트너를 원한다. 기업은 현장의 맥락을 존중하고, NGO는 기업과 사업의 전략적 핏(Fit)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 각자의 전문 영역을 인정하며 자원을 최적으로 투입할 방법을 논의하는 수평적 관계가 필수적이다. 협력과 협박은 한 끗 차이다. 내 방식과 언어만 고집하면 협박이 되고 상대의 환경과 욕구를 배려하면 비로소 협력이 된다.


나는 오늘도 NGO 파트너와 마운드에 마주 선다. 그들의 뜨거운 진심이 기업이라는 엔진을 타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명한 지문을 남길 수 있도록, 부지런히 두 세계의 언어를 조율한다. 그것이 두 곳의 공기를 모두 마셔본 내가 해야 할 진짜 업무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두바이쫀득쿠키와 사회공헌, 오픈런을 부르는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