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이라는 것
성취감 뒤에 찾아온 막막함
첫 EP를 발매했지만, 성취감도 잠시, 나는 오히려 더 깊은 방황에 빠져들었다.
모든 감정을 남김없이 쏟아낸 탓일까. 마치 내용물을 모두 짜내 더는 색이 나오지 않는 빈 물감처럼, 세상을 느끼던 감각은 무뎌졌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감각의 고갈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무대에 서기엔 내 보컬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함께 연주할 멤버를 모으는 일부터 오픈마이크 공연장을 알아보는 것까지, 현실의 벽은 여전히 까마득하게 높았다.
까마득한 현실의 벽 앞에서,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질문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도대체 언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준비만 해야 할까?”
그래도 어떻게든 내 손으로 만든 음악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 유행하던 리릭 비디오(Lyric Video)를 직접 제작해 음원 유통사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작은 노력도 해보았다.
하지만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과 그 음악이 대중에게 가닿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결국 마케팅에 대한 지식도, 능력도 부족했던 나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선 라이브 실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가장 친한 보컬 전공 동기의 소개로 뮤지컬 발성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고맙게도 대학 동기들 중에 내 음악을 좋아해 주며 함께 연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어 밴드 멤버를 모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합주실에서 땀 흘리며 라이브 클럽 공연을 목표로, 나는 다시 한번 희미한 희망을 다져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막막함 속에서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은 결국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영감을 찾아 떠난 제주, 그곳에서 얻은 것들
그렇게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믿으며, 나는 두 번째 EP 제작에 착수했다. 하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니, '어떻게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올까' 하는 막연한 고민이 앞을 가로막았다.
몇 주간 의미 없는 습작만 반복적으로 만들던 내게, 문득 첫 번째 EP의 표지가 떠올랐다. 강 너머에서 바라보던 도시의 야경.
‘공간에 대한 3부작은 어떨까?’
번뜩이는 아이디어였다. 나는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첫 번째 EP의 공간이 ‘도시’였다면, 두 번째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좋을까. 나는 도시보다 더 크고 넓은 공간을 다루고 싶었다. 인간의 문명보다 더 거대한 ‘자연’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가장 광활한 공간은 바로 몽상, 상상과 같은 우리 ‘정신’의 세계가 아닐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히 넓어질 수 있는 곳. 나는 이 두 가지, 자연의 공간과 정신의 공간을 새 앨범에 녹여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명확한 콘셉트와 달리, 내 감각은 앞서 말했듯 이미 색이 나오지 않는 빈 물감처럼 무뎌진 상태였기에, 이 거대한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영감을 불어넣어 줄 어떤 매개체가 절실했다.
이후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매개체는 ‘여행’이었다.
나는 이 생각이 들자마자 제주도 항공권을 찾았다. 앨범 작업비로 모으던 적금을 두 달 이상 멈추기로 결심하고, 더는 쓰지 않는 기타 이펙터까지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내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친구와 함께 2박 3일의 짧은 제주 여행길에 올랐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제주는 잊고 있던 내 안의 감각들을 다시 깨워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붉은오름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99번 지방도로 위를 달릴 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경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미국 서부의 어느 도로 위를 자유롭게 달리는 듯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밤의 중문 해변가를 거닐며 듣던 LANY와
Bruno Major의 음악은, 고요한 파도 소리와 뒤섞여 낮의 해방감과는 또 다른, 깊고 차분한 사색의 시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짧은 제주 여행을 마치고 신대방역의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단순히 음악적 영감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새로운 관점을 얻었음을 깨달았다.
첫 번째, 과거를 반추하는 것
두 번째, 나 자신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깨달음이 노래가 되기까지
나는 첫 번째 깨달음, '과거에 대한 반추'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을까.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고민의 끝에서 나는 문제의 화살이 외부가 아닌, 내 안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만든 마음속 세상. 그곳이 너무나 확고하고,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문제는 아니었을까? 나는 마음속 세상이 가장 넓은 공간이라 믿었기에, 그 공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채워 넣고 있었다.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욕망,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
‘모든 것을 쏟지 않으면 음악가가 아니다’라는 아집 같은 것들로.
이렇게 내 세상이 이미 빼곡히 차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세상을 이해하거나 그들의 공간으로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제주에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복잡한 깨달음을 음악으로 표현할 단어를 찾아 헤맸다. 배움이 짧은 내게 익숙한 철학자라곤 니체와 플라톤뿐이었고, 닥치는 대로 그들의 사상과 명언을 책과 인터넷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유독 한 단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이데아(Idea)’였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재’라고 한다.
솔직히 말해, 그 사전적 정의는 너무나 거대하고 어려웠다.
깊이 이해하려 애쓸수록 오히려 그 거대한 개념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길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나는 이 단어가 근대에 들어서 ‘관념(觀念)’이라는 말로 쓰인다는 지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나에게 '이데아'란, 각자가 마음속에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자신만의 완벽한 세계에 대한 관념’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앞서 내가 깨달았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무한히 넓어질 수 있는 '정신 속의 공간'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멀어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데아(나의 관념 세계)와 너의 이데아(너의 관념 세계)가 너무나 다르기에,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딪히는 것.
나는 이렇게 정의 내린 '이데아'를 음악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너의 이데아’라는 곡을 만들었다. 서로의 생각 속 공간이 가진 아득한 거리와 닿을 수 없는 간극을, 몽환적이면서도 광활한 공간감 속에 녹여내고자 했다.
‘너의 이데아’를 완성한 뒤,
나는 제주에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 ‘스스로에 대한 연민’또한 음악으로 풀어내기로 했다.
지난 2년간, 나는 여행은커녕 삶의 소소한 즐거움마저 스스로에게 금지해 왔다. 제주에 가서야 문득, 그렇게 살아온 내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나는 2평짜리 작은 작업실, 컴퓨터와 스피커, 기타와 마스터키보드에 둘러싸여 홀로 음악에 몰두하는 나 자신을 3인칭 시점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그 안에서 내가 겪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와 스스로에게 가학적으로 굴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며, ‘공간’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이 곡을 가장 사랑한다.
내 창작의 기둥과도 같은 단어이면서, 난생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따뜻한 연민을 보내준 곡이기 때문이다.
이후 나머지 두 곡은 이전처럼 영상을 보며 작업했다. 그중 ‘Confused’는 제목 그대로, 두 번째 EP를 만들며 느꼈던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남김없이 표현한 곡이다.
명색이 기타리스트인지라 이 트랙의 기타 솔로를 직접 연주하려 했지만, 내가 원했던 ‘혼란스러움 속의 정갈함’을 담은 재지(Jazzy)한 느낌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대학 동기인 대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처음 보내준 솔로 라인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조명이 켜지는 듯했다.
‘아, 이건 무조건 대현이가 쳐야 한다.’
그 후로도 대현이는 스스로 연주를 수정해 가며 몇 가지 버전을 더 보내주었다.
보내준 라인들은 하나같이 트랙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곡의 완성도를 한껏 높여주었다.
덕분에 나는 이 곡을 멋지게 완성할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절망, 멈춰버린 세상
이런 작업들 끝에 두 번째 EP ‘작인 (作因)’이 세상에 나왔고, 나는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했다.
"작인(作因)"은 불교 용어로,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현상이나 결과가 나타나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한 요인들을 말합니다.
리릭 비디오를 만들고, 보컬 연습을 하고, 간간이 합주를 하며 라이브 클럽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습을 이어가며 세 번째 EP 제작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 세계를 덮쳤다.
이 낯선 전염병은 나의 모든 계획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연습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멈춰 섰다.
나는 다시 한번, 정말 크고 막막한 방황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