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위로, 그리고 가장 아픈 깨달음
세 번째 EP, 그 이후
세 번째 EP가 세상에 나왔고, 나는 어떻게든 이 음악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라이브 클립 영상 제작에 도전했다. 마침 세 장의 EP 표지를 모두 작업해 준 일러스트레이터 분이 영상 제작을 새로 시작한다며, 저렴한 비용으로 함께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보자고 먼저 제안해 왔다.
나는 흔쾌히 밴드 멤버들을 모아 촬영에 임했고, 완성된 영상을 개인 SNS와 유튜브에 올리며 작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영상에 대한 미미한 반응처럼, 나의 현실 또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한편, 다른 삶이 궁금해 나갔던 모임에서 시작된 연애는 계속되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녀는 나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었다. 우리는 함께 음악을 들었고, 언젠가 내가 음악가로서 성공할 날을 그리며 희망을 나누기도 했다. 팍팍한 내 일상에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따스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의 연인은 취업에 성공해 자신의 길을 단단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진심으로 기쁜 일이었지만, 그 기쁨의 이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초조함이 고개를 들었다.
음악가로서의 내 삶에 대한 의구심이 희뿌연 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내가 음악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설상가상으로, 연인마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오빠도 돈을 벌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어쩌면 나를 위한 당연한 그 권유에 나의 의구심은 부끄러운 자괴감으로 번져나갔다. 그렇게 나의 의구심과 자괴감은 또 한 겹, 단단하게 쌓여갔다.
영화 소울과 눈물의 이유, 그리고 어긋난 공감
그 시기,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영화가 있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Soul)’.
인생 영화인 ‘토이스토리’ 시리즈를 몇 번이고 돌려보았던 나는 픽사의 신작을 큰 기대를 안고 관람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스토리를 따라 어느새 주인공 조 가드너가 되어 스크린 속으로 깊이 몰입해 들어갔다.
영화는 잔잔히 흘러가다, 내 마음 가장 약한 곳을 찌르는 한 장면에 이르렀다. 주인공 조 가드너가 지구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자신의 음악에 대한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조] 엄마 말이 전부 맞아요. 그런데 엄마에게 솔직하지 못하겠어요. 내가 뭘 하든 탐탁지 않아 하시잖아요.
[엄마] 네가 연주할 때 행복해하는 거 잘 알고 있단다.
[조] 그럼 왜 내가 연주하지 않을 때만 행복해하세요? 최고의 기회를 잡았는데 화만 내시잖아요.
[엄마] 넌 네 아빠가 음악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너도 그런 고생하는 게 싫어.
[조] 아빠는 꿈을 좇았는데 전 왜 안 되죠?
[엄마] 네 아빠한텐 내가 있었어. 이 가게가 있어서 먹고살았지. 넌 내가 죽고 나면 어떡할 건데?
[조] 음악이 제 삶이에요.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음악만 생각한다고요.
[엄마] 꿈이 밥을 먹여주진 않아, 조.
[조] 그렇다면 전 그 밥 먹고 싶지 않아요. 음악은 저한테 직업이 아니라 제 삶의 이유예요.
아버지도 그랬고요. 전 두려워요... 만약 오늘 죽는다면 무의미한 인생일까 봐요.
조가 이 장면의 마지막 대사를 내뱉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조의 엄마가 아들의 진심을 듣고는, 조의 아버지가 연주할 때 입던 낡은 양복을 꺼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스크린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조의 엄마가 내뱉는 현실적인 걱정은, 마치 세상이 내게 던지는 냉정한 말들처럼 들렸다. 동시에 내 마음속 한편에서 '너는 아직 멀었다'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의 꿈을 끝내 인정하며 낡은 양복을 꺼내주는 그 모습에서, 나는 '언젠가는 나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다. 그 거대한 절망과 작은 희망이 한데 뒤섞여 내 안에서 폭발해 버린 것이다.
나는 영화의 후반부 내용에도 크게 공감했지만, 솔직히 말해 당시의 나에게 영화가 주는 진짜 메시지는 와닿지 않았다. '삶의 목적은 위대한 성취가 아닌, 살아가는 모든 순간 그 자체에 있다'는 그 아름다운 결론을, 그때의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뒤에도, 나는 상영관 출구 근처에 주저앉아 한 시간 넘게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미친 듯이 울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내내 소리 없이 울었다. 차마 그런 얼굴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나는 익숙하게 작업실로 향했다. 텅 빈 작업실에 한참을 앉아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문득 깨달았다. 내 안에 이렇게나 많은 회의감과 슬픔이 쌓여있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그저 단단했던 둑을 무너뜨린 방아쇠였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묻는다면, 그저 모든 것이 서러웠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음악이, 그리고 끝내 나를 도와주지 않는 세상이 한없이 서러웠다. 어쩌면 지난 몇 년의 시간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벌인 처절한 발버둥이었음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시 스물아홉이었던 내게는, 조 가드너의 말처럼 삶의 모든 순간이 음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작업실을 오가는 길에는 내가 만든 트랙을 들으며 수정할 부분을 메모했고, 틈만 나면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새 음악을 찾아들었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머릿속은 온통 새로운 트랙에 대한 구상과 기존 작업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그 모든 시간을, 그 모든 노력을, 나는 차마 내 손으로 놓아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솔직해지자면, 열일곱에 기타를 처음 잡은 이후로 음악 외에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멋진 사람', '타인의 눈에 멋지게 보이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은 나에게 오직 음악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슬픔과 우울감, 그리고 회한을 억지로 속으로 삭이며, 나는 다시 음악을 잘 해내고자 스스로를 다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다잡은 마음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짙게 드리운 삶에 대한 의문은, 어쩌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 모를 충격과 함께 터져버렸다.
부정당한 나의 모든 것
그렇게 애써 다잡은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인의 이별 통보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내 삶의 즐거움이자 위안이었던 그녀가 이별의 순간에 쏟아낸 말들은, 내게 깊은 상처와 함께 음악마저 그만두게 만드는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다.
그녀는 나와 만나며 자신이 받지 못했던 것들, 서운했던 점들을 하나씩 짚어냈다.
‘나는 생일에 오빠에게 이런 선물을 받고 싶었어.’
‘나는 그때 오빠가 이렇게 해주길 바랐어.’
‘나는 오빠의 그런 모습이 솔직히 힘들었어.’
변변한 선물을 해주지 못했던 것, 데이트 비용을 제대로 내지 못했던 나의 궁색한 모습들… 내가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던, 어쩌면 눈물겹도록 초라한 나의 현실을 그녀는 가감 없이 전부 꺼내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다음 말들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몇 가지 질문만이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들로 내가 헤어져야 하는 건가?’
‘나는 지금까지 대체 뭘 해온 거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음악을 해온 거지?’
‘연인에게 이런 것조차 못 해주는 사람이구나, 나는….’
나의 지난 모든 시간, 음악인으로서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저 흔한 이별일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무너지느냐고.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내 삶과 재능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영화 ‘소울’을 통해 외면했던 현실의 절반이 이미 발가벗겨진 상태였다. 그녀의 말들은, 위태롭게 서 있던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 마지막 손길과도 같았다.
그 후 며칠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지냈다.
어떤 음식도 입에 댈 수 없었고, 밥맛을 잃은 지는 오래였다. 한때 나의 유일한 성역이자 도피처였던 작업실에 가는 것마저 고통이었다. 애써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것뿐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이 맞는 길인지조차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나는 결국 가까운 친구들에게 기댔다.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민폐가 되는지도 모르는 채,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무게를 고스란히 눈물로 쏟아내며 그들을 괴롭혔다.
나는 정말 힘들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쓸모없게 느껴졌다. 열일곱 살 때부터 시작된 나의 음악 인생 전체가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듯했다.
이별통보 직전까지, 나의 고독은 '꿈을 위한 희생'이었다. 월 50~70만 원으로 버티는 삶도, 2평짜리 작업실에서 발버둥 치는 순간들도, 언젠가 멋진 음악으로 전부 보상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투자'라고 굳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 끔찍하게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
복학생이 되어 미디와 보컬을 배우던 시간
4, 5시간씩 자며 과제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날들
한 달 50~70만 원으로 버텨온 지난 몇 년의 삶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며 2평짜리 작업실에서 발버둥 쳤던 순간들
영감을 얻겠다며 기타 이펙터를 팔아 떠났던 제주도
그 모든 필사적인 노력들과 나의 삶이, 그녀의 눈에는, 그리고 이제는 나의 눈에조차 한없이 처량하고 구질구질하며, 바보 같은 시간 낭비로만 보였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다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