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악보
절망의 시간, 그 바닥의 풍경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의 하루는 눈물과 우울함으로 채워졌다. 친구들을 만나도 넋두리만 늘어놓기 일쑤였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말과 생각들 속에 파묻혀 시간을 죽여나갔다. ‘난 진짜 뭘 해야 하지?’, ‘난 뭘 해도 안 될 거야’, ‘나는 왜 살아온 거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작업실에 가는 날은 더욱 힘들었다. 한때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 공간에서, 나는 음악은커녕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다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다. 유언 같은 메시지를 남기는 동영상을 혼자 찍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작업실의 그 어떤 장비에 대한 기억도 없는 걸 보니, 나의 첫 번째 악보였던 음악과의 이별은 그때 이미 결정되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들 속에서도, 나는 본능적으로 살고 싶었던 걸까. 이상하게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결국 부정적인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힌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었다.
내 위태로운 모습을 가장 크게 느꼈던 사람은, 아마 가장 친한 친구인 재영이였을 것이다. 내가 부르기도 전에 먼저 나를 불러내 주었고, 내가 부르면 언제든 말없이 나와주었다. 공교롭게도, 그때는 재영이 또한 삶의 큰 굴곡을 만나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한강공원 벤치나 신논현역 외진 골목 편의점 앞에 앉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서로의 존재를 잊을 만큼, 그야말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셨다. 어떤 날은 비를 흠뻑 맞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각자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토해내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때의 재영이에게 지금도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 시절, 부르면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던 그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글조차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 선택, 그리고 작은 후련함
그렇게 무너진 채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정신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묻는다면, 그저 살고 싶다는 본능이었던 것 같다. 다시 정상적으로, 그리고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1년 넘게 이어진 정신과 치료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꾸준한 약물치료와 상담을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정신과 치료란, 한없이 가라앉는 '마이너스(-)' 상태의 나를, 더는 무너지지 않는 '제로 베이스(0)'로 돌려놓아 주는 역할 까지라는 것을. 그 제로 베이스에서 '플러스(+)'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했다.
새로운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 먼저 돈을 벌자."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건 앞서 말한 ‘생산적인 활동’과도 부합하는 결론이었다. 마침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프랜차이즈 카페의 점장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오랜 경력을 믿고, 망설임 없이 점주님께 연락드렸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이 카페 점장으로 시작되었다.
카페 점장으로서의 삶은 놀랍게도 즐거웠다.
매일같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 했던 음악과는 달랐다. 카페 일은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와 정직한 보상이 따라왔다.
나는 그 명확한 과정 속에서, 아주 오랜만에 '보람'과 '재미'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200만 원의 무게, 그리고 첫 번째 기쁨
한 달 후, 처음으로 내 통장에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200만 원가량의 돈이 찍혔다. 지난 몇 년간 손에 쥐었던 돈과는 그 무게부터가 달랐다. 나는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늘 나를 응원해 주던 여동생의 얼굴이었다. 나는 곧장 아이패드를 사서 동생에게 선물했다. 이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동생을 보며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 있다는 것, 돈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돈을 쓰기 시작했다. 열심히 번 돈으로 헬스장에 등록해 PT를 받았고, 난생처음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도 만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으로 떠나 보드를 타보기도 했고, 비싼 음식이나 술을 친구에게 사주기도 했다.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금지했던 평범한 일상들. 그 하나하나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나는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카페 점장으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음악에 대한 미련은 신기할 정도로 사라져 갔다. 오히려 '그만두길 잘했다'는 후련한 마음마저 들었다.
음악을 관둔 직후, ‘나는 더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야’라며 스스로를 비난했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평범한 노동과 그에 따르는 보상은 내게 진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자유로워야 할 음악이 오히려 나를 억압하는 수단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억압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규칙적인 노동이,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을.
에필로그: 쉼표를 찍으며
열일곱,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던 서투른 소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맹목적인 열정과 무모했던 노력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리고 스물아홉, 모든 것을 쏟아부어 세 개의 EP를 세상에 내놓았던 청년의 나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수고했다고. 다만, 아주 조금만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그립지만, 다시는 똑같이 반복하고 싶지는 않은 나의 20대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악보를 마무리하려 한다.
작가의 말
이렇게, 저의 첫 번째 악보 ‘음악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음악가로써의 마침표를 찍었을때, 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더는 아무것도 그려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쉼표 뒤에 조심스럽게 새로운 오선지를 펼쳐보니, 그곳에는 또 다른 음표들을 그려나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삶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멋진 삶'을 향한 저의 연주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악보에서 미처 찾지 못했던 해답을, 저는 이제 두 번째 악보 위에서 찾아가려 합니다.
이것으로 저의 1부를 마무리합니다.
함께 이 여정을 걸어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곧이어 펼쳐질 저의 또 다른 깨달음과 길에 대한 이야기, 2부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