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야 보이는 것들
내가 선 곳이 가장 낮은 바닥임을 깨닫기까지는 처절한 좌절과 자기반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부터의 시작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음악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2 겨울, 대입이라는 숙제가 코앞에 닥쳐왔다. 나는 여전히 도피처이자 마취제였던 음악과 일렉기타로 그럭저럭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실용음악과 진학을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든든한 지지를 보내주셨다. 하지만 그 따뜻한 응원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일렉기타를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여겼고, 다가올 냉혹한 현실을 감지하지 못한 채 안일함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냉혹한 현실의 민낯: 첫 번째 무대
이런 안일함이 계속되던 중, 마침내 고3 수시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부모님께서 선물해 주신 내 인생 첫 일렉기타, 펜더사의 하늘색 스트라토캐스터를 들고 나는 첫 대학 입시 실기고사를 치르기 위해 방배동 백석예대로 향했다.
숨 막힐 듯 커다란 대기실. 앰프도 없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입시곡들의 날카로운 파편들.
그 경쟁적인 소음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연주 실력의 민낯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실기고사장에 들어섰을 때, 이미 내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 손가락은 뻣뻣하게 굳었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어떻게 연주를 마쳤는지, 아니, 연주를 제대로 마치기는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차가운 감각만이 온몸에 새겨졌다
그것은 도망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