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바꿀 생각이 없나요?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로지의 죽음 이후 오드리는 심한 후유증을 겪었다.

처음에는 며칠 그러다가 말 줄 알았다. 부모 형제가 죽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이용인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애도 기간이 지난 뒤에도 오드리는 안정을 찾기 힘들었다. 이런 트라우마를 겪으며 활보를 계속해야 하는지, 진심으로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담당자도 오드리의 갈등을 눈치챘는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번 밀려나면 다시 일을 잡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오드리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쉬어버렸다.


월터는 그 와중에 잠깐 만난 이용인이다.

로지가 없는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에 들 무렵 담당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드리님, 급한 이용인이 있어 그러는데 일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 분은 아주 신사라서 문제 될 것도 없어요.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두 번, 가사만 좀 해주면 돼요."

월터는 다리가 불편한 사십 대 독거남인데, 그를 전담하는 남자 활보가 있기는 했다. 월터로서는 이동 서비스가 최우선이라 차가 있는 남자 활보를 쓰는데, 따로 이십여 시간을 떼서 집안일을 해줄 여자 활보도 썼다. 그 여자 활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어 오드리한테 차례가 온 것이었다. 수입만 봐서는 할 일이 아니지만 슬슬 일을 재개하려는 오드리 입장에서는 할 만했다.


월터네 집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뒤쪽으로 밀려나버린 오래된 빌라였다. 담당자의 차가 빌라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월터도 마침 공동 현관에 서 있었다. 월터는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상체가 우람했다. 월터는 오드리 쪽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오드리의 시선은 월터의 왼쪽 다리를 스치듯 지나 냉큼 다른 쪽으로 향했다. 질끈 묶은 바짓가랑이가 월터의 허벅지 부분에서 맥없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월터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약속에 늦을까 봐 뛰어 왔다며 껄껄 웃었다. 뜻밖의 농담에 오드리와 담당자도 따라 웃었다. 월터는 핫도그 크기 정도로 도톰하게 깁스한 왼쪽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넘어져서 접질렸다고 했다. 목발을 쓰다 보면 넘어져 다치는 일이 흔하다며, 월터는 남의 일처럼 또 웃었다. 그 웃음이 오드리의 마음을 열었다.


월터네 집은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오드리는 앞장선 월터 뒤에서 몇 계단 여유를 두고 따라갔다. 오드리는 계단을 오를 때 가능하면 맨뒤로 빠졌다. 쫓기는 느낌이 싫고 자신의 뒤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면에서 월터도 지금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집주인이 앞서는 거라 어쩔 수 없었다.

"꼭대기 층이라 힘드시겠어요...."

오드리의 말에 월터는 이제 적응돼서 괜찮아요,라고 했다. 정말 월터는 두 발 가진 사람보다 더 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탁, 탁, 탁, 일정하게 울리는 계단과 목발의 마찰음이 경쾌하게 들릴 정도였다. 전에 하던 여자 활보쌤이 출산한 딸네 집에 가는 바람에 지난 몇 주간 힘들었다, 손가락도 그래서 다쳤다,는 둥 계속 말을 하면서 올라가는데도 월터의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드리는 2층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다. 먼저 올라간 월터는 마지막 계단에서 헉헉대는 두 여자를 402호 자기 집 문 앞에 서서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청소를 못해서 집이 엉망이에요."

월터는 문을 열기 전에 수줍어하며 말했지만 문제는 청소가 아니었다. 오드리는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쎄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집은 월터가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이었다. 방 세 개, 거실, 주방, 화장실, 베란다 등에 빼곡히 들어찬 살림살이들이 전에 세 식구가 살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모님은 십오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안방 벽에 부모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살림살이가 부모가 쓰던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부모가 살아 돌아와 생활해도 될 정도로 안방의 장롱이며 텔레비전 세트, 어머니의 화장대 등이 예전 그대로였다. 정작 월터가 쓰는 방은 싱글 침대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나머지 방은 창고로 쓰이는지 문이 열릴 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의 취향임이 분명한 거실의 자개무늬 장식장에도 별별 잡동사니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거실 탁자와 소파 역시 부모가 쓰던 그대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절대로 월터가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한 이유는 소파며 탁자 위에도 휴지나 신문, 옷들을 가득 담은 박스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월터는 제일 급한 게 빨래라고 했다. 과연 세탁기 안이 꽉 차 있었다. 담당자를 보낸 뒤 오드리는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시작했다. 세탁기는 주방 옆 보조 베란다 끝에 놓여있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다. 폭이 딱 세탁기 크기만큼인 좁은 통로에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등을 벽에 바짝 붙여 게처럼 이동해야 했다. 홀몸도 겨우 통과하는 공간에서 빨래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것도 극한 도전이었다. 거기를 점령하고 있는 것들도 역시나 어머니가 쓰던 묵은 살림살이들이었다. 플라스틱 바구니, 빨래대야, 장 단지들, 도자기 화분 같은 월터는 절대 쓰지 않을 물건들. 정리벽이 있는 오드리는 당장이라도 그것들을 처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오드리는 주방을 둘러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 싱크대 상부장 안에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꼭대기까지 쟁여져 있었다. 색깔이 변한 밀폐용기는 그나마 나았다. 즉석 죽이나 햇반, 배달용 용기들이 끝도 없이 쌓여있는 걸 보고는 숨이 막혔다. 하부장에는 역시 어머니 때부터 썼을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이며 찌그러진 냄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비닐봉지도 투명한 것과 검은 것으로 나눠 실에 꿰어 보관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쓰레기집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은 이유는 그나마 활보가 와서 청소를 하고 무엇이든 차곡차곡 쌓아놓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월터는 집안일은 오드리 방식으로 알아서 하되 몇 가지 사항만 확실히 지켜달라고 했다. 목발이 미끄러질 염려가 있으므로 화장실 청소 후 반드시 바닥의 물기를 닦을 것. 반찬 만들 때 양념과 재료를 아껴 쓸 것. 목발 때문에 생긴 거실 바닥의 얼룩을 깨끗이 지울 것. 그중에서도 가장 신신당부를 한 것은 비닐봉지 하나라도 자기 허락 없이는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쓰레기나 재활용품 버리는 건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 아예 손대지 말라고 했다. 퇴근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들려서 내보내는 집에 비하면 월터의 조건은 토를 달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뭐든 정리 정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오드리의 성격상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고역이었다. 확 쓸어서 버리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싶은데, 빽빽한 물건은 그대로 둔 채 들었다 놨다 청소 시늉만 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체증이 올라왔다.


거실이나 주방의 바닥 청소도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오래된 장판이 목발의 고무 밑창에 찍히면서 생기는 검고 끈적한 얼룩은 보도의 껌처럼 곳곳에 박혀 있었다. 식탁 의자 주변이나 화장실 앞, 현관, 싱크대 등 월터의 동선이 많은 곳은 장판의 훼손과 얼룩이 더 심했다. 접착 부위를 떼어내면 생기는 잔여물처럼 제거하기 힘든 얼룩이었다. 그냥 걸레질로는 어림도 없고 전용 세제를 뿌린 다음 힘을 주어 박박 닦아야 했다. 낡은 장판이 찢어지지 않도록 힘 조절도 필요했다. 문제는, 아무리 깨끗이 지워놔도 다음번에 가보면 또다시 얼룩이 생겨나 있다는 점이었다. 월터가 목발을 안 할 수는 없으니 보기 싫어도 그냥 두든지 아니면 장판을 새 걸로 바꿔야 해결이 날 일이었다. 월터 입장에서는 장판을 바꾸려면 돈이 드니까 활보한테 청소를 시키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일 뿐이다. 오드리는 시지프스가 아니다! 그런 벌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오드리는 묵묵히 청소를 하는 가운데 뭔가 변화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실 그만하면 일은 간단한 축에 속했다. 빨래 털어 널거나 개고, 청소기 돌린 다음 얼룩 좀 힘 줘서 제거하고, 화장실 청소 후 물기 닦고 걸레 빨고 그러면 끝이다. 반찬 만들 때 마늘이나 고춧가루 같은 거 아껴 써달라는 요구도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된다. 오드리가 일을 하는 동안 월터는 자기 방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했다. 활보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는 이용인이나 보호자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럼에도 첫날부터 묘하게 기가 빨리더니 두 번째 출근부터는 오래 일할 자신이 없어졌다. 돌봄 노동을 하다 보면 기가 빨리는 경험은 흔히 겪는다. 월터네 역시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그런데 단순히 기를 빨리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저장 강박이라면 안나도 있고 지나도 있었다. 한데 월터는 좀 달랐다. 사회성도 있고 잘 웃고 어디로 보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게 더 오싹하달까. 월터네 집 특유의 낡고 음산한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그 집에는 월터만 사는 게 아니었다. 죽은 부모도 같이 존재하고 있었다. 안방 이부자리에는 어머니가 누워있는 것 같았고, 월터의 아버지는 막 외출에서 돌아와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 베란다에 놓인 여자용 꽃무늬 슬리퍼는 어머니가 막 빨래를 널고 시장에 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월터는 십오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부모와 작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습관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월터의 삶일 뿐인데 왜 오드리는 진저리를 치는 걸까. 그건 바로 오드리가 어릴 때 살던 집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의 쎄한 느낌도 남의 집에서 맞닥뜨린 낯익은 기운과 냄새 때문임을 오드리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오드리의 엄마도 저장 강박 환자였다. 빵 봉지 묶은 끈 하나도 버리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마당 있는 작은 집이 쓰레기로 가득했다. 녹슨 철대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겁이 났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고 다 자란 언니 오빠들도 하나둘 떠나갔다. 막내인 오드리만 끝까지 남아 엄마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오드리는 필사적으로 엄마와 싸웠다. 오드리는 버리고 엄마는 다시 주워들이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문득 오드리는 그 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스무 살 생일을 넘기기도 전에 독립했다. 휑한 자취방에서 이불도 없이 잠을 청하던 첫날밤의 자유와 홀가분함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오드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다시 그 집으로 끌려가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이제는 다 극복했다고 믿었는데 월터네 집에서 오드리는 그 악몽과 다시 맞닥뜨린 것이다. 오드리는 용기를 내어 월터에게 물었다.

"혹시 일층으로 이사할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혼자 살기에는 집도 크고 계단도 너무 위험하잖아요."

"그런 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부모님이 살던 집을 팔 수는 없잖아요?"

"부모님도 아드님이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집에 계속 사는 걸 원치 않을 거예요. 평수를 줄이면 신축 원룸도 구할 수 있을 텐데요. 다니기 편한 일층으로. 그 참에 부모님 물건들도 좀 정리하고요."

'정리'라는 말에서 월터가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오드리는 최대한 가볍게 표현했다. 월터는 표정이 굳어졌다. "몇 년 전에 시에서 도배장판 작업을 지원해 준다고 했는데 그때도 거절했어요. 뭔가 일을 벌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살고 싶어요."

집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월터의 단호한 말에 오드리도 입을 다물었다.


한 번은 계단에서 월터의 남자 활보와 마주쳤다. 오드리는 출근을 하는 길이고 남자는 막 집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월터의 아버지뻘 되는 칠십대 노인이었다. 오드리는 먼저 인사를 했다. 노인은 오전에 어디를 좀 다녀왔다고 했다. 계단참에서 서로 비껴 서는 와중에 오드리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불쑥 물었다. "월터 씨가 본인 얘기를 잘 안 해서요." 노인은 월터를 잘 아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듯 우쭐대며 말했다. "아, 월터는 한 달에 한 번 절에 가요. 가서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 시주도 하고 그러고 오지요."

월터가 반찬 양념을 아껴서 모은 돈, 비닐봉지 하나도 허투루 안 쓰고 모은 그 돈으로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했는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나저나 본인도 나라의 지원을 받는 처지에 시주가 웬말인가.

"월터는 남은 평생을 부모님한테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고로 양친은 모두 죽고 정작 운전을 했던 자기는 다리 하나만 잃고 살아남았으니, 그럴 만도 하죠......."

월터의 장애에 대해 오드리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조차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용인 스스로 얘기해 주면 모를까 활보가 먼저 캐묻지는 않는다.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담당자로부터 사고가 있었다는 말은 들은 것 같다. 그걸 부모의 죽음과 연관 짓지는 못했다. 그토록 엄청난 상처를 안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월터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런 월터가 자기 편하자고 집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난 뒤 오드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눈 딱 감고 그냥 할 일만 하고 가자!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었어도 냄새나는 비닐봉지 하나 맘대로 버릴 수 없는 처지는 고통스러웠다. 생산적이지 못한 집안일 역시 내면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맛보며 살아야 사는 재미가 있는데, 월터와 그의 집은 과거에 정체돼 있었다. 여긴 월터의 집이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외쳐도 소용없었다. 오드리는 몸을 뒤척일 수도 없는 관짝에 갇힌 기분으로 근무시간을 버텼다. 그 집에선 시간이 느리다 못해 아예 멈춘 것 같았다. 벽시계가 고장 난 것 아니냐고 월터한테 물어본 적도 있다. 분명 삼십 분쯤 지난 것 같은데 오 분도 안 되었을 때의 섬뜩함이란. 월터를 탓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사라졌으니, 이제는 오드리의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드리는 담당자한테 전화했다. 담당자는 의아해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오드리도 난감했다. 이용인이 중증이라 케어가 힘든 것도 아니고 갑질하는 보호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자 이용인과 단둘이 있는 게 불편해서요." 오드리는 되는 대로 둘러댔다. "아니 월터님만큼 점잖은 사람도 없는데, 무슨 추행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오드리가 더는 말이 없으니 담당자도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알겠어요, 하며 전화를 끊었다. 못하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 미안할 뿐 이렇게 전화 한 통이면 끝날 일인데. 오드리는 내내 혼자 안달복달했다는 생각을 하니 허탈했다. 월터한테는 오히려 말하기가 쉬웠다. 온전한 일을 찾아 떠난다고. 이십 시간짜리 자투리 일이었기에 월터도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 날, 오드리는 평소처럼 인사했다. 월터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했다. 언제든지 저는 환영이니까 생각 있으면 다시 출근해 주세요,라고도 했다. 하지만 월터, 당신은 생각을 바꿀 계획이 없잖아요? 오드리는 목까지 올라온 말을 누르고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오니 흐린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월터한테 전화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오드리는 월터 혼자 그 집에 남겨둔 채 자기만 탈출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그건 월터가 선택한 삶이다. 오드리는 더 이상 월터의 삶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한다. 오드리의 엄마는 오드리 없이도 쓰레기집에서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월터도 그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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