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갈 사람?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지적장애 3급인 열세 살 수지는 친구가 없다.

친구를 반짝 끌어모으는 방법은 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편의점 갈 사람?” 하고 외치면 된다. 하교할 생각에 가방 싸기 바빴던 아이들이 하나둘 수지 곁으로 모여든다. 종일 시선 한 번 안 주던 짝꿍 클로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한 척을 한다. 호기심에 이십여 명의 반 아이들이 전부 따라나선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클로이를 비롯하여 네다섯 명의 아이들만 고정으로 남았다.


수지는 그들을 이끌고 엄마 린다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간다. 아이들은 린다에게 앞다투어 인사를 한다. 클로이의 목소리가 제일 크고 밝다. 린다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먹고 싶은 걸 맘껏 고르라고 한다. 클로이는 "얘들아, 너무 비싼 거 먹으면 안 돼." 하면서 린다의 눈치를 살핀다. 린다는 "괜찮아 괜찮아. 뭐든 먹고 싶은 거 골라."라고 말한다. 계산대에 올려놓은 과자나 음료수, 아이스크림 중에 클로이가 가져온 것이 제일 비싸다. 린다는 웃으며 계산을 치르고 아이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온다.


아이들은 편의점 근처 놀이터에서 각자 골라온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수지는 대화에 끼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듣고만 있다. 클로이가 다 먹은 과자 봉지를 구기며 "우리 문구점 갈까?" 하고 말한다. 나머지 아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수지를 향한다. 수지는 "그래 가자!" 하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수지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걷기 시작한다. 무인 문구점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이삼 분, 길어야 오 분을 넘지 않는다. 수지는 그 무리의 중요한 일원이 된 것 같은 그 순간이 좋다.


무인 문구점은 주인도 없고 수지 엄마의 눈도 없으니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물건을 고른다. 클로이의 주도로 수지를 데리고 처음 무인 문구점에 왔을 땐 다들 조심스럽게 천 원 이천 원짜리만 골랐다. 그러다가 한 번은 클로이가 칠천 원짜리 캐릭터 인형을 들고 "아 이거 너무 예쁜데 비싸서 안 되겠지?" 하고 수지를 보았을 때 수지는 자기 엄마처럼 "괜찮아 괜찮아." 했다. 수지는 가격표를 볼 줄 몰랐다. 그 뒤로 아이들은 경쟁하듯 비싼 물건을 집어 바구니에 담았다. 물론 누구도 클로이보다 비싼 걸 고르지는 않았다. 바구니가 가득 차면 아이들은 그걸 수지에게 건네준다. 수지는 이제야 제 차례가 왔다는 듯 으쓱하며 계산대로 간다.


수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엄마를 흉내 내듯 물건을 하나씩 꺼내 찍는다. 수지는 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그 소리를 좋아한다. 수지는 바코드 부분을 곧장 갖다 댈 줄 모른다. 물건을 이리저리 흔들다 보면 얻어걸리듯 바코드가 찍힌다. 서툴고 굼뜬 수지의 손놀림 때문에 물건 찍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대신 찍으려고도 했다. 그때 온순하기만 했던 수지의 거센 저항을 경험한 뒤로 아이들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다. 물건을 공짜로 가질 수 있는데 그 정도쯤이야. 수지가 바코드를 찍어 하나씩 넘기면 아이들이 각자 물건을 찾아간다. 합계 금액이 만원 이만 원을 넘은 지는 오래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그 금액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고, 수지도 마찬가지였다. 숫자가 어떻게 나오든 핸드폰 케이스에 꽂힌 체크카드를 꺼내 카드 투입구에 넣고 ‘결제하기’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다.


물건을 손에 쥔 아이들의 표정은 문구점을 나오기도 전에 싸늘해진다. 들어갈 때 수지를 떠받들듯 달콤한 표정을 지었던 아이들이 맞나 싶다. 목적을 달성해 아쉬울 게 없는 아이들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가면 안 돼?” 수지는 애원한다.

"수지야, 지금까지 많이 놀았잖아. 우리는 학원도 가야 되고 바쁜데도 시간 내서 너랑 놀아준 건데, 자꾸 보채면 다음은 없어." 다음은 없다는 클로이의 말에 수지는 입을 다문다.

혼자 남은 수지는 그들이 사라진 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간다. 수지네 현관문은 그냥 열린다. 수지가 열쇠는 자주 잃어버리고 비번은 자꾸 까먹는 바람에 린다는 문을 잠그지 않는다. 수지는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에 누워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린다는 야간 포함 하루 열두 시간 이상 편의점에서 일한다.

수지 학교 코앞에 집과 직장을 구한 것은 근무 틈틈이 수지를 챙기기 위해서다. 마흔 초반인 린다의 얼굴은 누적된 피로감으로 겉늙어 보인다. 린다는 방금 빠져나간 체크카드 내역을 본다. 이만천 원. 린다가 계산한 간식비까지 치면 금액은 더 커진다.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간식을 얻어먹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언젠가부터 문구점까지 노린다는 건 린다도 알고 있다. 매번 그러면 린다도 주의를 줄 텐데, 교활한 클로이는 어쩌다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문구점으로 수지를 데려가는 작전을 쓴다. 바코드를 찍고 온 날이면 수지의 목소리도 한껏 들떠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둔다. 수지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깟 몇만 원쯤이야!


신용카드 대금이 밀린 지는 꽤 되었다. 매달 비싼 이자를 물고 있다. 그렇다고 쿠팡을 끊을 수는 없었다.

수지는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무조건 쿠팡을 찾는다. 수지한테 쿠팡은 도라에몽의 주머니와 같다. 수지의 욕망은 즉흥적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뭔가가 눈에 들어오면 “엄마 나 이거 사줘.” 한다. “내일 새벽에 오는 거지?” 반짝이는 수지의 눈을 보면 린다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정작 그 택배가 도착할 때쯤이면 수지는 자신이 원했던 게 뭔지도 까먹고 있다. 수지네 문 앞에는 매일 택배가 쌓인다. 뜯어놓고 한 번도 사용 안 한 문구류나 캐릭터 인형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원룸을 채워나갔다. 블루마블 같은 게임 세트는 린다가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는데도 계속 주문하여 몇십 개가 탑처럼 쌓였다.


잡동사니로 뒤덮인 십 평 원룸은 침대, 옷장, 책상 같은 가구들이 원래의 용도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물건에 가려져 창문이 있다는 사실도 잊혔다. 어딘가 이미 산 물건이 처박혀있을 테지만 그걸 찾을 엄두가 안 나 새로 시킬 때도 많았다. 침대는 온갖 인형으로 넘쳐서 수지 혼자 눕기도 버겁다. 린다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수지를 등교시킨 다음에 침대 한 귀퉁이에 모로 누워 잠깐 눈을 붙인다. 린다는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쾌적한 수면을 위해 우선 물건부터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매달 쌓이는 적자를 해결하려면 수지한테서 체크카드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척한다.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줄만 알았던 수지가 결국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린다는 자기 앞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남편은 맹목적인 린다한테 질렸다며 집을 나갔다. 린다는 남편이 자기 핑계를 대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딸이 창피한 거면서. 나는 절대 우리 수지를 버리지 않을 거야. 수지가 원하는 건 다 해줄 거야. 린다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고 수지한테 전화를 건다. 린다는 딸과 통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수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두서없이 떠든다. 수지의 어눌한 말투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건 엄마 린다뿐이다. 편의점 사장은 모녀의 잦은 통화를 눈감아 준다. 린다는 비상시에 써먹기 좋고 연장 근로 수당 같은 것도 안 따지기 때문이다.


린다는 퇴근 전에 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이나 햄버거 같은 걸 챙긴다. 덕분에 식비를 아낄 수 있어 이만하면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그 인스턴트식품과 수지의 비만이 관련 있다고 생각할 여유까지는 없다. 지금 현재 린다의 제일 큰 고민은 이제 몇 달 후면 수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간다는 거다. 중학교는 걸어서 십오 분 거리다. 가는 길에 횡단보도도 두 개나 있다. 아침 등교는 린다가 해준다지만 하교는 어쩌나. 린다는 중학교 근처로 집과 직장을 옮길 생각이다. 그 말을 들은 편의점 사장은 린다 같은 우수 직원을 잃고 싶지 않아 대안을 제시해 준다. "요즘은 나라에서 애 봐주는 서비스도 많다던데. 그 뭐라나 장애인 활동 보조?"


린다는 편의점 사장한테 떠밀려 주민센터 복지과를 찾아갔고, 여러 절차를 거친 후 오드리와 대면하게 된다. /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 감사드립니다.

'나는 활보다' 1부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확장된 수지의 이야기는 2부에서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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