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떠나지 말아요(1)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매미는 대낮처럼 울고 있었다.

오드리는 역대 최장기 어쩌고 하는 열대야 기록보다 새벽 세 시에도 울어대는 저 매미의 수면시간이 더 궁금했다. 창을 있는 대로 열어놓았음에도 공기의 흐름은 멈춰 있다. 배를 덮은 홑이불조차 물먹은 솜이불 같다. 어제는 토요일이고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제도 뜨거웠고 오늘도 뜨겁고 내일도 뜨거운 날일 뿐이다. 오드리는 더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를 굴린다. 그날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 오기로 했다. 말복이니 밥이라도 먹자고 불렀다. 로지가 해준 백숙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로지는 오랜 불면증으로 늘 이 시간에 깨어있다고 했다. 오드리는 그 시간대가 낯설었지만 로지도 지금 깨어있을 거라 생각하니 동지가 된 기분이다.


새벽잠을 설친 바람에 느지막이 일어난 오드리는 오후 두 시쯤 남편을 닦달하여 마트에 갔다. 딸도 먹이고 내일 로지한테도 갖다 줄 요량으로 말랑 복숭아를 한 상자 샀다. 새 모이만큼 먹는 그녀가 그나마 반 개라도 먹는 게 말랑 복숭아다. 자기는 막 퍼주면서 오드리가 뭐라도 하나 답례를 할라치면 펄쩍 뛰는 로지가 떠올라 오드리는 실실 웃었다. “뭐가 좋다고 웃어? 자리도 없구먼.” 남편은 인상을 썼다. 오드리네 아파트는 오후 여섯 시까지는 와야 지상에 주차할 수 있는데, 그날은 다섯 시 반에 왔는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다들 에어컨 켜놓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거다, 이런 날씨에는 오늘내일하던 사람도 미안해서 못 죽는다, 그냥 시켜 먹고 말지 기어이 사람을 끌고 나갔다,며 남편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하주차장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차를 대놓고 걸어 나올 남편의 고충을 생각하여 오드리는 말없이 짐을 내렸다.


인정사정없는 땡볕이 제까닥 달려든다. 남편을 기다릴까 하다가 오드리는 두 번 왔다 갔다 하며 짐을 나른다. 공동현관 키패드는 몇 번을 꾹꾹 눌러야 먹히는데 그 와중에 문자까지 왔다. 오드리는 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가방을 뒤진다. 뒤죽박죽인 가방 속에서 폰은 맨 마지막에야 손에 잡힌다. 단 몇 분 사이에 오드리의 온몸은 땀범벅이 된다. 분명 스팸일 거고, 평소라면 가볍게 무시했을 문자를 왜 꾸역꾸역 확인하고 있는지 오드리 자신도 이상했는데,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부고였다.

오드리는 남편한테 전화하여 주차하지 말고 다시 올라오라고 했다. 빠져나가기 좋은 자리에 겨우 댔는데 무슨 소리냐고 남편이 꽥꽥댔다.

“로지 여사가 죽었대.”

“뭐? 누구?”

“로키 할머니가 죽었다고!”

오드리도 결국 쇳소리를 냈다. 지난 금요일, 불과 이틀 전에 웃으며 헤어진 이용인 로지가 죽었다는 부고였다. 남편은 곧장 오드리 앞에 차를 갖다 댔다.


오드리가 로지를 처음 만난 건 봄이 시작되던 지난 3월이었다.

당시 오드리는 자의로 쉬고 있었는데 담당자는 일로 받은 스트레스는 일로 풀어야 한다며 오드리를 꼬셨다. “일단 시작부터 해요. 이 자리가 아까워서 그래요, 진짜로.” 담당자의 고정 멘트였다. 전 이용인을 소개할 때도 그랬다. 세상에 없는 양반이라고 했다. 진상으로는 상대가 없다는 뜻이겠지. 사사건건 잔소리는 그렇다 쳐도 퇴근 때마다 불쑥불쑥 오드리의 가방을 검사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담당자한테 말했더니 그럼 가방을 두고 출근하란다.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되었다. 그래서 폰만 들고 다녀보기도 했다. 좀 나아지나 했는데 겨울에 패딩을 입게 되자 다시 의심병이 도져 주머니 검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그만두고 쉬는 중이었다.

담당자는 바로 미팅 시간을 잡고 집 앞까지 데리러 왔다. “로지 여사는 삼 년 전에 간이식을 하고 요양 중인데, 혼자서 살살 다 해요. 개만 좀 케어해 주면 된대요. 개 좋아하죠?” 개는 오드리 인생에 관련이 없던 존재다. 개 좋아하냐는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도 순간 헷갈렸다.


초인종을 누르니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로지는 그 개를 안고 서 있었다. 작고 마른 여자였다. 칠십 초반치고는 동안이었다. 미용실 갈 시기가 지난 듯 흘러내리는 앞머리에 무심히 꽂은 분홍색 리본 핀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담당자는 호들갑을 떨며 개를 받아 안는다. “아이고 우리 로키, 잘 있었어?” 담당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용인의 개 이름까지 기억한다는 건 재능이라고 봐야 한다. 담당자가 로키를 물고 빠는 동안 오드리는 로지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녀도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주름진 얼굴이 창백했으나 말간 눈빛만은 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식탁에 로키를 올려놓고 세 명이 둘러앉았다. 로키는 낯선 사람이 오면 계속 짖고 나대는데, 높은 데 올려놓으면 얌전해진단다. 그래서 차를 마실 때도 로키는 식탁 위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로키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담당자가 떠들고 로지가 대답하고 오드리는 들었다. 로키는 포메라니안 종이고 나이는 네 살이었다. 풍성한 갈색 털에 까만 눈동자와 축축한 콧방울, 귀여운 입매가 전체적으로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이었다.

“로키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오드리는 조심스럽게 로키의 털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리 로키는 수컷이에요. 아직 총각이죠.” 로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로키는 간을 떼준 작은아들이 데려왔다고 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랑 친구가 되라고. 화제는 이제 작은아들로 넘어간다. “아무리 자식이래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로지 님은 참 효자 아들을 두신 거예요. 아드님 성의를 봐서라도 앞으로 백 살까지 사셔야겠어요, 호호호.” 담당자는 차를 다 마시고 물까지 마셔가며 떠들어댄다. 로지의 대답이 점점 짧아지는가 싶더니 피곤한 기색이 새침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자, 그럼 출근은 내일부터 하면 되겠지요?” 담당자는 재빨리 마무리에 들어갔다.


다음 날, 문을 열어주는 로지의 얼굴이 부어 있었다. 잠을 못 자서 머리도 어지럽다고 했다. 오드리와 로키의 첫 산책은 로지도 같이 나가 주기로 했는데 낭패였다. 로지가 일러주는 말을 새겨듣는 수밖에 없었다. 산책 시간은 이삼십 분 선에서 조절하면 되는데, 가능하면 배변은 꼭 하고 들어올 것이며, 배변 봉투는 아파트 단지 안 쓰레기장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살짝 벌려 버리면 된다고 했다. 요즘은 오드리가 흔히 알던 목줄이 아니라 조끼처럼 입히는 가슴 줄을 채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로키와 둘이 밖으로 나갔을 때 오드리는 너무 긴장해서 줄을 잡은 오른손과 팔이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로키는 매번 가슴 줄을 하는 순간부터 원을 돌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오드리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줄이 꼬이면 풀기가 번거로워도 오드리는 좋다고 날뛰는 그 모습이 흐뭇했다. 로키는 산책 코스가 일정한데도 처음 보는 장소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탐색했다. 배변도 일정하게 했다. 손가락 두 마디 같은 똥을 세 번 끊어 눴다. 그걸 치우는 동안에도 오드리는 줄을 놓지 않았다. 로지는 로키 혼자 멀리 가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걸 시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개들을 만나면 로키는 무조건 앞발을 들고 짖어댔다. 상대가 크든 작든 상관없었다. 그때마다 오드리는 놀라서 얼른 자리를 피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가끔 마주치는 한 견주가, 얘들도 친구가 필요하니 도망가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인사할 시간을 주기도 해 봤으나 로키는 대책 없이 공격하고 짖기만 했다. “애기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봐요.” 자기 개를 안아 올리며 상대 견주가 무심히 말했을 때 오드리는 자기 딸이 욕먹은 것처럼 화가 났다. 로키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단시간에 생길 줄은 몰랐다.

어느 날 로지가 말했다.

“로키가 선생님이랑 나가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에요.”

“로키는 산책시켜 주면 무조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오드리가 묻자 전 활보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전 활보랑 나갈 때마다 로키가 낑낑대고 싫어했단다. 고민하다가 하루는 뒤를 밟아보았는데, 로키가 뱅뱅 돌면 줄을 잡아당기며 소리를 지르고, 산책은 찔끔 한 다음 벤치에 앉아 폰만 보더라는 것. 옆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던 로키를 생각하면 로지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로지는 센터에 전화해 사람을 바꿔달라 했고 오드리가 그 후임으로 온 것이었다.


오드리는 출근하면 일단 로키 산책부터 끝낸 다음 집안일을 했다. 복잡한 주방과 꽉 찬 냉장고는 로지 소관이었으므로 청소와 빨래가 오드리의 주된 일이었다. 오드리는 먼저 청소기부터 청소했다. 본체와 봉, 헤드 등을 분해하여 먼지를 닦고, 필터를 씻고 말려서 조립했다. 그렇게 해도 전원을 켜면 즉각적으로 올라오는 개 누린내는 없어지지 않았다. 오드리는 귀여운 로키와 역겨운 그 냄새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한동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카펫에 달라붙은 개털은 청소기를 갖다 대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릴 뿐 속 시원하게 흡입되지도 않았다. 로지는 주로 침대에만 있고 작은아들도 잠만 자고 나가는데 그 모든 공간을 넘나드는 건 로키의 털 뿐이었다. 하지만 로키마저 없었으면 그 집은 주인이 오랜 여행을 떠난 집처럼 한 점의 생기도 없었을 터였다.


낡은 정물화 같은 그 집에서 로지도 그림 속 인물처럼 존재했다. 그녀의 일과는 면역억제제를 챙겨 먹고 아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고 로키 간식을 챙겨주는 게 다였다. 아들이 퇴근해 씻고 나오는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리는 일은 그중 가장 중요했다. 필요한 식재료와 생필품은 아들이 그때그때 온라인으로 주문해 주었다. 택배가 오면 오드리가 안으로 들여 정리해 주었다. 대파 한 단, 두부 한모 같은 신선식품은 오드리가 산책길에 사다 주었다. 로지는 길에서 노인들이 파는 제철 채소를 좋아했다. 부추, 쪽파, 마늘, 도라지 등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을 사 와서 쉬엄쉬엄 다듬었다. 침대에 보자기를 깔고 그것들을 손질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고 했다. 밤에 잠 못 잘 때 하려고 부러 남겨두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한 재료로 사부작사부작 반찬을 만들었다. 로지는 손에 힘이 없어 칼질이 문제였는데, 무나 당근, 배추같이 단단한 것들은 오드리가 퇴근 전에 미리 썰어주기도 했다.


로지는 자투리 채소로 부침개를 잘 만들었다. 바삭한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 놓고 식기 전에 먹으라며 일하는 중인 오드리를 부르곤 했다. 정작 본인은 한두 점 먹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로지는 남이 맛있게 먹는 거 보는 재미로 음식을 한다고 했다.

“내가 예전에 식당에서 일했거든요. 밤늦게 일 끝나면 안주 하나 뚝딱 만들어 아줌마들이랑 한 잔 하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로지의 병명은 알코올성 간경화였다. 지금은 삼십오 킬로그램이고 수술 전에도 사십 킬로그램이 안 되었다는 저 작은 몸에 무슨 이유로 술을 들이붓게 된 걸까. 로지는 문득 지난 얘기를 꺼냈다가도 흐지부지 끝내버렸다. 과거사를 말하기 싫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닌 게 뭔 얘기 끝에 툭툭 튀어나왔다. 로지는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지치기 때문에 몇 마디 하다 보면 기운이 빠져서 진도를 더 못 나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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