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우리 아가...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그날 아침은 오드리가 클라라네에 출근한 지 십오 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집에서 더 이상 일하는 건 무리다,라는 결론은 그 전날 난 상태였다. 다만 그날도 기를 쓰고 출근한 것은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보름 만에 그만둔다는 건 오드리의 경력에 먹칠이었다.

오드리는 현관을 들어서며 마지못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명랑한 기운은 거짓으로 입힐 수 없었다. 실내는 그림처럼 똑같은 풍경이다. 클라라는 누워있고 헬가는 소파에 앉아있다. 헬가는 여전히 오드리의 인사를 묵살한다.

오드리는 기계적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클라라를 휠체어에 앉히고 창문을 열고 이불과 요를 털고 청소기를 돌린다. 창틀, 소파 아래, 서랍장 뒤쪽 등 사각지대도 매일 해야 한다. 청소기가 안 들어가는 데는 물티슈로 팔을 뻗어 닦아낸다. 헬가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오드리의 모든 동선을 매의 눈으로 노려본다. 어디 한 곳이라도 깜박하면 당장 "거기는 왜 빼먹어?" 하고 소리 지른다. 헬가의 매서운 눈초리와 클라라의 괴성과 낡은 청소기 소음이 한꺼번에 오드리를 공격한다. 뇌의 실핏줄이 투둑투둑 터지는 것 같다. 지금 당장 때려치우지 않으면 돌아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몰려온다.


일단 출근은 했으니 세 시간 근무는 채우고 그만둘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깨질 듯한 두통에 심장이 고장 난 듯이 펄떡대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그건 오드리로서도 당황스러운 신체의 변화였다. 지난 며칠간 난데없는 위경련에 시달린 것도 그 때문일까. 몸은 정신보다 하위개념 같지만 의식보다 한 발 먼저 위험을 간파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그걸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집에 더 있으면 안 된다,는 내면의 아우성이 계속 들렸다. 그 와중에도 오드리의 손은 습관적으로 물걸레를 집는다. 걸레를 빨아서 밀대에 끼우고 구석구석 밀대질을 한다. 그 역시 청소보다 헬가의 만족이 먼저다. 심지어 헬가는 걸레를 바꿔서 밀대질을 두 번 하라고 요구했다. 똥개 훈련이다. 헬가는 활보를 제 맘대로 부리는 데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오드리의 몫은 모멸감뿐이다. 오드리는 욕실에서 걸레를 빨며 입을 앙다물었다. 여기까지다. 오드리는 깨끗이 빤 걸레를 널어놓고 욕실에서 나와 조용히 앞치마를 벗었다.


헬가는 클라라를 어르고 있다.

"아가, 우리 아가, 왜 그래 응? 뭐 줄까? 까까 줄까?" 헬가가 나직하고 길게 아가야 하고 부를 때의 목소리는 세상에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다정하다. 엄마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무얼 원하는지 다 안다더니 헬가도 클라라의 괴성을 얼추 구분해 낸다. 아파서 그러는지 목이 마른 건지 기저귀 때문인지 알아맞힌다. 하지만 대개는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럴 때면 헬가는 클라라를 끌어안고 애원한다. "아가 우리 아가 왜 그래? 뭐가 안 좋아? 속이 상해? 그래도 너무 소리치지 마. 너 힘들어......." 헬가가 항상 그런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헬가의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나쁠 때는 클라라가 발치에서 아무리 팔다리를 휘저어도 외면한다.

그날따라 헬가는 웬일로 아침부터 클라라를 예뻐하고 있다. 보통은 밤새 허리 통증에 시달려 잔뜩 독이 올라있을 시간대다. 오드리는 할 말을 잊고 두 사람을 쳐다본다. 클라라는 마흔이 넘었고 헬가도 여든이 넘었다. 산발한 허연 머리에 눈이 퀭한 헬가가 입을 쩍 벌린 채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비트는 클라라를 아가아, 아가아, 다정하게 부르는 모습은 호러의 한 장면 같다. 헬가가 '아가야' 할 때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오드리한테 친절했다면, 사십 넘은 막내딸을 지금도 아가라고 부르는 헬가의 그 모습에 연민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헬가의 극단적인 이중성은 도저히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클라라 모녀를 소개할 때 담당자는 솔직하게 말했다. 여기 보호자는 문제가 많다, 전 활보들과 갈등이 심했다, 그래도 이용인을 놓치기는 아깝다, 그러니 최소 한 달은 버텨 달라,고 부탁했다. 담당자의 진솔한 말에 오드리도 다른 때보다 더 각오를 새롭게 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 생각했고, 진상 보호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오만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건 바로 깨닫게 된다.

클라라 모녀를 처음 만나던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름밖에 안 했으니 첫날의 이야기가 전부 다라고 해도 될 거 같다. 지금껏 첫날의 기억이 이렇게까지 끔찍한 적은 없었다. 누구라도 처음에는 다들 상냥한 척하고 고상한 척한다. 당장 그다음 날 본색이 드러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헬가는 예외였다.

첫날 아침 아홉 시에 담당자와 오드리가 집으로 들어갔을 때 헬가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집은 십오 평 임대아파트였는데 현관 정면에서 왼쪽이 주방 겸 거실이고 오른쪽으로 방, 화장실, 방이 있었다. 싱크대 옆에 냉장고 그 옆에 소파가 있는 식이었다. 가구나 살림살이들은 그저 평범했는데 헬가가 앉아있던 소파는 유독 눈에 띄었다. 유럽 왕실에서나 썼을 법한 스타일로 원목 프레임에 등받이와 팔걸이의 유려한 곡선, 보라색 벨벳의 질감이 우아하고 화려했다. 천이 닳고 빛이 바랜 자체로 멋이 나는 소파였다. 허리 복대를 하고도 다리를 꼰 채 앉아있는 헬가의 옷차림도 내가 이 소파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 범상치 않았다.

백발의 단발머리에 새빨간 꽃무늬 블라우스와 초록색 플리츠바지 차림은 팔십 대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 옷차림은 헬가의 기본 취향이겠지만 오드리 눈에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싶어 하는 과한 심리가 느껴졌다.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나올 만큼 마르고 주름이 졌지만, 큼직한 이목구비는 화장만 하면 금세 변신이 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세련된 할머니가 세상의 온갖 심술을 다 삼킨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었으니 더 기괴해 보였다.


헬가의 발치에는 클라라가 엎드려 있었다. 문을 막 열고 들어갔을 때 클라라는 사지를 버둥거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엎드렸다가 옆으로 뒤틀었다가 누웠다가 또 한 바퀴 돌았다가 풍선 인형으로 비유하면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 각 관절과 허리를 꺾고 있었다. 그것은 워킹 데드의 한 장면이었다. 오드리는 몸부림치는 좀비를 현실에서 맞닥뜨린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클라라는 거식증 환자처럼 뼈만 남은 몸이라 팔다리가 더 길쭉길쭉해 보여서 움직임도 더 극적이었다. 앙상한 얼굴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피부색은 이상하게 검었다. 보통 집에만 있는 장애인들은 햇빛을 못 봐서 피부가 하얀 편이다. 클라라는 갓난아이처럼 모든 의사 표현을 괴성으로 했다. 괴성을 내지르는 입은 이빨이 없어 힘없이 벌어져 있었다. 지금껏 여러 유형의 장애인을 봐왔던 오드리도 순간 눈을 감고 싶을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클라라의 허리에 끈을 묶어 소파 다리에 연결해 놓았다는 점이다. 하도 몸부림을 치니까 어디 부딪혀 다칠까봐 해놓은 방법 같은데, 그 끈이 결박된 좀비 같다는 느낌을 더 생생하게 불러일으켰다. 클라라의 난리법석에도 헬가는 소파 정면의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꼼짝도 안 했다. 분명 방문객이 왔다는 걸 알면서, 어차피 문도 미리 열어두었으면서, 끝까지 목에 깁스한 사람처럼 텔레비전만 응시하고 있었다. 직전 활보가 사흘 만에 뛰쳐나간 데 대한 불만 표시를 하는 거라고 담당자는 나중에 말해주었다.


잡상인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담당자는 본업에 충실했다. 큰소리로 인사도 하고 이것저것 안부를 물은 다음 오드리를 소개했다. 헬가는 미동도 안 했다. 클라라의 괴성만이 세 사람 사이를 휘돌았다. 노련한 담당자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드리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하려고 용을 썼다.

그때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헬가의 아들인데 오래전 이혼하고 엄마의 좁은 집에 얹혀사는 처지였다. 그나마 그 집에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아들뿐이었다. 아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클라라는 장애가 심해서 한 달에 삼백 시간이 넘는다. 야간에는 다른 활보가 와서 클라라를 돌본다. 낮에는 세 시간 정도 쓸 수 있는데 클라라 목욕과 가사를 해주면 된다,고 했다. "세 시간 할 것도 없어. 한 시간이면 뒤집어쓴다구!" 헬가가 불쑥 끼어든다. "그렇다 해도 한 시간 일하자고 왕복 출퇴근 시간 써가며 올 수는 없으니까요." 담당자도 지지 않고 맞섰다. 그렇게 세 시간 하는 걸로 결론이 나자 헬가는 더 심술 난 표정을 지었다. 오드리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서류 정리를 끝내고 돌아가는 담당자를 따라 자기도 그냥 그 집을 나가고 싶었다. 담당자는 현관에서 오드리한테 힘내라는 눈짓을 하고 돌아섰다. 문이 닫히고 오드리만 남았다. 오롯이 활보 혼자 헤쳐나가야 할 그 순간만큼 막막한 때도 없다.


"뭐 해? 얼른 일 시작하지 않고!"

헬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출근 첫날은 보호자가 세세하게 업무를 가르쳐줘야 한다. 다짜고짜 반말은 문제도 아닐 만큼 헬가는 억지를 썼다. 오드리는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아니, 일 처음 해봐? 바보야?" 헬가는 자기 머릿속에 있는 생각대로 오드리가 움직여주지 않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몰아세웠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어? 오늘 바로 일 시작하시게요?" 엄마의 고함을 듣고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바로 해야지 그럼 일이 얼마나 밀렸는데." 헬가는 아들의 말을 가로챘다. 아들은 제 엄마 얼굴은 보지도 않고 그럼 오늘은 뭘 해야 하나, 하며 둘러보더니 일단 여기부터 좀 닦으세요, 했다. 기름때 누렇게 찌든 주방 후드였다. 어디든 처음 가면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부터 시킨다. 오드리는 준비해 간 앞치마를 두르며 고무장갑을 찾았다. 아들은 "엄마, 장갑 어딨지?" 했고, 헬가는 "우리 장갑을 왜 써? 일할 사람이 준비해 와야지!" 하며 또 꽥꽥 소리를 질렀다. 헬가의 목소리는 칼로 쇠접시를 긁는 듯 불쾌하고 날카로웠다.

오드리는 나가서 고무장갑을 사 왔다. 앞치마와 물컵을 따로 준비해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수기 물을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일 줄이야! 헬가는 오드리를 미워하고 괴롭히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야단을 쳤다. 오드리는 노인이 아니라 다섯 살 아이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너무 기막히고 치사하고 어처구니없었다.


그중 한 가지 예. 클라라는 잠시도 몸을 가만있지 못한다. 그런 클라라를 오드리 혼자 씻겨야 한다. 헬가의 허리가 괜찮았을 때는 같이 했다고 한다. 이제는 엄마가 돕지를 못하니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고 아들이 샤워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일단 클라라의 옷을 벗기고 변기에 앉힌다. 처참한 클라라의 나체, 앙상한 팔다리는 어디 한 군데 꺾일까 봐 조심스럽다. 샤워는 변기에 앉혀놓고 재빨리 끝내야 된다. 그래서 미리 샤워기 물 온도를 맞춰놓은 다음 후다닥 물을 끼얹고, 미리 거품을 내놓은 샤워타월로 사샤삭 문지르고, 마지막 헹굼의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해야 한다. 욕실에서도 클라라의 몸부림은 여전하기 때문에 오드리의 한 손은 계속 클라라의 몸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샤워 전 과정을 처리해야 한다.

샴푸를 하거나 비누칠을 할 때는 샤워기 물을 잠가야 하는데 멀리 욕조에 부착된 수도꼭지를 잠그려면 두 손이 클라라한테서 떨어져야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클라라가 변기에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샤워가 끝날 때까지 물이 나오는 그대로 샤워기를 욕조에 던져둔 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긴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헬가는 욕실 문 앞에 앉아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을 꺼가면서 해야지! 너네 집 수도면 그렇게 하겠어?" 자기 딸의 안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건데, 뻔히 다 보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몇 가지 더. 클라라를 휠체어에 태울 때는 몸부림쳐서 떨어질까 봐 긴 스카프로 몸을 고정시키는데, 헬가는 자기 방식대로 딱 한 번 매듭 묶는 걸 보여주고는 오드리가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 상식적인 것도 안 배웠냐며 면박을 주고 짜증을 냈다. 전 활보들은 자기 폰으로 애한테 동요도 틀어주던데 넌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클라라가 자꾸 칭얼대면 무조건 휠체어를 밀어주라고 한다. 좁은 거실에서 휠체어를 밀고 왔다 갔다 하려면 서너 발자국만에 턴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라는 시한도 없이, 클라라가 괴성을 멈출 때까지 혹은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밀어야 한다. 반복해서 원을 도니 오드리 머리도 쥐가 날 것 같은데, 천천히 밀면 천천히 민다고 난리, 좀 빠르면 애 어지럽게 해서 죽일 거냐고 난리다. 어제는 순식간에 클라라가 눈이 허옇게 까뒤집어지면서 경기를 일으켰는데, 헬가는 그걸 오드리 탓으로 몰았다. 오드리한테서 감시의 눈초리를 잠시도 거두지 않았던 사람이 말이다. 오드리는 그때 그만둘 결심을 확실히 굳혔다.


"저 그만둘게요"

오드리는 헬가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헬가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오드리를 보지도 않고 "그러든지 말든지" 했다. 오드리는 자신의 물컵과 고무장갑, 앞치마를 챙겨 가방에 넣고 겉옷을 입었다. 이제 신발만 신으면 끝이다! 하는 마음으로 현관에 섰을 때 헬가가 불쑥 말했다. "근데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아? 다른 사람 올 때까지는 해줘야 될 거 아냐! 내가 사무실이고 어디고 전화해서 다 고발해 버릴 거야!"

헬가는 클라라를 품에 안고 악을 썼다. 경우가 아니라는 말이 헬가 입에서 나오다니 너무 웃겼다. 오드리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냥 밖으로 나왔다. "이래서 저런 잡것들은 함부로 집에 들이면 안 되는 거야!"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헬가의 마지막 발악을 보았다. 엄마가 흥분하니까 아가의 괴성도 더 커진다. 오드리는 문 밖에 잠깐 서 있었다. 저런 잡것들. 그 말이 발목을 잡는다. 당장 들어가서 미친년처럼 되갚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젓는다. 그냥 나부터 살고 보자. 오드리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오드리가 그만둔 뒤 더는 나서는 활보가 없었다. 지난 일 년간 바뀐 활보만 열 명이 넘을 만큼 헬가의 악명은 자자했다. 돈이 급해 야간을 전담하던 활보도 얼마 못 가 그만두었다. 그쯤 되자 담당자도 포기를 선언했다. 이제 헬가는 다른 센터에서 지원자가 나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 번은 아들이 전화하여 엄마 성질은 자기가 책임질 테니 제발 좀 활보를 보내달라고 했단다. 그런 소식을 들어도 오드리는 시원하지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도 헬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것 같았다. 헬가의 차가운 표정과 멸시의 눈초리는 꿈에서도 가끔 나타나 오드리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그런 어느 날 센터에 활보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몇 년 전에 클라라를 맡았던 활보선생님을 만났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요? 할머니가 좀 까칠하긴 했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내가 사정이 있어 그만두고 난 다음에 클라라가 더 나빠졌다는 소식도 들었고, 할머니가 허리를 수술했다는 얘기도 듣긴 했어요. 몸이 아프면서 할머니도 더 날카로워졌나 보네요. 우울증은 원래 있었고, 어쩌면 나이도 있으니 치매가 왔을 수도 있겠네요....... 참, 손자가 작년에 죽었다지요 아마. 하나뿐인 친손자라 엄청 예뻐했거든요. 이혼한 며느리가 두고 가버려서 세 살 때부터 키웠는데, 고등학교 졸업 앞두고 홀연히 가버렸대요. 저도 그 소식 듣고 마음이 안 좋았는데 할머니는 오죽했겠어요......."

차라리 안 들었으면 좋았을 이야기였다. 오드리를 만났을 당시 헬가의 세상은 지옥이었고, 살아서 버틴 것만도 최선이었던 것이다. 하필 그 시기에 오드리가 스쳐갔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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