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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Jul 30. 2024

길은 예상외로 균일하다

(모처럼의 시간과 두 권의 책)

 티 안 나게 자랑하는 걸 선호한다. 티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숨겨뒀지만 결국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티 나게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 선물 받은 책이 그렇다. 공동 집필한 책인데 작가는 부부고 그분들은 같은 팀 동료의 부모님이다. 동료는 팀에서는 막내, 회사 생활로서는 신입에 가까운 친구인데 최근 이런저런 일들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런 과정이 이 친구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고맙게도 그 마음을 이어서 부모님께 이야기를 전달드렸고 그 친구 부모님께서 직접 쓰신 책을 선물해 주셨다. 처음 받는 종류의 선물이다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감회가 새로웠다. 스승의 날 선물을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 일까? 당장 중학교 선생님을 하는 누나에게 전화 걸어 '이런 뿌듯함을 가지고 살고 있니?'라고 묻고 싶지만, 에이 관두자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누나는 생각하는 선생님의 범주에 두긴 무리가 있다. (그 애들은 정말 잘 배우고 있는 걸까?..) 아무튼 인생 최초선물이어서 자체로도 뜻깊었다. 다만, 이 책의 내용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울림이 크기 때문에 글로 옮겨 적을 수밖에 없다.



 인생에 있어서 스승이 있는가?


 위에서 언급한 스승의 날은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받고 그 영향을 통해서 성장한다. 사실상 나 자신을 '스승'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말 그대로 오버다. 그것보다 이 친구가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도를 유추해 보았을 때 이것은 인생의 '스승' 그 자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문득 부러워졌다.  

 책을 읽다 보니 이 친구는 스승인 부모님과의 영향도에 말미암아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나의 두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차치하고라도 나에게 대체 스승은 누구일까? 분명 나도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고 잘 따르고 있지만 이렇게 삶의 태도까지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완전히 매료되었을까? 그건 아니다. 애초에 어느 누구를 그렇게 존경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마음속에 따라가고 싶은 롤모델조차 없었다. 매일이 모순인 나에게 모순을 그대로 써 내려가는 작가들만 그때그때 스승이 되곤 했다. 괴테, 밀란 쿤데라, 나쓰메 소세키, 도스토예프스키 등 고전을 탐독하다 보면 느껴지는 모순과 그 모순을 인정하는 문장이 나에겐 누구보다 솔직한 스승들이었다. 어쩌면 스승이라는 것은 내가 하지 못했던 말, 아니 내 마음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말을 멋지게 끌어내 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하게도 '이어령'이라는 이름이 머리를 맴돌았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신 지는 모르겠지만 한 두 문장이 정말 솔직하게 쓰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 기간 동안 읽기 위해 '마지막 수업'이라는 인터뷰 형식의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엄밀히 작가는 이어령 선생님이 아니지만 그의 생각을 엿보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 2주는커녕 2일도 안돼서 읽어버리고 또 인생의 스승을 추가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에겐 스승이 없었는데 이어령 선생님 책을 읽고 앞의 고전의 작가들을 나의 스승으로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마음을 끄집어내서 글로 쓰는 기분은 어디 가서 또 느끼진 못하겠다. 이번에는 직접 쓰신 글이 궁금해진다. 곧바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주문하고 육아 속 남모를 즐거움을 장전한다.



 신념이 부족한 거 아닙니까?


 최근 3년의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신념'이다. 인생 = 커리어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하는 일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인생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생 = 커리어'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 어딘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것 같다. 그 전제에서 최근의 질문은 '나답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서 성과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일 그 자체가 주는 공허함보다는 그 일이 나와 작용하고 내가 그 일에 일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마주하는 것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되는 목표다. 특히 IT업계의 특성상 서비스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많은 사람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내어 성과를 차지하는 성공신화가 많기 때문에 '신념을 가진 사람(혹은 가진 척하는)'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애초부터 빵가게 사장을 꿈꾸는 나는 개똥철학에 심취하는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신념'만큼은 꼭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런데 매번 실패한다. 나를 속이기까지 해서 그럴듯한 '신념'을 나 자신에게 인셉션해놨다고 해도 내 의식 속에 또 다른 내가 한 뎁스 더 먼저 꿈에 침투하여 나의 모순을 끄집어내 버린다. 이러니 매번 신념을 가지는 것에 실패한다. 이 부분이 꽤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도 수염이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님의 책에서는 '신념을 가진 자를 조심하라'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신념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마지막을 정해두고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죽은 자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 많은 논리를 비약하는 것일 수 있지만 나는 듣자마자 아차 싶었다. 내가 좋아하던 괴테의 문구가 떠오른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



 늘 가슴 설레시길 기원합니다!


 '늘 가슴 설레시길 기원합니다!' 선물 받은 책에 작가가 써주신 문구다. 아무래도 개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지만 성공한 PD와 작가 부부의 삶을 다룬 책 선물의 문구가 '설렘'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니 정말 이 분들은 '설렘'이라는 것을 실천으로 옮긴 분들이다. 다시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발췌하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만약 12개의 문이 있고 1개만 천국으로 가는 문이라고 하자. 나머지 11개는 지옥으로 가는 문이지. 그리고서는 사람들에게 그 문을 열어보라고 하면 결과는 어떨까? 대부분은 문을 아예 열어보지도 않아. 두렵기 때문이지' 

 

 이런 이야기라면 이 책의 작가들은 12개의 문을 아주 덤덤하게 다 열어보고 계신다. 그리고선 또 담담하게 '참 힘들었지' 혹은 '참 좋았지' 혹은 '참 좋은 기억이 남았어'라고 이야기한다. 일상이다. 이분들에게는 아마도 그 문을 여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담담히 풀어낸다. 그것에는 일말의 허세도 없을 것이다. 정말로 인생 그 자체를 풀어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담담했을 것이다. 

 이 핵심에 '설렘'이 있다. 12개의 분을 모두 열 때마다 꽝이 나오더라도 열수 있게 하는 힘은 일상의 설렘이다. 1만 개의 신념보다 하나의 설렘만 살아있다. 신념은 이미 결과가 나와버린 죽은 생각이라면 설렘만큼 긁지 않는 복권같이 살아있는 감정이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다시 작가가 써주신 문구를 보니, 한 문장에도 이런 힘 있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은 이 분들의 직업 때문일까? 혹은 삶이 거짓이 아니기 때문일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두 권의 책을 읽고 일과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알 수 없는 여유가 내 주변을 감돈다. 아침마다 항상 같은 길을 간다. 아니 정확히는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 바로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이다. 매번 같은 길을 가지만 최근 며칠은 나의 생각이 다르다. 길이 느슨해 보이고 양보도 쉽다. 평소 같으면 짜증을 냈을 아이의 돌발 상황에도 '어 그러자'라고 대꾸한다. 여기저기 차선에 끼어들고 말도 안 될 때 유턴을 하는 차를 봐도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오히려 잊고 있던 록음악의 기타 선율에 신경이 집중된다. '아.. 다시 기타나 쳐볼까 싶다.'

 재밌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 도착시간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 아등바등 욕하며 도착한 시간과 여유롭게 즐기며 도착한 시간이 오차 범위 1분 이내이다. 일단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면 길은 예상외로 균일한가 보다.

 결국 덤덤하게 하루를 살아가며 그 속에서 설레며 목적지를 바꿔보는 삶이 좋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괴테선생님께서 그러셨으니 방황은 고정값으로 가져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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