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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9. 2022

<한옥 대목반> 한옥의 기초 만들기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두번째 이야기

  여기 저기서 삽으로 땅을 파내려 가는 소리와 함께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동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두시간이 넘게 땅을 파고 있었다. 호림이를 비롯한 몇몇 젊은 동료들은 입고 있던 두터운 겨울외투를 벗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가로 세로 각각 1미터, 깊이 1미터 짜리 8개의 구덩이를 파냈다. 12평짜리 한옥 맞배집을 짓기 위해서 필요한 기둥이 들어갈 자리이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은 평창의 매서운 겨울을 느끼게 해주었다. 11월 중순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외부 실습장에 나가야만 했다. 그래도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씨여서, 한옥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야외 수업을 진행했다. 한옥학교의 교육과정에는 실제 한옥을 지으면서, 단계별 건축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날 맞배집의 크기에 맞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기초가 들어설 자리를 만들었다. 가로변은 3미터 - 3.6미터 - 3미터로 총 9.6미터 길이이고, 세로변은 4.2미터 크기의 직사각형이었다. 8개의 기둥을 세울 계획이다. 기초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두 가지 중요한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기초의 형태가 될 직사각형 모양의 세로변과 가로변이, 서로 직각이 되어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 모양이 삐뚤어지게 된다. 두 개의 긴 노끈과 각도기를 이용해서, 기둥이 놓여질 지점들을 중심으로 가로변과 세로변이 직각인지 여부를 체크하였다.

  두 번째는 기둥들이 놓여질 위치의 땅 높이가 평평한 지를 체크해야 한다. 가능하면 같은 높이로 기초를 만들어서, 초석과 기둥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레벨 측정기를 이용해서 땅의 높이를 측정한 후, 기둥이 세워질 8개 지점의 높낮이를 표시해놓았다.

 

 기둥이 들어갈 위치와 땅의 높이가 측정된 다음에는, 해당 위치에 가로 세로 깊이 각각 1미터 크기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했다. 이때 눈치 빠른 몇몇 젊은 동료들이 맞배집 터의 안쪽 평평한 자리를 먼저 차지했다. 바깥쪽은 이웃집 밭과 접해 있었는데, 외부 실습장의 땅 높이가 이웃집 밭에 비해서 3~4미터 정도 높은 위치에 있었다. 낭떠러지 형태의 모양으로 땅이 깎여 있어서, 작업하기에 어려움도 있고 위험하기도 하였다. 나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은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바깥쪽 자리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작업을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반전이 일어났다. 바깥쪽에서 파내려 가던 구멍의 흙은 부드러워서, 순조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쪽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작업을 하던 젊은 동료들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쪽 땅은 겨울 추위로 인해서 살짝 얼어있는 데다가, 과거 선배 기수들이 실습하면서 만들어놓은 시멘트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삽이 딱딱한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서 들려왔다. 삽으로 파내기 어려워지자, 끝이 뾰쪽한 곡괭이로 시멘트를 깨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나를 포함해서 바깥쪽에서 작업하던 동료들은, 안쪽에서 낑낑거리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소해 했다. 젊은 친구들이 일을 편하게 하려고 먼저 차지했던 안쪽 자리였는데, 오히려 더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 안쪽 자리에서 땀을 펄펄 흘리면서 곡괭이 질을 하던 호림이를 보면서, 나는 약을 올렸다.

  “아이고, 고소하다~ 욕심 내더니 잘 되었네!”

  동료들이 모두 웃어댔다. 숨을 헐떡거리던 호림이가 곡괭이 질을 멈추더니, 한마디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힘들어 보이기라도 하는 바깥쪽 자리에서 작업할 걸 그랬어요. 열심히 일하는 티라도 내게요~ 하하하”

  맞배집 터의 바깥쪽 부분에서 작업을 먼저 마무리한 나와 동료들이, 호림이를 비롯해서 안쪽 부분에서 낑낑거리며 터 파기를 하고 있던 동료들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겨우 점심시간에 맞추어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날 점심은 콩나물국밥집에서 먹기로 했다. 대목반 10명은 보통 서울대 농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5명씩 두 대의 차량에 나누어서 가곤 했다. 하지만 그날 같은 차에 탄 나와 호림이를 포함한 5명은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다들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했다. 

  사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술을 마시면 안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전에 힘든 작업을 한 탓에, 모두들 ‘술 냄새가 풍기지 않을 정도로 약간만 마시자’는 일탈(?)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콩나물국밥집에 막걸리가 떨어져서, 우리는 주인 아주머니의 허락하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막걸리 2통을 사다 마셨다. 땀흘리고 난 뒤에 마시는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그동안 실내에서 실습을 진행할 때는, 주로 2명이 한 조로 작업을 했다. 같은 조로 일하지 않았던 몇몇 친구들과는, 같이 작업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기초 만들기 작업은 모두가 한 팀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열 명의 동료들끼리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일을 하면서 많이 부대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옥 집을 지을 때는 무거운 나무를 다루기 때문에, 여러 명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이날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무렵에, 사진작가인 용식이가 기울어져 가는 태양 빛을 배경으로 우리가 쉬는 모습을 찍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재미있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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