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pr 23.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농촌에서의 소통

- 귀농 첫해에 겪은 여섯번째 이야기

  ‘감기는 다 나았나요? 일전에 이야기했던 방울토마토의 육묘를 부탁해도 되나요?’

  산채마을의 송사장에게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모종이 많이 필요한 토마토와 고추의 육묘를 외부에 맡겨야 했다. 아직 육묘장이 없기 때문이다. 대추방울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송사장에게 토마토 육묘를 부탁해서, 같이 키우면서 배워보고 싶었다. 물론 필요한 비용은 지불하겠다고 했다.

  답이 오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한달전까지만 해도 스스럼없이 전화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육묘 부탁이 어려우면, 힘들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소통 창구를 닫아버리는가?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여러 차례 술도 마시고 친하게 지냈던 송사장이었다. 내가 6백평의 밭을 임대해서 토마토와 고추 등 몇몇 작물을 재배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던 송사장이었다. 필요하면 나대신 자신이 농사를 짓겠다는 농담까지 곁들여 가면서. 

  토마토 육묘를 부탁하는 것이 부담이 될 지 몰라서, 대표님과 사전에 의논도 했었다. 지난 1월에는 송사장을 만나서 직접 물어봤었다. 확실하게 긍정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가능해 보이는 분위기로 판단했었다. 부탁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2월초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메시지를 보냈었다. 송사장이 형편상 육묘가 어렵다고 하면, 둔내 식물병원에 맡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왜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송사장의 대화 거부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50대 초반의 송사장은 산채마을 주민들 중에서 나와 같은 50대여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내가 가능하면 산채마을에 정착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송사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귀농과정에서 많이 의지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송사장이었기에,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사장과의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농촌에서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빌린 비닐하우스의 주인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원래 비닐하우스를 임대해줄 때는 임차인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아파트를 임대해줄 때, 들어와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빌린 하우스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 

  하우스 정리작업을 하던 와중에, 밭의 일부분이 푹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빌릴 때만해도 없었던 현상이었다. 땅 속에 쓰레기 폐기물을 묻어 놓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주인이 보수 공사를 해서, 임대해줘야 했다. 그런데 주인 어른은 나보고 알아서 처리 하란다. 덕분에 마사토를 사서 깔아주고 퇴비를 다시 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내가 직접 삽과 괭이로 몇시간 동안 힘들게 작업을 해야만 했다. 

  하우스의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우스의 옆면에 설치된 아연패드가 모두 녹슬어서 쓸 수가 없었다. 아연패드로 천장 비닐을 고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녹슨 아연패드를 뜯어내고 새 아연패드를 설치해야만 했다. 그리고 하우스를 빌릴 때 토마토 가지를 지탱해줄 수 있는 철근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 작업에 필요한 파이프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정작 작업 준비를 하려고 보니까, 파이프가 많이 부족했다. 분해한 파이프를 이곳 저곳에 사용해버린 것이다. 결국 쇠 파이프를 사서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작업을 추가로 해야만 했다. 

  농사지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날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고, 추가로 비용 지출도 많이 발생했다. 송사장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이런 문제가 터지니까, 농촌의 인심에 대한 실망감이 생겼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농촌에 대한 포근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내 마음안의 농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다운 이웃이었고, 경사든 애사든 모든 일을 같이 하고 서로를 챙겨주었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훨씬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서 그런가?’

  ‘강원도는 귀농 귀촌 인구가 많아서, 이기주의적인 문화가 생긴 걸까?’

  ‘내가 농촌의 속성을 모르고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인가?’

  ‘모든 농촌 사람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 소수 일부 사람들의 성격 탓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송사장이나 하우스 주인어른의 속내를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소통 방식은 내가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잘 아는 사람들끼리 살아가는 사회구조여서, 소통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과의 소통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농촌사회의 소통방식이나 문화에 대해서 더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마다 다르게 형성되어 있을 문화나 소통방식도 존재할 것 같다. 이것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귀농이나 귀촌할 때 필연적인 숙제중의 하나이다. 


작가의 이전글 <농촌 체험하기 퇴고 글>트랙터와 여자 농사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