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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09.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사회적 농장

- 귀농 첫해에 겪은 서른 일곱번째 이야기

    “옛날 우리 조상들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었다고 하네요. 한 알은 벌레나 새가 먹으라고, 다른 한 알은 이웃과 나눠 먹기 위해, 마지막 한 알은 심은 농부가 먹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서정훈 목사님의 첫번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친환경 농법’과 ‘공동체적인 삶’이라는 지향성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가 평생을 만들어온 ‘일벗 생산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했다. 그는 이 생산공동체가 운영하고 있는 ‘콩세알 두부공장’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목사님이 한 사업체의 사장이라는 것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에 농부의 주름이 여기저기 보였다.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의 성직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공동체를 이끌고 사업을 영위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닌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에 내 고향인 강화도로 들어왔죠. 생태신학을 공부하면서 농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적인 삶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농업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과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갈 집도 직접 지었단다. 재래식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오리 농법이라는 친환경 농사를 짓게 유도하기도 하였다. 공동으로 생산도 하고 가공 판매도 진행하였다. 

  일벗들과 같이 두부 공장을 건축해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뚜막에 큰 무쇠 솟 몇개를 올려놓고, 두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환경으로 재배된 콩을 수매해서 사용하고, 유화제같은 화학첨가제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건강한 두부였다. 시작은 미미하였지만 지금은 연 매출 30억원을 웃도는 기업이 되었다. 50%이상의 직원이 지역 취약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2023년 9월중순 사회적 농장 견학을 간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횡성 여성 농민회 소속인 언니네 텃밭의 사장님 권유였다. 아침 일찍 횡성읍에 있는 종합운동장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용인 화훼단지에 있던 ‘그린피아’라는 농장에 이어, 강화도의 ‘콩세알 두부공장’은 이날의 두번째 행선지였다.

  이동하는 동안 버스안에서는 내가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나누어 먹으면서, 왁자지껄하였다. 보통은 버스안에서는 잠을 자는 경우가 많은데, 함께 동행했던 14명의 언니네 텃밭 회원들은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 지 줄곧 시끄러웠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분들이어서 그런 듯했다. 여성 농민회에 소속되어 있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등 모두들 농부였다. 

  용인 화훼농장에서 2시간 가까이 달린 후에야, 강화도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두부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2층 건물이었는데, 제법 큰 규모였다. 공장 옆에는 자그마한 집 2~3채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무실과 실습실로 쓰이는 곳이었다. 공장 주변에는 논과 밭, 그리고 비닐하우스만이 보였다. 드문 드문 농가 주택이 자리잡고 있었고, 공장 1~2킬로정도 떨어진 곳에 전원주택 10여채로 구성된 단지가 보였다. 일벗 구성원들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우리는 서목사님을 마주보고, 두부공장의 이층에 있는 강의실에 둘러 앉아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면서, 서목사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 펜실베니아 중부에 이탈리아 출신들이 모여 사는 ‘로제토’라는 마을이 있지요. 이곳에서 17년동안 의사로 일하던 분이 이 마을 주민의 사망률을 조사해보니, 다른 곳보다 35%나 낮은 것을 발견하였답니다.”

  그 후 미국의료협회에서 그 원인을 연구한 결과, 그곳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함께 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탈리아 전통에 따라 여러 세대가 서로 소외되는 사람없이 지냈던 것이다. 지난 20여년동안 서목사님은 로제토마을과 같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강화도에 만들어왔다. 지금의 콩세알 두부공장, 일벗 생산공동체 마을, 일벗 감리교회라는 어엿한 마을의 모습을 만들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이다. 

  비록 서목사님의 아버지가 터전을 잡고 있던 고향이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난 20여년동안 벽돌 하나씩 쌓아서, 공장과 살 집을 짓느라 육체적인 고생도 심했을 것이다. 또한 재래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친환경 농법으로 바꾼 것도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자신이 해오던 방식을 좀처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 생산공동체는 2018년에 ‘사회적 농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회적 농장은 농업을 통해서 장애인, 고령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봄, 교육,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벗 생산공동체에서는 정신질환 장애인들이 농작물을 재배하고 포장, 가공하는 ‘콩세알 농사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노인 복지센터인 ‘콩세알 나들이’, 특수교육 대상 어린이와 가족들의 ‘콩세알 가족 농장’, 고령 농업인 및 귀농, 귀촌인의 농작업을 지원하는 ‘콩세알 농두레’ 등을 조직하였다. 

 

  “콩 세알을 심는 농부의 마음처럼 공생과 나눔과 자립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답니다.”

  서목사님이 마지막으로 전해준 말은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내가 농촌에서 살아가면서 지향해야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농촌은 도시와 다르게 공동체적인 삶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일벗 생산공동체’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은 나의 생각을 실현시켜 놓은 곳이기도 했다. 비록 그곳과 같은 큰 규모의 공동체를 구성하지는 못할 지라도, 나의 제2의 인생에서는 공동체적인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수십년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이렇게 큰 규모의 공동체를 만들어온 서목사님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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