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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04. 2022

<스물 세번째 이야기> 아내의 숙제와 보아지 만들기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평창 한옥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강원도로의 귀농 귀촌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보니까 해야 할 일들이 자꾸 생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면, 저녁 9시 전후에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새벽 4시쯤이면 깨어난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시골생활에 맞게 변한 것 같다. 12월 중순 어느 날인가도 새벽에 일찍 깨어났다. 그리고는 누운 채로 횡성, 홍천, 평창 3개 군청의 온라인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귀농 귀촌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이 중 횡성이 다른 군청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고, 귀농 귀촌 관련한 블로그를 개설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당초 경치가 좋다는 홍천으로의 귀농이나 귀촌을 많이 생각했는데, 오늘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횡성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선생님께서 3교시가 될 때까지, 별다른 실습과정을 진행하지 않았다. 아마도 집에 말 못할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동료들은 따뜻한 난로 앞에서 잡담만 주고받았다. 그 사이에 나는 아내가 숙제로 내준 전자레인지 받침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내는 전자레인지 위에 소형 오븐을 얹어서 사용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오븐을 얹을 수 있는 받침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대목반은 주로 원형 통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받침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넓적한 나무 판자를 구할 수 없었다. 소목반에는 의자나 식탁, 책상 등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류의 판자가 많았다. 그렇지만 소목반에서도 돈을 주고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탁하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가 치목하고 버려진 나무들 중에서 제법 괜찮은 것들을 찾아서 다듬었다. 판자 대신 몇 개의 나무를 이어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받침대에 필요한 나무 다듬는 작업을, 거의 다 마무리할 무렵이었다. 선생님이 보아지를 가공하자고 하셨다. 보아지는 기둥과 보가 서로 연결되는 부분을 보강해주는 부자재이다. 보 밑에 보아지를 끼워서, 보나 기둥에 횡력이 작용했을 때 변형을 방지하는 구실을 한다. 


  지난 주에 다듬어놓은 작은 나무 중 하나에 치수를 재서 그려 넣었다. 기둥에 잘 끼워질 수 있도록, 홈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한 기초 그림이었다. 그리고 보아지가 집의 바깥쪽으로 나오는 부분은, 사선으로 깎아주는 등 미적 감각을 위해 약간의 가공을 하게 된다. 보아지 가공은 간단하였기 때문에, 1시간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여전히 보아지를 만드는 동안, 나는 전자레인지 받침대를 만들어 나갔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자레인지 받침대를 완성하였다. 사진을 찍어서 아내한테 보냈더니 너무 좋아했다. 아마도 내가 나무로 이런 것을 만드는 작업을 처음하였기 떄문일 것이다. 기뻐해주는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서, 다시 한번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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