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우승 비법>프로야구단 입사를 위한 고군분투기

- 인터넷신문에 기고하려고 준비했던 열네번째 이야기

by 유진

영상을 찍고 있던 정다현매니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유리씨 아버지의 사연 때문이다.

정유리씨는 1991년 8월 5일 당시 11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다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어느 날 혼자 안산으로 왔다. 그 동안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딸을 보살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많았다. 그런 딸이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혼자 올라왔는데,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런데 기쁨도 잠시, 딸이 사라졌다. 안산으로 올라온 지 5일만에 납치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국을 헤매 다니고 있단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정매니저는, 아버지의 품에 딸이 안기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홈경기에서 아버지의 사연을 감동적으로 전달할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 인터뷰 영상은 몇 주 뒤 K구단 홈경기 이벤트인 ‘희망더하기, 실종아동 찾기’에서 사용될 예정이었다.

이벤트를 같이 준비하던 선배 매니저들과 정매니저는 이미 여러 차례 토의를 진행했었다. 사실 정다현매니저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홈경기 시작 전에 진행되는 이벤트를 혼자 만들어가는 일이 아직 벅찼다. 같이 준비한 오성태, 안성철 선배 매니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6년 6월 G구단과의 홈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사전 이벤트로 ‘희망더하기, 실종아동 찾기’ 행사가 열렸다. 평소 선수 자신의 이름이 새겨졌던 유니폼에는, 정유리를 비롯한 실종아동들의 이름이 대신 박혀있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하는 TV나 언론에 실종아동의 이름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은 SNS를 통해서, 실종아동이 빨리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손 글씨 릴레이 캠페인’을 펼쳤다.

당시 K구단의 ‘희망더하기, 실종아동 찾기’ 이벤트는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다른 프로야구단들도 동참하는 이벤트를 연달아 열었고, 대한체육회에 소속되어 있는 여러 체육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과 영화배우들, 그리고 많은 프로야구 관계자들도 ‘손 글씨 릴레이 캠페인’에 동참해주었다.

정다현매니저는 가슴이 뿌듯했다. ‘스포츠가 이렇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구나.’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는 꼭 프로야구단에 입사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다.


K구단의 드림 마케터는 2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야구장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진행하였다. 경기장 좌석 안내, 티켓 검표 등등.. 그리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이벤트나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제안하였다.

정매니저는 2015년 대학교 2학년때부터 K구단의 ‘드림 마케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해서 K구단의 찐 팬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드림 마케터로 활동하게 되었다. 드림 마케터 활동을 하는 날이면,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집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그것도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K구단의 홈 구장으로 와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더군다나 평일 홈경기가 끝나면 밤 10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몸이 천근 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프런트 선배 매니저들과 같이 이벤트나 마케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의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 해에 인턴과정에 지원하였다. 뛰어난 활동을 한 드림 마케터들에게는, 인턴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K구단의 인턴과정은 다른 프로야구단에 비해서 프로그램이 빡빡하기로 유명했다. ‘스포츠구단의 프런트 사관학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힘들지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K구단의 인턴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다른 프로야구단이나 프로축구단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K구단에서는 인턴이 낸 아이디어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다. 스스로 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적은 정매니저에게는,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고 해도 벅차게 다가왔다. 준비하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까 선배 매니저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구단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프로야구단에 입사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과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다른데.’ 프로젝트가 진척되지 않아서 선배들의 지적을 받을 때면, 이런 고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1년동안의 인턴생활을 하는 동안, 몇 차례인가 슬럼프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배 매니저들이 소주를 따라주면서 고민을 들어주었다. K구단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이어져 오다 보니까, 인턴 출신 선배 매니저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매니저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희망더하기, 실종아동 찾기’ 이벤트는 정매니저를 슬럼프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이벤트는 오성태 선배 매니저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프로야구단 존재 이유중의 하나인 사회적 기여라는 측면에서,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다.

오성태 선배 매니저를 포함해서 K구단의 어느 누구도 실종아동과 관련된 이벤트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초록어린이재단 등 실종아동 찾기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던 단체들을 찾아가서, 이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관련 단체들에게 K구단의 프로그램을 설명한 끝에, 대상 가족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들은 실종아동의 사연이나 이름이 이벤트에 사용되는 것을 꺼려했다. 실종아동을 찾지도 못하면서, 괜히 홍보용 이벤트로만 이용될 것이라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오성태 선배 매니저와 정매니저는 이들에게, K구단의 진정성을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4명의 실종 아동을 대상으로 ‘희망더하기, 실종아동 찾기’ 첫번째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희망더하기 이벤트는 2016년에만 3차례에 걸쳐 진행되었고, 그 후 수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정매니저에게는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프로야구단에 입사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 목표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K구단에서의 인턴생활은 프로야구단 입사라는 기쁨으로 바로 이어지지 못했다. 보통 프로야구단의 프런트 조직은 50~60명정도로 크지 않았다. 그래서 빈 자리가 생겨야,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매니저가 희망하던 K구단에서는, 신입사원을 위한 빈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지방의 I구단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는 I구단의 홍보팀에서 SNS 등 온라인 홍보 업무를 맡았다. 선수나 구단의 동향을 수시로 SNS에 올리고, 팬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이것을 구단의 업무에 반영하는 일이었다. 팬들과 소통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기자들과 음주가 동반된 저녁식사를 밤늦게까지 해야 할 때면, 너무 힘들었다. 전날 잠드는 시간과 관련 없이, 아침 5시쯤 일어나서 신문기사 스크랩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무 연고도 없는 I구단에는 친구도 없었다. 외롭고 우울한 시기였다.


그러던 차에 2020년 K구단에서 입사를 제안 받게 되었다. K구단에서는 인턴생활에 대한 평가가 좋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입사의 기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어엿한 K구단의 정식직원이 되어서, 후배 인턴사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5년여에 걸친 K구단 입사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현재 K구단에서 일하고 있는 정다현매니저는, 프로 스포츠단에 들어오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단다.

“팬심으로 본 야구는 취미생활이고, 프런트 구성원이 만들어가야 하는 야구는 직업생활이다. 단지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프런트 생활을 잘 할 수 없다. 프런트 구성원으로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갈 것이고, 어떤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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