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신문에 기고하기 위해 준비했던 열여섯번째 이야기
첫번째 숙제가 어느 정도 끝나갈 때, 구단주가 다시 나를 찾았다. 2016시즌이 막 시작된 무렵이었다.
“이제 시즌이 시작되어서 팬들이 야구장을 찾기 시작했죠? 경기가 있을 때는 경기에 집중하지 말고, 팬들에 집중해보세요. 경기 중에 야구장의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면서, 팬들을 관찰해 보세요.”
구단주는 내가 야구 경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전문지식과, 구단의 업무를 어느 정도 습득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제는 프로야구단의 가장 중요한 서비스 수요자인 팬들을 이해하는 순서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팬들이 경기의 어떤 장면에서, 그리고 야구장의 어떤 서비스에 대해서, 무슨 반응을 보이는 지 관찰해보라는 숙제였다.
나와 같이 프로야구단의 초보 사장들은 대개 임원실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야구 경기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지만, 자기 팀이 승리하기를 응원하는 염원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구단주의 숙제를 받은 그날 이후, 나는 경기 중에 야구장을 최소한 2회이상 둘러보았다. 2,500석이 넘는 야구장의 관중석뿐 아니라 길게 뻗은 복도와 야구장 주변까지 둘러보려면,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냥 둘러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기도 하였다.
K구단 야구장은 팬층의 특색에 맞게 좌석 배치가 이뤄져 있었다. 가족들이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바비큐존, 직장 동료들끼리 파티를 겸할 수 있는 파티존, 열성팬들이 응원에 집중할 수 있는 응원존, 친구나 연인들이 치맥과 함께 야구를 구경할 수 있는 홈런 커플존 등등… 좌석별로 팬층이 다르다 보니까, 야구를 즐기는 모습도 판이하였다.
바비큐존에는 어린 아이들이 좌석 주변에서 뛰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파티존에서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느라, 경기보다는 동료들과 대화에 열중하는 모습이 흔하게 눈에 띈다. 응원석에서는 팬들이 경기내내 일어서서, 응원 율동과 함께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반면 홈런 커플존은 같이 온 연인이나 친구들과 조용하게 담소를 나누면서, 야구를 즐긴다. 그러다가 홈런 볼이 날아오기라도 하면, 가져온 야구 글러브를 끼고 공을 잡아보려고 경쟁을 한다.
사장이 경기중에 야구장을 돌아다니니까, 마케팅을 담당하는 프런트 구성원들도 경기장을 돌면서 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경기중에 서로 만나게 되면, 팬들이 부족하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야구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바비큐존 주변에는 아이들이 야구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과 함께, 다양한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시종일관 일어서서 응원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응원석은,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응원 단상도 넓혔다. 야구장 인근 직장인들이 파티존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패키지 상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의외로 혼자 조용하게 야구를 즐기는 광팬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좌석도 설치하였다.
매년 수십억원의 시설투자비가 소요되었지만, 팬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것을 함께 만들어간 프런트 구성원들의 만족도도, 구단에 대한 자긍심도 덩달아 올라갔다. 팬들이 어떤 story에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지 알아가는 과정이 곧, 프로 스포츠단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중에서 Sportainment를 제일 잘하는 구단으로 평가되어, 국무총리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