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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5. 2022

<한옥 대목반> 서까래의 과학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 버전: 네번째 이야기

그동안 한옥학교 생활에 대해 써왔던 글들을, 퇴고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연재 형태로 올려본다. 몇번의 퇴고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이 나올 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를 바라면서 써 내려가본다. 


  날씨가 추운데도 정원이의 콧등에서 땀이 한 방울씩 흘러 내렸다. 이곳 평창의 외부 온도는 영하 15도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실내 실습실에도 화목난로와 석유난로가 놓여 있었지만, 넓은 공간을 덥히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정원이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디귿자 모양의 대패로 실습실 바닥에 놓인 소나무 껍질을 벗겨냈다. 한옥 대목반 동료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정원이는, 무슨 일이든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한다. 옆에서 같이 껍질을 벗기던 나는 정원이에게 쉬어가면서 하라고 소리쳤다. 정원이의 허리가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원이는 이미 시작한 소나무의 껍질은 마저 벗기고 싶어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무는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서까래로 사용할 소나무는 굵지 않고 껍질도 얇아서, 껍질 벗기는 작업에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2주동안 손 대패, 전기 대패, 홈 대패, 전동 톱 등의 도구 사용법을 익혔다. 기계 기구들이 제법 손에 익어가자, 나무를 치목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틈만 나면 서까래용 부자재를 만들었다.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12평짜리 맞배집과 사모정에 77개나 되는 서까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3주차 월요일 하루 일과가 시작되자마자, 선생님은 지게차에 서까래용 소나무를 몽땅 실어와서 실습실 문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옆에 서 있던 정원이에게 같이 들어서 실습실 안으로 옮겨 놓자고 했다. 서까래용 소나무는 그다지 굵지 않기 때문에, 어른 두 사람이 너끈히 들어올릴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도 소나무를 하나 둘씩 실습실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동료들은 소나무 하나에 한 두명씩 달라붙어서, 디귿자용 대패로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자, 송진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소나무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듯, 송진들이 스며 나왔다. 마치 소나무가 자신의 껍질이 벗겨져 나가자,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나무 송진은 티펜틴과 키올이라는 화학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살균성이 강하다. 그래서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거나 몸에 상처를 입으면, 소나무는 송진을 내보낸다. 상처 난 부위에서 병충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송진이 옷이나 사람의 몸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고 다른 먼지들이 달라붙어서, 몸이나 옷을 더럽히곤 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 대한, 소나무의 작은 보복이다. 

  

  나에게는 조금 생소했지만, 정원이는 클린 룸을 제작하는 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회사뿐 아니라 약을 만드는 제약사 등 먼지가 없는 환경이 요구되는 회사들에게, 클린 룸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회사였다. 공대를 나온 그에게는 익숙한 분야였다. 하지만 ‘제조’와 ‘납품’이라는 특성상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을’의 자리에서 일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느꼈단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으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목수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옥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한번 일을 시작하면, 쉬지 않고 마무리까지 끝낼 정도로 열심히 했다. 서까래 치목도 마찬가지였다. 껍질 벗기는 작업이 마무리되자 마자, 원목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대목반에서는 지름이 4치짜리(대략 12센티미터) 서까래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름이 4치인 동그라미 모양의 판자를 원목 양쪽 끝 면에 대고, 판자의 모양대로 밑그림을 그려 넣는다. 서까래용 원목이 직선으로 뻗어 있으면, 원목 양끝 면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그려주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나무들은 약간씩 휘어져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휘어진 부분이 최소화된 형태의 서까래로 깎아내야 하기 때문에, 밑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내 눈에 들어온 정원이의 원목은, 많이 휘어져 있어서 치목하기 어려워 보였다. 선생님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그가 밑그림 그리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끝 면의 한 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려고 하자, 선생님이 나섰다.

  “이렇게 많이 휘어져 있는 원목을 치목할 때는, 불룩한 등 부분이 많이 포함되도록 동그라미를 그려야 해. 그래야 반대편의 움푹 들어간 부분이 덜 들어가서, 직선에 가깝게 깎을 수 있겠지.” 

  동그라미로 밑그림을 그리고 난 뒤, 전동 톱과 홈 대패로 옹이를 비롯한 울퉁불퉁한 부분을 먼저 깎아낸다. 그리고 소나무 양쪽 끝 면에 그려진 동그라미의 선들이 이어진 가상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선보다 바깥부분을 홈 대패를 이용해서 깎아낸다. 홈 대패는 나무의 많은 부분을 짧은 시간에 깎아낼 때 활용된다. 홈 대패의 날은 좁으면서 힘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에 나무를 깊이 깎아낼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단번에 푹 파이도록 깎아내는 홈 대패가 부담스러웠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동그라미 선의 안쪽부분까지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정원이도 조심스럽게 홈 대패질을 해나갔다. 대패질을 한 두번 할 때마다, 원목의 어느 부분이 많이 튀어 나왔는 지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그리곤 튀어나온 부분이 발견되면 다시 대패질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몇 시간째 쉬지 않고 일하는 그의 손을 잡아 끌고, 난로 곁으로 데려갔다. 허리를 굽히고 일해야만 하는 치목 작업이 얼마나 힘든 지 알기 때문에, 휴식을 강권한 것이다. 

  “너 허리가 안 좋지 않니? 1시간 정도 작업하면 쉬는 버릇을 들여. 그렇지 않으면 허리에 무리가 많이 오게 돼.”

  내가 핀잔을 주자, 정원이는 웃음 띤 얼굴로 난로에 손을 쬐면서 대답했다. 

  “제가 제일 어려서 그런지, 작업하고 있으면 이 사람 저 사람이 훈수를 많이 둬요. 그러다 보니까 작업 속도가 자꾸 느려져서, 오히려 서두르게 되요. 하하하”

  큰 눈을 깜박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착한 친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서, 이제는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무슨 일을 할 지 고민이지만, 한옥학교 다니는 동안 한옥 목수가 나에게 적합한 지 충분히 테스트 해보고 싶어요.” 

  그는 작년에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으면서, 온전히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단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있었지만 자신이 장남으로서 어머니를 곁에서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쉬던 그는 다시 작업을 하려고 목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이제 다듬는 작업만 하면 되니까, 마무리 할래요. 그리고 나서 쉬는 것이 마음 편해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자신의 작업대로 돌아갔다. 홈 대패로 어느 정도 원목을 동그라미 모양으로 깎아냈기 때문에, 이제 전기대패와 손 대패를 이용해서 표면을 매끈매끈하게 만드는 작업만 하면 되었다. 특히 손 대패 날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움푹 패여 있는 곳이 있어서, 날이 작은 남경대패나 배 부분이 튀어나온 배 대패로 깎아냈다. 정원이가 원목을 돌려가면서 다듬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것 같았다. 



  서까래를 다듬을 때는, 중간부분을 양끝보다 약간 불룩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서까래 중간지점에 올라가는 개판, 기와 등 부재들의 무게를 잘 지탱할 수 있다. 그리고 서까래는 소나무의 뿌리부분이 땅쪽을 향하도록 지붕에 설치한다. 서까래 위에 놓이는 각종 부재들의 하중이, 지붕꼭대기가 아닌 지상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줄기보다는 소나무의 뿌리부분이 이 무게를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서까래를 치목하는 것에 익숙해진 뒤에는, 한 시간 정도면 서까래 하나를 치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반나절이나 걸렸다. 특히 꼼꼼하게 일을 하는 정원이는 다른 동료들보다 시간이 훨씬 더 필요했다. 긴 시간 정성 들여서 깎은 서까래에 애정이 생긴 것일까? 정원이는 매끈한 모습으로 완성된 서까래를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이렇게 깎여진 나무 하나 하나가 조립되어서, 근사한 한옥집을 만들 수 있다고 상상하면 너무 좋단다. 특히 손 대패의 ‘삭삭’하는 소리와 함께 벗겨진 나무 껍질이 말려 올려질 때에는, 대패질하는 손맛이 느껴진다고 했다. 잘 갈아진 손 대패는 나무 표면을 오가면서 부드럽게 다듬어 주기 때문에, 기분까지 좋아진다는 것이다. 낚시꾼이 고기를 낚아 올릴 때마다 맛보는 손맛이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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