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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11. 2022

<농촌 체험하기>농촌의 진화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아홉번째 이야기

  왕복 이차선 지방도로를 벗어나서,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마을 도로를 타고 십 여분을 달렸다. 마을 도로 여기 저기에 전원주택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푯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아늑하고 살기 좋은 산속 마을이었다. 

  야트막한 야산의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에, 멋들어진 한옥집들이 여러 채 나타났다. 지은 지 얼마 안된 듯, 깔끔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한옥집 앞에서 50대로 보이는 어느 여자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를 안내해서 같이 온 산채마을 팀장님과는 친한 사이 같았다. 서로 오랜만에 만난 듯이 큰 소리로 반갑다고 인사를 하면서 얼싸 안았다. 가끔 만나서 술 한잔씩 하는 사이란다.

  주차를 하고 한옥집을 구경하고 있으려니까, 좀 전에 인사를 나눈 부인의 남편 분이 나타났다.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인데도, 근처의 한옥 네 채를 모두 혼자 지었단다. 무거운 원목을 포크레인과 같은 장비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 장비를 쓴다고 해도, 무거운 원목을 가공하고 조립하는 작업을 혼자 하기는 힘든 일이다. 옆에서 부인이 도와줬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힘들게 한옥을 지었으리라 상상이 된다.

  한옥 외벽은 모두 비싼 황토 벽돌로 감쌌고, 내부의 서까래들도 모두 비슷한 두께로 치목을 정성스럽게 하였다. 그리고 창문도 전통 한옥과 같은 창살을 만들어서 한지를 발라 주었다. 한옥 목수 일을 한 경험이 없지만, 한채 한채 지으면서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한옥을 짓는 일 머리와 일 근육이 타고 나신 분 같았다. 

  이렇게 한옥 집을 네 채 짓고서, 이중 한 집은 부부가 살고 있는 살림집으로 쓰고 나머지는 펜션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코로나로 인해서 최근에는 손님이 없지만, 이전에는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20여년전에 귀농을 했을 때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집만 한 채 있었는데, 이제는 한옥집 네 채를 가진 부농이다.

  부부가 젊었을 때는 자식들을 키우느라고 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하는 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밭 농사는 조금만 하고 있단다. 대신 한옥 펜션 사업과 함께 60마리 정도의 한우를 키우고 있었다. 한우 축사의 지붕에는 태양광을 설치하고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여,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농촌에서 연령대에 맞는 일을 하면서, 수입을 창출해가는 현명한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옥 펜션 사업과 한우를 키우는 선도농가를 방문한 우리들은, 근처의 다른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멋진 한옥을 감상한 탓인가! 뭔가 또 다른 멋있는 농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근처의 다른 마을 길로 접어들었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도로 양쪽에 넓은 밭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감자 밭, 양상추 밭, 브로컬리 밭 등등… 5분쯤 달렸을까? 이윽고 아담한 농가주택이 나타났고, 집 뒤로는 비닐하우스가 여러 동 세워져 있었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집 앞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늘 우리들에게 설명을 해줄 아들이 잠깐 외출을 했는데, 돌아올 때까지 비닐하우스와 밭을 구경하란다. 노지에는 브로컬리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대부분 사전 계약을 통해서 판매하기로 되어 있단다.

  브로컬리 밭을 구경하고 있으려니까, 잘 생긴 젊은 청년이 걸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여자 동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맞아주었다. 어느 방송에서 농촌생활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때 주인공으로 나온 잘 생긴 농부라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을 만난 듯했다. 박수를 치면서 맞아주는 우리를 보면서, 젊은 농부는 멋쩍은 듯이 웃어 보였다. (사실 그의 나이는 사십에 가까웠다.)

  젊은 농부는 우리를 비닐 하우스로 안내했다. 지금은 양상추가 한참 자라고 있었는데, 양상추를 수확하고 나면 6월에 토마토를 심을 예정이란다. 비닐 하우스 한쪽에는 나중에 정식할 토마토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토마토 농사를 여러 해 지었는 지, 비닐 하우스에는 토마토 견인 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 횡성의 주산물 중의 하나가 토마토이다. 고랭지에서 자란 토마토는 단단하면서도 맛이 좋아서, 인기가 좋다. 횡성군에서도 정책적으로 토마토 농가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었다. 평당 10만원 전후가 소요되는 비닐 하우스 설치비의 50% 정도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귀농을 할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주로 생산하는 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지자체의 지원도 많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해당 농작물에 대한 경험이 많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횡성에서는 토마토, 감자, 더덕 등이 그에 해당되는 농산물이다. 

  고랭지 기후라는 특성과 잘 어울러진 횡성군의 지원제도 때문에, 이곳 삽교마을에서는 주로 토마토, 감자, 더덕, 양상추, 브로컬리 등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았다. 기후 여건에 잘 맞는 농산물이다 보니까, 시장의 수요도 많아서 매출 규모도 제법 컸다. 이곳 젊은 농부도 자연이 만들어주는 환경과 지자체의 적절한 보조금 정책을 잘 활용한 사례로 꼽을 수 있었다.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농촌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조 때부터 논농사를 짓던 곳이기 때문에 벼를 심었고, 밭에는 각종 채소를 재배했다. 목돈이 필요하면 키우던 돼지나 소를 팔았다. 쌀 가격이 어떻게 변할 지, 한우나 돼지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 지, 어떤 농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해에는 적당한 강수량과 일조량으로 꽤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해에는 가뭄이 들거나 지나치게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인건비도 건지기 힘든 해도 있었다. 그저 외적인 조건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농촌이었다. 

  지금 농촌의 모습은 내가 어렸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농업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결정하고 있었다. 어떤 농작물을 얼마나 심을 것인지, 그리고 언제 수확하는 것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지. 농업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지만, 이것을 통해서 농촌이 진화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농촌의 구성원들이 그만큼 진화한 것이리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활용하여 펜션사업을 하는 농부, 그리고 고랭지 기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하고 지자체의 지원제도를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농부의 모습에서, 이곳 횡성 농촌이 발전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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