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안 돌아감
내가 장르 문학에서 좋아하는 건 공포와 추리다. 미스터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두 장르는 공통된 특성을 가진다. 공포의 미스터리는 귀신과 괴물이 그 대상이고 소설 속 주체는 그것을 경험한다. 추리의 미스터리는 주로 범죄가 그 대상이고 소설 속 주체는 그것을 풀어간다. 공포는 '경험'이 중요하므로 그 대상이 등장하기까지의 설계에 공을 들인다. 반면에 추리는 '풀이'가 중요하므로 그 대상이 등장한 후의 전개에 공을 들인다. 그러니까 대상의 등장을 기점으로 했을 때 그 이전이 주된 사건이면 공포고 그 이후가 주된 사건이면 추리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야기 속 인물이 미지의 것과 대면하는 점은 두 장르 모두의 속성이므로 그런 미스터리적인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그 둘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불가사의의 침투로 평범한 일상이 뒤틀리고(공포) 그 균열 속에 숨어 있던 비밀을 파헤칠(추리) 때 세상 이보다 재밌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혼자 방에서 어렵고 무서운 것 보는 걸 좋아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전집 <우울과 몽상>을 아주 오래전에 호기심과 스릴감으로 봤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어느 단편의 주인공이 밤바다에서, 뭍으로 다가오는 기이한 생명체를 목격하는데 그 부분의 심상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공포와 추리를 읽을 때 집 밖에 비가 내리면 그 재미가 배가되므로 나는 비 오는 날을 특히 좋아한다. 집에서 일하거나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라면 더욱 좋다. 평일, 우천, 집에 있는 내게 공포와 추리가 들려 있다면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결국 그래서 고른 책인데 매우 실망스러웠다. 제목만 그럴싸하지 내용은 어린이나 무서워할 법한 동화 수준에 불과하다. 저자가 여러 나라의 괴담을 수집한 노력은 가상하나 설화라는 게 원래 그렇듯이 디테일이 부족하고 교훈적 작용에 치우쳐 있다. 공포에 대한 내 기준이 까다롭지 않은데도 솔직히 무서웠던 게 하나도 없다. 열여섯 개의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건 마지막 편인 <괴물들>인데 이마저도 정복자와 이민자의 갈등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거지 다른 얘기들보다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책의 맨 끝에 있는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저자가 남미 문학에서 꽤나 알아주는 사람인데 내 식견이 부족해서 그런가 여기 있는 모든 이야기를 합쳐도 우리나라 화장실 귀신보다 안 무섭고 이런 유의 책을 낸 저자의 자질까지 의심스럽다. 이 책은 각국의 전설과 민담을 모아서 테마에 맞게 편집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학술적 가치는 있을 수 있겠다는 말.
그래도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 한 개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저자가 해설을 달았다는 것. 그 이야기를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했는지 밝히고 그 속에 담긴 주제 의식과 시대 상황을 관련지어 풀이한다. 독자로서 나는 그런 시도가 꽤 맘에 들었다. 유치할 수 있는 설화들에, 예부터 전해져 온 얘기니까 당연히 유치할 수 있다는 타당성을 부여한 느낌. 각 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저자의 해설이 기다려졌다. 이 이야기는 또 어떤 식으로 변호를 할까.
확실히,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공포는 동양이 서양보다 나은 것 같다. 이 책에 서양의 귀신과 괴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공포'보다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정체 모를 음산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그들은 꼭 평범한 인간인 주인공과 대결을 벌인다. 동양에서는 귀신이 좀처럼 인간과 결투하는 경우가 없다. 인간이 귀신을 무서워하고 도망치다 변을 당하는 게 주된 흐름이다. 근데 이 책의 인간들은 마법까지 배워서 귀신과 대결하고 종종 승리하기까지 한다. 이러니 서양 공포가 무서울 리 없다.
역시 공포의 정답은, 독자가 계속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