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일기

어느 노 언론인의 작문노트

글은 그 사람이다

by 심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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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서점에서 발견하고 나중에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속에 담아 둔 책. 글쓰기의 노정에서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잘못하고 있는 건 없는지 점검하고 싶어서 이 책을 꾸역꾸역 떠올렸고 결국 집어 들었다. '일본 노기자 문장 책'이라고 검색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글의 문제점은 차분하지 못하다는, 바꿔 말하면 오만한 목소리가 배어 있다는 것이었고 글 쓰는 태도의 문제점은 성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문제도 많지만 그 둘이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난관이었다. 뭘 좀 안다는 듯이 허세 부린 문장은 추후에 날 부끄럽게 했고 꾸준히 쓰지 못한 습관은 글로써 이룬 게 없는 초라한 현실이 되었다. 나는 소박한 글쟁이라도 되고 싶은데 그게 요원하기만 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진 문제점을 따끔히 지적받았다. 이런 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쓴다' '허세를 버린다' '자랑하지 않는다' '무심함을 추구한다' '혼신으로 뛰어든다' 책 읽는 내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 낯이 뜨거웠다. 문장 대가들의 예가 틈틈이 나오는데 나는 그들보다 훨씬 못한 존재인데 그동안 뭐가 잘났다고 자만의 목소리를 내었는지 후회되었다. 그리고 매일 쓰지도 않으면서 유의미한 결과를 바란 자신이 한심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우물 안 개구리. 이 책이 깨닫게 해준 나의 모습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여행을 하느라 그동안 글을 못 쓰면 정확히 그 기간만큼 자신이 퇴보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글 쓰는 것은 피아노 치는 것과 같아서 매일 연습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설명.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매일 책상에 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말도 나온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그의 건조하고 무심한 문체에 반한 적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허세로 쓴 글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것, 느낀 것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쓴 것이 가장 좋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왜 그의 글에서 고수의 차분함이 느껴졌는지 알 것 같았다.

내게 가장 득이 됐고 인상 깊은 구절은, 자랑하지 말고 광대가 되어 자신의 흉허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하수는 자랑을 하고, 중수는 결점을 드러내고, 고수는 자랑하는 척하며 결점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글쓰기에서 중간이라도 가고 싶으면 자랑만큼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근데 누구라도 글을 쓰겠다 마음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과시욕이 치솟는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고 싶고, 어려운 한자어를 써서 '쉽지 않음'을 드러내고, 미사여구를 동원해 문장을 꾸민다. 이 책의 저자는 잘난 척의 노림수가 느껴지는 글은 절대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특기인 사람은 능력을 과시하는 문장을 쓰라고 일갈한다.

"아니, 그거야 죽을 둥 살 둥 쓰는 거지." 우치다 핫켄이라는 작가에게 어떻게 그런 명문을 쓸 수 있는지 묻자 그렇게 답했다고 한다. 쉽게 쓴 것 같은 문장이 실은 '죽을 둥 살 둥'의 산물이었던 것. 이는 내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줘서 정말 뜻깊은 수확이었다. 글을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쓰면 괜찮게 보이는 것 같아도 완성도 측면에서 흡족함이 들지 않았는데, 나는 그게 스스로의 착각이어서 공들인다고 하여 흡족함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 쪽이었는데, 그러니까 대충 임한 마음 때문에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열심히 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대충 써서 완성도가 떨어졌던 것이고 '죽을 둥 살 둥' 써야 흡족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마음과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열심히, 매일,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랑하지 않고 진솔하게 쓰는 것도 추가.


'현장 감각'이 있는 글의 예시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속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그녀가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이번에 처음 느꼈다. 여행을 다닌 경험 덕분인지 구체적인 단어로 이국의 풍경을 묘사하는데 그곳에 가보지 않은 내가 글만으로도 실제 현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집의 책장을 살펴보니 그녀의 작품 『도쿄 타워』 『웨하스 의자』가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읽을 예정이다. 내 글에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진단했던 참이었다.


글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로 해준 고마운 책. 결국 글이란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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