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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Jul 22. 2022

한류의 위대한 탄생

한류의 "위대한" 탄생




8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휩쓸었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대한민국 대중문화 사상 최초로 ‘팬덤’ ‘오빠부대’를 탄생시킨 조용필을 아시아의 대스타로 자리매김해보려는 여러 ‘국책적’ 시도들이 있었던 것을 필자는 기억한다. 1981년 난데없이 여의도 광장에서 펼쳐지던 ‘국풍 81’이라는 축제가 지금도 생각나고, 전국 팔도의 풍물이 펼쳐지며, 가요제도 펼쳐지던 시절이 기억난다. 국풍 81축제는 KBS에서 기획되어 2회 정도 유지, 방송되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때 이용, 김범룡이라는 가수가 발굴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80년대는 가왕 조용필의 독점 시대였다. 필자는 당시 중학교 재학중이었으므로 정확히 최초의 오빠부대 세대에 속했고, 조용필 등장 당시의 그 열기와 충격을 생생히 기억한다. 전무후무했던 조용필 혼자만의 한국 가요계 평정과 독점 (sweep stakes)은 공교롭게도 제5공화국 탄생과 종말, 명멸과 그 시기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은 흔히들 군사독재정권이라고 폄하되는데, 살펴보면 매우 유능한 관료들이 효율적이고 스피디하게 국정을 운영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적 초안정기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근대사를 되짚어보아도 전두환 정권초기의 관료들- 아웅산에서 테러로 순직하신-이 감히 대한민국 최강 드림팀이었고, 그 전도 그 후에도 그 같은 최강의 드림팀 관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관료들의 힘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고, 그 시스템에 결함이 있을 시 보완, 수정해나가는 단계이며 글로벌화와 스피디화에 맞추어, 민간으로의 권력이양이 화두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발전이 있기 까지 초석을 놓으시다 불의의 테러로 산화하신 그 분들을 이책의 한 켠에서나마 기념해본다. 


전두환 정권은- 한 세대 후의 문화적 번영의 ‘위대한 싹’이 될 -1980년대 당시의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던 경제적 번영이란 열매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싶었고, 군부독재라는 내부 반대세력의 시선을 돌릴 겸, 우연치않게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그 욕망을 군인정신으로 용감하게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좀 벅차지만,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그야말로 국가적 총력을 다해 뛰었다.


그 일환으로 국책으로 대중문화 발전을 꾀하는 이벤트들을 많이 기획 실행하기도 하였다. 국영 방송사를 동원해서 각종 국제 가요제, 국제 축제 등을 만들고 놓고, 늘 말미는 당시 대스타였던 조용필로 마무리하고 조용필의 해외 진출을 암암리에 또는 노골적으로 밀어주던 그런 시도들이 있었다. 조용필이라는 당대의 천재 뮤지션을 아시아의 스타로 띄워보려는 국가주의 전체주의 정권의 문화 마케팅적 시도였다. 전두환 정권하 정략적 국책문화 정책의 결과는 실패였다. 조용필이라는 걸출한 음악인의 재능을 부끄럽게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끝 마감새 및 매무새- 의상, 매너, 화장, 춤, 마케팅 능력 등등으로 그는 아시아 시장에서조차 먹혀 들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 한국 대중문화의 토양은 빈약했고, 국제화는 언감생심, 국내 문화산업 시스템도, 생태계도 갖추어 있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문화 지평에서 당시 주류였고 선망이었고 대세였던 것은 일본과 홍콩 문화였다. 일본의 J-Pop, 애니메이션, 홍콩의 느와르 영화 등 서구적이고 세련된 대중문화는 젊은 세대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정부가 해외 유입 문화에 대항, 우리 대중문화를 띄워보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당시 10대이던 내 눈에 보아도 ‘조용필 오빠’는 영원히 내려오지 않을 제왕처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는 있었지만, 완벽히 내수용이었다. 당장 아시아 무대로만 나가도 그는 세련되기보다는 ‘미안하다, 촌스럽다’였다. 결국 제 24회 서울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가수는 조용필 오빠가 아니었다. 본인이 먼저 올림픽 노래 가창을 의뢰받았다고 주장하는 트로트 가수 김연자도 아니었다. 이태리 작곡가 주지아로가 만든 명곡, ‘손에 손잡고’를 불러 전세계적 대히트를 친, 그 전까지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던 혼성4인 그룹 ‘코리아나’였다. 그래서 ‘한류의 위대한 탄생’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인 반어법이다. 한류의 시작은 미약하고,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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