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몇 주전 아이 발 등 위로 빨간색 수포가 보였습니다. 순간 당황은 했지만 보육교사 경력 덕분인지 그저 침착하게 병원 예약부터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수족구가 맞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분들께 문자를 남겼습니다. 유치원 선생님부터 수영 선생님, 교회 유치부 선생님에게까지 말이죠.(주말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6살 아이와 7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다행히 초기 발견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동안 길러온 면역력 덕분인지 아이는 생각보다 잘 먹고 잘 지냈습니다. 경과가 좋았고 그렇게 이틀 후 완치 판정까지 받으며 단체생활도 가능하다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7일을 다 채웠습니다.
회복의 시간이 흘러 다시 유치원에 등원하게 되었을 때쯤 이틀 뒤 또다시 고열이 났습니다. 이번엔 밤을 새워도 열이 오르고 또 올라 '이 또한 범상치 않구나' 싶어 병원에 갔더니 독. 감. 였습니다.
아이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씩씩한 편이었습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엔 경미한 증상만 보여도 병원부터 가기 바쁜 엄마였는데 요즘은 아이가 저를 말리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힘들어하는 모습조차 보기 싫었던 초보 엄마는 어떻게든 방법부터 찾으려 했습니다. 자신의 불안을 모면하려 어딘가로 회피하려고 대단히 정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해결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였습니다.
하지만 6살이 된 아이는 견뎌보겠다는 말을 먼저 건넵니다.
사실 고열이 나기 전 목이 아프다고, 코가 좀 답답하다고 그러길래 또 어느 날 아침은 몸이 무겁다면서 자꾸만 까라지는 모습을 봤었기에 몇 번이나 병원 진료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거부했고 전 아이의 의사를 계속 따라줬습니다. 결국 열이 오르고 독감 판정에 또다시 5일간의 여정이 시작됐지만 그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 앞에서 불평 한 마디 표현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저 함께 웃어넘기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병원 진료를 거부했던 날 "집에서 엄마가 도와줘"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내가 견디고 이겨내 볼 테니까 엄마는 옆에서 자신을 지켜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이게 맞을까 하면서도 그렇게 아이 곁을 지키고 또 지켰습니다. 6살 아이도 이겨내 보겠다고 하는데 어른인 제가 오히려 아이한테 무언가를 배우는 것만 같았기 때문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을 떨어트리고 뭐라도 먹이려 숟가락을 입에 갖다 대는 절 빤히 보더니 한 마디 건네는 것였습니다.
"엄마, 내가 이 말했었나? 고마워"
라고 말이죠.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 웃었습니다. 뭐가 고맙다 여겼는지 이유를 묻자 "그때 내가 했던 말, 옆에서 지켜달라고 했던 그거, 지켜줘서 고맙다고"라고 말하는 것였습니다.
사실 '아이를 바로 데려갔으면 독감까진 안 걸리지 않았을까'싶기도 했었는데 아이는 그때 그 순간 자신을 믿어준 게, 자신의 말을 존중해 줬다는 게(따라 줬다는 게) 꽤나 고마웠었나 봅니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의 좌절을 못 견뎌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저는 전자 쪽에 속하는 사람인지라 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귀한 내 자식, 뭐든 다 해주고픈 마음에 원하는 것이 있고 필요가 보일 때마다 그저 다 책임져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만족감 채워주려 살다 간 아이도 엄마도 그 누구 하나도 만족하지 못하고 지칠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만족과 좌절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일어서는 법 또한 배우게 될 테니까요. 일어섰을 때 스스로 채운 만족감과 성취감은 부모가 애써 채워주려 했던 것 보다도 여운이 더 오래갈 거라 믿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닌 적당히 좋은 부모, 모든 것을 다 해주려는 부모가 아닌 때론 기회를 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줄 아는 부모가 부모답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안의 마음을 이렇게 또 한 번 털어냈습니다. 불안의 습관을 아이를 통해서 또 다른 습관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시작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아이한텐 나와 같은 불안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아이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자신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존재였단 걸 이번 기회로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이 오히려 편견을 갖고 선입견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이라면 너무 멀리 내다보려 하기보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부터 존중하고 진심으로 행동하려는 마음이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