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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달라진 나의 말투

병원을 선택했던 진짜 이유였구나

by 유우미


감사하게도 거의 한 달을 채워갈 때쯤 크게 불안감이 두드러졌던 상황은 없었습니다. 혹 불안한 상황, 당혹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는 사건이 몇 개 있었지만 이전처럼 모든 상황을 부인한다거나 도망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 뒤 자신에게서 생겨난? 태도 중 하나가 말투였습니다. 6살 여아는 요즘 들어 엄마 말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점점 더 요구사항이 많아졌습니다. "엄마 그렇게 말하지 말아 줄래, 이렇게 말해줘."라고 말이죠. 틈만 나면 엄마의 말투를 지적하고 원하는 대로 말해주길 기다리는 아이 앞에서 저 역시 스스로 자각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필터링 없는 아이의 감정표현, 날 것의 거침없는 이야기에 자신 역시 아이가 되어 똑같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어른이었다면 한 템포 쉬어가며 아이의 행동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차분한 어조로 말했을 텐데 아니 전엔 그렇게 잘 말하고는 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똑같이 화를 내고 '넌 틀렸고 엄마가 옳아'라고 결론 지어 훈육이란 명목 아래 가르치기만 바빴습니다. 아이의 엇나가는 행동, 버릇없고 예의 없고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과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순간적으로 또 나만의 매뉴얼을 세워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타이트하게 짜인 듯한 육아, 사실 병원을 다니며 지양했던 육아방식였는데 또다시 이전의 육아방식으로 돌아간듯한 기분였습니다. 육아가 지쳐 힘들다 했던 것도 어쩌면 아이 때문이 아닌 자신의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도 유연하지도 못해 비롯된 결과였는데 말이죠. 안 되겠다 싶어 다시금 펼쳐든 책, 아이와의 대화법에 관한 책을 꺼내 아침 일찍부터 몇 장을 읽었습니다.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까 봐'라는 생각을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대부분이 지나친 걱정일 뿐이고 그러한 생각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 마지막이 아닐 테니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지 말라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내 말이 무거워져 힘이 들어가고 자신의 삶마저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음을 얘기하셨습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_오은영


여기까지 읽어 내려갈 때쯤 아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 순간 엄마의 말투를 지적했던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되돌아봤습니다. 어느 순간 내 아이를 엄마란 이유로 믿어주지 못했구나, 앞서 걱정 어린 마음만 내세워 가르치려고만 했구나, 기회를 주기는커녕 제대로 기다려주지도 않고 다그치기만 했구나, 아이에게 편안한 마음 가운데 배움의 기회조차 빼앗기기만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투가 오늘은 어제와 달라야겠다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를 으스러지게 안아주며 세상 가장 부드럽고 너란 존재를 정말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마음 담아 ○○아, 하고 이름을 불러줬습니다. 그리고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또 이와 같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실망, 낙심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난 나약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건가 생각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생각을 하고서도 다시금 자신이 가야 할 방향성을 깨닫기라도 한다면 마냥 제자리걸음으로만 보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느리고 더뎌 보일 순 있어도 조금씩 앞으로만 나아가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곁길로 갔다가 다시금 되돌아갔다가 때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떠나갈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제가 가야 할 방향만 잊지 않고 갈 수만 있다면 이제까지의 여정은 결국 자신에겐 수많은 디딤 돌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바로 약물치료 역시 그의 한 방편이요 제겐 꼭 필요했던 이정표 같은 도움였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병원을 다니며 단순히 치료만을 받은 게 아니라 결국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킨 화살표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경험하는 육아를 조금은 가벼이 생각해도 된다의 여지를 남겨줬고, 갖고 있던 틀 안의 육아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않아도 됨을 인정하도록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만큼 자신을 먼저 돌볼 필요가 있다고, 아이를 사랑하듯 자신 또한 사랑하려 애쓰면 좋겠다고 제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하면서 눌려있던 무거움을 또다시 내려놓는 시간였습니다. 언젠간 또 지금의 이 과정을 반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겁다 느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아 또다시 바라봐야 할 방향을 상기시켜 가며 말이죠. 하나 이제는 약물의 도움을 넘어서 스스로 이 같은 깨달음에 자신을 움직였음을 손뼉 쳐 줄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립해가고 보다 건강한 독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보니 그때 그 상황 속(치료를 고민하기 전) 자신의 선택이 요즘따라 참 잘한 선택였구나 싶습니다. 마냥 고통스럽고 힘들다 여긴 시간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선택이 자신의 앞날을 더 롱런할 수 있도록 방향을 틀어준 쉼표 같은 선택였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비슷한 육아를 하고 계신 분들을 종종 봅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여러 감정이 뒤섞여 원하지 않던 말과 행동들로 인해 괴로워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당장에 모든 것을 단정 짓지도 단념할 필요도 없다고 마지막 순간이 아님을 인정하고 안심하시길 바란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갖고 있던 틀 속에서 한 걸음만 나와보세요. 고작걸음일 뿐인데 아주 잠깐 자신의 생각 속 또 다른 여지를 남김으로써 이전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일 수 있음을, 생각지 못한 감사의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음을 약속합니다. 우리 모두 편하게 육아해요.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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