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
부모의 사랑과 비교가 안 될 정도
아이는 생각보다 부모의 사랑을 능가한다. 어쩌면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 잘 모르겠다는 말 한 마디를 내뱉은 채 그저 눈 앞에 있는 부모를 특히 엄마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아직 타인의 감정을 생각하고 배려할 정도의 성숙함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내심 엄마란 사람은 아이를 향해 기대하고 또 이해해달라고 아우성 친다.
그런 엄마 앞에 아이는 한 없이 고개를 떨구다가도 소리를 치다가도 슬퍼하고 속상해하다가도 도통 엄마가 무슨 이야길 하는지 또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식의 모르쇠 묵묵부답으로 임할 때 난 도대체 내가 뭐하고 있나 싶을 정도다.
왜 그 상황 속에선 이성의 끈을 붙잡지 않고 감정에만 충실하고 있는 나일까, 후회가 밀려오면서도 참 잘 안 되는 고장난 사람같다. 그렇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런 나를 정말 이해도 안 되는 엄마를 사랑하려 애쓰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말이다.
그걸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 몇 개 있었다. 생각지 못한 사건, 바로 나 혼자 코로나에 걸린 상황였다. 감기 몸살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였고 두줄이네요 그것도 선명한 두 줄 이라는 말과 함께 네? 라고 몇 번을 되물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불싸. 안그래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했던 요 며칠의 아이 행동 거기다 며칠 간의 긴 여행을 했었기에 다니던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 울고불고 했었는데 마지막 불편하다 생각되는 아빠와의 등원이라니. 아이는 마치 나라를 잃은 것마냥 아니 엄마가 정말 자신에게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대성통곡을 하고는 그렇게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런데 우려는 했지만 생각보다 아이의 슬픔 그 속에 담긴 불안과 뭔지 모를 내면의 화 등등 이로 말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고스란히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전해졌고 벌여졌던 상황을 남편에게 그대로 전달받아 결국 내 마음은 그 때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고 어쩌면 내 아이가 겪어야만 하는 상황인데도
아이는 자신의 있는 힘을 다해 속앓이를 하는 중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엄마가 괜찮아지길 바라며 다시 이전의 엄마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노력하는 아이에게 난 어젯밤 또 다시 화를 내고 말았는데(버릇없이 구는 행동 때문에) 참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렇게 화 낼 일도 아녔고 또 타이르면 됐을 일였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행동이 나오기까지 이 아이의 마음이 여기저기 고장나있구나 이해가 되면서 미안해졌다.
이해할 수 도 없을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던 나란 사람, 그리고 듣고 있다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고 뚱하고 멍하며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알 수 없는 모습의 얼굴을 하고 베게에 누었던 아이, 시간이 좀 지나 엄마의 이러한 상황(코로나에 걸려 이전과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찬찬히 설명하고 아이의 이해를 구하다보니 되돌아오는 말, "엄마 나 행복해, 엄마 고마워요, 엄마 내가 더더 사랑해"라는 사랑의 말들.
맞다. 아이는 정말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갖고 태어나는 듯 하다.
성선설 성악설이란 단어가 있듯 이전의 수업을 받을 당시 난 성악설에 가까운 생각였는데 지금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성선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는 아니 모든 아이들은 사실 부모를 더 먼저 더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려 애쓴다는 것을 잊지 말자. 투닥거림 끝에 아직도 남아있는 잔여물로 바라볼 때 많은 속좁은 엄마와는 달리 다음날 아침 그 누구보다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랑스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알 것이다.
내 사랑은 아이의 사랑에 비해 참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내 아이의 사랑에 다시 한 번 더 고맙고 있다가 하원하고 오면 더 많이 사랑한다 고백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