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했던 만남에 길어진 대화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게 된 시간였다
며칠 전 아이의 집중력과 주의력 차이를 알게 되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 즉 집중력보다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에 몰입 즉 주의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있던 진실에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가 마치 옷을 덧입게 되는 모습처럼 보였다
중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선배님? 내게는 선생님 교회 집사님 여러 호칭을 갖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신데 그분 말씀 왈 그래서 부모와 학부모의 갭은 클 수밖에 없음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음은 앞서 말한 전제조건을 잘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였다(부모는 아이의 좋아하는 것만 응원해 줘도 될 때이지만 학부모는 학습이란 게 그래도 들어가야 할 때임을 말해줬기 때문)
그리고 요즘 나의 육아 고민과도 맞물릴 정도로 아이의 주의력 키우기가 참 어려웠었다 어렵네, 부담이 될 듯 한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난 아직 부모라는 이야기에(초등학교 들어가야 학부모라는 이야기) 조금은 시간이 있다 느껴졌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결국은 지금 이 시기야말로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보다 내가 그만한 그릇 즉 학부모가 되기 위함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각성의 시간으로 끝이 나는 듯했다
단순히 내 아이는 어리기에 이 같은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닌 미리 앞서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을 내려놓고 나라는 사람이 내 아이의 미래마저(끌어내기 힘든 아이의 주의력을 끝까지 기다리고 응원해 주는 믿음) 품을 수 있을 만큼의 그릇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된 시간였달까
아이에게 필요해 보이는 주의력은 그만큼 내가 내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느냐의 인내심 여부를 확인하는 시간 같았고 아이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줄 수 있느냐에 내가 내 아이를 어디까지 믿어주고 있는지 신뢰의 여부를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바라는 게 없다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내 안 깊은 두려움과 조바심이 결국 또 다른 기대감을 아이에게 내밀고 있었고 결국 그것은 내게 인내심과 그럼에도 아이를 믿어줄 수 있는지의 마음가짐을 갖길 바라는 신의 뜻하심 같기도 했다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결국 나는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보였고 순간였지만 이래도 저래도 부모가 되어 겪을 수 있는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가 되었다
학부모의 길 벌써부터?라는 사실 너무 이른 고민 같은 넋두리였을 수 있겠지만 내 아이의 주의력이 좀 길러졌으면 하는 바람의 쏘아 올린 공이 결국 내게로 향하는 공 즉 내게서 부모의 역할로 되돌아보라는 일침 같은 거였음에
오늘도 날 돌아보는 성장의 걸음을 할 수 있어 감사한 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