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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미 Nov 17. 2023

부모가 되어가는 길

길고 긴 마라톤 같은 것

어릴 적부터 엄마껌딱지 딸였기에 지금 4살이 되기까지 참 쉽지 않은 여정였다. 그래도 조금 컸다고 할머니댁 가면 할머니를 더 좋아하고 지인들 만나 같이 시간 보내면 무리 속에 섞여 제법 어울리는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맘이 드는 요즘였다. 그런데 어젠 너무 바쁜 일정 탓에 지친 몸뚱이가 새벽녘 울어대는 아이를 위로보단 다그치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음 안아주며 둥가둥가 달래고 다시 재웠을 텐데 잠깐 화장실 갔다고 울며 따라 나오는 아이가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렇다. 내가 보통 버럭하는 이유는 아이의 불안을 직감하면 순간적으로 소리가 커진다. 나만큼이나 예민한 아이에게 큰 소리는 사실 크게 도움 될 행동 아닌 걸 알면서도 아이의 불안에 순간적으로 휩싸이면 나 역시 내 불안의 표현으로 목소리가 커지고 표현은 거칠어진다.


"그랬구나, 엄마가 안 보여서 불안했구나 그래서 속상해 울었구나."라고 말해줬음 울다가도 금세 잠들었을 텐데...

"그만 울어, 엄마가 화장실 갈 수도 있지. 울 일 아냐"라고 참 모질게도 내뱉었던 나란 엄마였다.


결국 그렇게 아이는 속상함이 풀리지 않은 채 엄마한텐 이런저런 쓴소리만 듣고 잠이 들어버렸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아이는 고통스러운 꿈을 꾸는지 밤새 소릴 지르고 울면서 잠꼬대를 하는 등 곁에서 듣기에 참 맘이 무거웠다. 1차적인 불안만 잘 다독였음 됐을 텐데 엄마의 2차적 불안이 더해져 몇 배나 더 커져버린 아이의 3차적 불안이 그렇게 밤새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도 아이는 또다시 울면서 일어났고 밤새 뒤척이던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려 하다가도 또다시 버럭 큰 소리가 나갔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또 미운 말만 골라 내게 쏘아붙였고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또다시 울음을 택했다. 하룻밤 사이 벌어진 우리 둘의 에피소드.

아이도 피곤해했지만 나 역시 평소랑은 다른 기분의 다른 피곤함였다.


그래서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놓곤 달려야겠단 생각뿐였다.


혼자 주로 달리는 코스

간단히 몸을 풀고 조금 걷다 숨 고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워낙 운동을 많이 하진 않았어서인지 금세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래도 반환점까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했다.


엄마껌딱지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려 참 열심히 달렸다 생각한 지난 시간였는데 새벽녘 나의 행동은 다시금 아이의 불안을 더 크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왠지 모를 원점으로 돌아간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똑같은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는 나의 불안까지 떠넘기진 않겠다는 다짐을 함께 해본다.

아이의 불안을 곁에서 볼 때 참 의연하게 대범하게 지켜보고 행동하는 사람들 보면 나한텐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끊임없이 달려가야 할 아이와 엄마의 시간 언제 끝날지 모를 마라톤 같은 육아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믿으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을 아이와 나 자신을 믿으며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달려갔다.


반환점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차갑게만 느껴진 바깥공기가 온몸의 열이 오르니 오히려 상쾌하기만 했다. 춥다 생각해 목 끝까지 올린 패딩지퍼를 내리며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식혀본다.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발걸음은 그렇게 무겁지도 버겁지도 않게 느껴졌다.


나는 엄마가 된 이상, 끊임없이 달려가야 할 이 길을 오늘도 달린다. 마라톤 같은 부모가 되어가는 길, 나 역시 4살 부모가 된 사람이기에 아직 멀고도 험한 무언가가 늘 내 앞에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멈추진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내게 허락된 축복의 삶이란 걸 잘 알기에 오늘도 열심히 달릴 것을 약속한다.


ps. 아침, 그렇게 또 울음으로 시작했지만 함께 아침밥 먹는데 아이가 먼저 그러네요. "엄마, 내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라고요. 그래서 저도 엄마 없어 많이 속상했을 텐데 큰 소리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네요. 그렇게 웃으며 식사를 마치곤 어린이집 등원했어요.


딸, 우리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자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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