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이야길 나누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 어떤 엄마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쩔 땐 제 아이를 이해하기도 어릴 적 자신을 이해할 수도 있는 경지에 오르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제가 아이를 낳아 깨닫게 된 것 중 제일 감사한 게 있다면 아마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보고 있을 때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친정엄마가 제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제가 제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곤 하거든요. 좀 더 풀어볼까요?
현재 딸아이는 4살, 미운 4살이란 말처럼 어디로 튈지 모를 떼쟁이와 알 수 없는 고집, 아직은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감정들까지 사실 성인인 제게 가끔씩 나타나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저희 엄마도 제가 어렸을 때(성인이 돼서도 가끔 말씀하시네요) 왜 그렇게 예민하니, 과한 생각이라니, 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나무라기 바쁘셨는데 요즘 제 아이를 보고 있자니 저도 엄마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엄마와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요. 상처처럼 들렸던 엄마의 반응 때문에 자신만큼은 공감해 줄 줄 아는 엄마가 되어주고팠는데 받은 사랑의 모양이 좀 따가웠고 마치 난 늘 이상행동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서인지 내 아이에게 줘야 할 사랑에도 사랑 아닌 사랑의 모습이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공감이라 말하면서 쓰디쓴소리, 널 이해한다면서 되려 호통치는 아이러니한 사랑의 모습.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이라 외치는 엉터리엄마가 바로 저였습니다. 책에서 배운 그대로 하면 되겠지 내가 다른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면 내 아이만큼은 진짜 사랑이란 걸 받고 자라겠지 싶었는데 실전에선 늘 한계가 보였고 아이를 통해 상처받은 제 어릴 적 모습이 비칠 때면 정말 부끄러워 숨고 싶었습니다. 나도 엄마와 똑같구나 싶어 한 없이 작아지는 제 모습에 낙심하며 자격이 없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도망치고도 싶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되기 싫었는데 저 또한 '그런' 엄마로 아이를 대하고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근데도 제 아이는 제가 좋다며 볼을 연신 제 얼굴에 비벼대고 손등엔 뽀뽀를 "엄마 좋아"라는 말을 여러 번도 건넵니다.
좋은 엄마 되겠다며 다짐했던 것과 달리 내 아이 마음 하나 공감해주지 않는 엉터리 엄마인데도 아이에게 엄마는 전부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 엄마인데도 아이 사랑이 제 사랑보다 한없이 더 커서 그런지 매번 기회를 얻은 것처럼 노력이란 걸 하고 또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친정엄마와 같은 엄마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공감해 줄 줄 아는 엄마가 되기 위해 진심을 매번 전해서였을까, 표현이 서툴 때도 많은데 결국에는 널 사랑해서 그런 거였다고 나의 작은 마음이 닿아서였을까 아직까지 제 아이는 절 사랑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그래서 여전히 엉터리 엄마겠지만
그래도 널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전하며 네게는 나와 다른 유년시절이 되도록 오늘도 노력하는 엄마가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