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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미 Aug 14. 2024

선택의 연속, 바뀌어가는 나

그리고 가족들의 변화

약에 대한 부작용은 없었을까요? 


사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8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전혀 다른 역할의 사람이 돼 있었기에(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불안의 요소마저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전과는 다른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약물치료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약과 양으로 맞춰져야 했는데 그 과정이 처음부터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었습니다. 이 같은 질병에 흔히 쓰인다는 약을 소량으로 시작했다가 다른 성분의 약으로 바꿔도 봤고 이후엔 그 약의 양을 조금 증가시켰던 지난 과정들 속에서 전 다양한 증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평소보다 긴장이 풀리고 불안적 요소가 둔해지는 등 어떤 긍정의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고 무력감도 들었으며 생각 또한 깊게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를 돌보다 어느새 졸고 있는 자신이 보였고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룬 채 쓰러져 자기 바빴습니다. 자연스레 불편한 부분이 생겼지만 그때마다 상태 체크 후 세심하게 약을 조절해 주시는 교수님 덕분에 요즘은 부작용보단 이점을 더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피곤함의 정도가 덜 해졌고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한 주간 감정 기복이 심하지도 않았고 벌어진 문제에 대처해야 할 땐 감정보단 이성적 판단이 앞섰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중심이 쉽게 흔들리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역시 눈치보다는 여유 있게 나아가 소통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감정이 상해 순간적으로 책임을 저버리려는 상황도 있었는데(회피 성향) 그 순간 감정이 상한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대한 태도로 나아갔습니다. 이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다른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는 저였습니다.


사실 하루하루가 제겐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전과 똑같이 반응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줄다리기 같았습니다. 물론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긴 어렵다는 것 잘 알기 때문에 이전의 습관대로 움직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특히 부정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땐 꽤나 신중한 태도로 임하려 했습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전의 자신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였습니다. 특히 이성이 앞서야 하는 순간, 분별력이 필요한 상황에선 감정은 배제한 체 제삼자 입장이 되어 결정하려 했습니다. 즉 주관적인 생각에 의존한다기보다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보려는 힘을 키워갔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근거 없는 불안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밟아가며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다 보니 어느새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더 단단해진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먼저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실 다시금 제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였습니다. 특히 그날 이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의심부터 앞섰으며 아내인 제게 무언가를 공유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부간의 대화도 이전과 같지 않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병원을 다니는 와중에 이 약함마저 아내의 일부란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남편에겐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존중해줘야 했고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남편의 생각이 어디로 향할지 전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보이는 태도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편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아내의 약함을 인정하고 이 마저도 기꺼이 사랑해 주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모르고 지나갔던 아픔들, 아내에겐 상처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을 남편은 묵묵히 받아들여주었고 포옹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이를(약함) 갖고 살아갈 것인지에 집중하고 도와주려 했습니다. 즉 제게 없는 것들을 남편이 채워주려는 행동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나서서 도와주고(불안이 앞서 판단력이 흐려질 때 대신 결정해 줌) 이전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내의 행동이 '불안해서 그런 거였구나' 눈치도 봐 가며 센스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컨디션을 물어봐준다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 줌) 마치 이전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이름의 사랑, 배려의 모습이 남편에게서 보였습니다. 조금씩이지만 사랑의 전체를 채워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역시 자신을 돌아보려 했고 갖고 있었던 약함, 고민거리, 부정적인 생각들을 조금씩 제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 때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터라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이에게 마음을 터놓을 일이 잘 없었는데 조금씩 그 문을 열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조차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 현재 자신의 고민을 디테일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부부간에 또는 공동체라는 모임 안에서 필요했던 대화들이 이제라도 제대로 시작된 기분였습니다. 소통에 있어 겉치레적 대화가 아닌 자신의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줄 아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았습니다. 터널 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만 빛을 본 게 아녔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남편에게 역시 빛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혼자만의 고통이라 생각했는데 남편 역시 아내의 약함을 함께 느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 마저 달라지고 있었던 것였습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는데 남편 역시 자신의 건강을 돌보며 가는 듯했습니다. 부부간의 가져야 할 건강한 모습, 자신의 약함마저 나눌 수 있는 소통 다운 대화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에겐 없었던 이 대화의 변화는 결국 제 자신과 남편의 변화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태도 역시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실 제 아이는 신생아 시절 때부터 먹는 것, 자는 것, 생활하는 모든 부분에 불규칙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울음도 자주 보였고 이후 엄마인 저와 떨어져 있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했습니다. 발달과정 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모습일 거라 생각했지만 점점 해가 바뀌고 아이가 성장할수록 불안한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 또한 힘들어하니 다녀야 될 기관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했습니다. 적응기간이 지났는데도 순간의 기분 변화따라 등원 시간 역시 매번 늦어졌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툼과 울음이 빈번했고 이런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조차 지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습니다. 부모의 영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불안장애 즉 정신적 질환을 갖고 있다면, 유전적인 요인이 50%나 된다는 얘기에 왠지 모를 미안함과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불안만큼은 주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갖고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니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습니다. 거기다 약물치료를 결정하기 전, 지난 4년 넘게 불안정한 모습의 엄마가 주양육자 되어 돌보다 보니(일관되지 못한 엄마의 양육태도) 아이 역시 엄마를 닮아 까다롭게 행동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습니다.



부모와는 별개로 아이가 까다로운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주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어떠하고 엄마의 태도가 어떠한지에 따라 아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또 순한 기질의 아이로 태어났어도 주양육자로부터 일관되지 못한 양육을 받고 불안정한 상황 속에 자랐다면 오히려 문제행동을 일삼는 아이가 됐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유전적인 것과 환경적인 영향은 아이 미래의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영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어떤 기질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아 내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건강한 태도를 보일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까다로운 기질, 일관되지 못한 엄마의 양육 태도로 아이는 당연 불안도가 높았고 엄마와 모든 것을 함께 하려 했으며(엄마가 개인적인 일을 못하게 함) 심지어 잠자리에 누웠을 땐 새벽마다 엄마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저 역시 제 나름의 불안과 싸우고 있었는데 그런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감당하기 어렵다 느껴졌습니다. 엄마라면 육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혼자만 힘들어하는 것 아니냐는 남편의 말 한마디는 저를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는 것과 같았습니다.(제 상태를 모르고 했던 말) 그만큼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저와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을 먼저 돌보길 결정했고 이는 분명 딸과의 관계 역시 호전적 방향으로 가게끔 도와줄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 마음속에 불안보다는 평안이 가득하니 엄마로서 보일 태도에도 안정감과 일관성이 보였습니다. 아이는 그대로 흡수해 엄마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반응 또한 온순하게 나타났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긍정적 감정을 내비쳤고 대화 역시 짜증보단 웃음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이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니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선 어려워하던 것도 한 번 해보겠다는 자신감 또한 생겼습니다. 또 불편한 상황을 대처할 때 이를 해결하려 낮은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또래와 타협해 가는 과정 역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엄마의 일관되지 못했던 태도는 아이 역시 불평만 늘어놓기 바빴었는데 엄마의 태도가 바뀌는 순간 아이마저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이의 까다롭고도 부정적인 반응들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저 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흡수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표현했던 것뿐였습니다. 결국 아이의 변화를 바라기보다 제 자신의 변화가 먼저였던 것입니다. 이젠 아이를 키우려는 생각보다 자신이 부모로서 바르게 있는지 확인하는 요즘입니다. 컨디션이 좋아야 아이를 돌보기에도 최적화될 있는 것처럼 엄마가 자신의 불안을 조절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엄마의 안정적인 모습을 아이 또한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그대로 습득합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무언가를 제공해 주려 하기보다 엄마가 먼저 자신의 미래를 돌볼 줄 아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처럼 아이도 정말 소중하지만 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자세가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려 했을 뿐인데 아이의 건강과 미래마저 돌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고통이라 생각했던 이 과정은 서로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의 여정이었음을 믿습니다. 


저는 오늘도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불안보단 평안으로 흘러갈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도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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